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사상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이른바 수천억원에 이르는 ‘자살보험금 미지급’이라는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잠잠했던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은 2013년 8월 금융감독원이 ING생명보험에 대한 종합감사를 하면서 발견돼 수면위로 드러났다. 2003년~2010년까지 ING생명은 재해사망특약 2년 후 자살한 90여건에 대한 약 200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표준약관을 가져와 해당 보험에 맞게 변경·수정해 사용하는 업계 구조상 타 보험사들도 이 부문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김기준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금감원으로 받은 ‘미지급 재해사망보험금(자살) 현황 및 재해사망 특약 보유 건수’에 따르면 자살보험금 지급 논란에 휩싸인 보험계약이 2014년 4월 말 기준 281만7173건, 전체 금액으로는 2179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위를 들여다보면, 지난 2010년 4월 이전에 거의 모든 생보사들은 재해사망특약 약관에서 보험가입 2년 이후의 자살에 대해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토록 명시했다. 특약의 문제점을 발견한 생보사들은 2010년 4월 이후에 판매한 상품에 대해서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주지 않고 책임준비금 즉 적립금만 지급하는 것으로 약관을 수정했다.
물론 2010년 4월 이전에 판매·계약한 보험에 대해도 약관에 따라 자살보험금을 줘야 함에도 현재까지 지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ING생명에 대한 종합감사 이후 1년여가 다 돼가고 있는 현 시점까지 제재심의위원회에서의 최종 징계 수위 결정이 안 나오고 있는 등 명쾌한 해석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자살보험금 미지급건과 관련 쟁점은 크게 2가지로 압축된다.
자살은 재해가 아님에도 재해사망으로 간주해 보험금을 지급할 경우 사회적으로 자살을 방조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관상 지급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맞서고 있다.
각설하고, 약관에 오류가 있더라도 보험금은 약관대로 줘야 한다고 판결한 지난 2007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약관법에 따르면 약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해석돼야 하고 고객에 따라 다르게 해석돼서는 안 된다. 또한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는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돼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보험사들은 다른 판례도 있다며 지급거부의 명분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근본적으로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 아래에서는 궁핍한 변명일 뿐이다.
보험 가입 시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지만 보험금을 지급할 때는 좀체 알기 어렵고 어디에 적혀 있는지도 모르는 약관의 조항을 내세우며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댔던 그들이기에 더욱 약관대로 지급함이 옳다. 스스로가 이율배반을 하면서까지 주지 않으려는 꼼수이자 자기모순에 빠진 것으로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준다고 했으면 줘야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라 스스로 한 약속을 행하고 책임지라는 것이 이리도 힘든가?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