2007년 출간되어 전통 채색 기법으로 표현하 우리 색으로 화제가 됐던 '꽃이 핀다'에 이은 화가의 두 번째 그림책이다. 이번 책에서는 이해인 수녀의 그림 같은 시와 어우러져, 아름답고 정겨운 밭의 풍경을 담았다
그간 비단에 전통 채색 기법을 이용하여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인 그림을 그려 온 백지혜 화가는 이번 전시에서는 ‘춘포’라는 새로운 바탕재에 도전했다.
전통 천인 춘포는 누에고치에서 나온 명주와 모시나무 껍질에서 나온 모시의 교직물이다. 모시보다 시원하고 가벼우며 빛깔이 고와서 ‘여름비단’이라 불리는 옷감이다.
작가는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밭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화려한 비단이나 거친 삼베 대신 춘포를 선택했다.그림을 그리는 공정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더했다. 춘포를 나무틀에 엮어 교반수(물과 아교와 백반을 섞음)를 12~15번 정도 칠해 그림 그리는 바탕을 만드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으며, 좀 더 은은한 발색과 깊이감 있는 표현을 위해 배채법(Back painting, 背彩法)으로 채색했다.
배채법이란 고려 시대 불화에서 많이 쓰이던 기법의 하나로, 그림을 그릴 때 종이나 비단의 뒷면에 물감을 칠하는 기법이다. 뒷면에 칠한 색이 우러나온 상태에서 앞면에 음영과 채색을 표현하면 색조가 한결 더 풍성해지며 깊이감이 더해진다. 뒷면에 몇 번이고 물감을 덧칠하는 화가의 수고와 정성 덕분에 밭의 풍경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다시 태어났다.
논밭을 다룬 기존의 그림책들은 그 풍경이나 수확물인 채소와 야채를 사실적으로 전하는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그림책 원화전에서는 꽃이 피고 열매가 영글어 가는, 싱그러운 6~7월 밭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농촌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면 접하기 힘든 보라색 가지꽃, 하얀 감자꽃, 노란 쑥갓꽃 등 소박하고 아름다운 채소 꽃을 보는 재미도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림책 원화 15점과 함께 인물과 꽃을 담아낸 비단 그림 7점, 그리고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낸 드로잉도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이해인 수녀는 '밭도 아름답다'라는 시에서 바다가 ‘물의 시’라면 밭은 ‘흙의 시’라고 표현한 바 있다. 백지혜 화가의 그림은 밭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삭막한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잊혀졌던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워 준다.
CNB=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