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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임용석 교수의 ‘스포츠와 인권’<13>…지도자의 희망 프로젝트 3단계

이해는 낮은 자세로 임할 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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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성호기자 |  2014.06.20 18:23:36

검게 그을린 피부, 땀에 젓은 옷과 머리칼, 흙과 먼지에 더렵혀져 색깔 구분을 할 수 없는 운동화, 또래보다 한 뼘은 큰 키와 뛰어난 운동신경 덕분에 골목대장을 했다. 


어린 시절 학교운동장은 내게 친구와 뛰고, 웃을 수 있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해가 지기 전까지 축구, 야구, 땅따먹기, 얼음땡, 다방구 등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엄친아’는 뭐든지 잘하는 ‘엄’마 ‘친’구 ‘아’들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운동을 잘했던 난 공부도 곧잘 했다. 매년 반장과 부반장도 도맡았다. 


궁금한 것이 많았던 난 수업시간에 항상 질문을 했다. 궁금한 것은 물어야 했고, 알아야 직성이 풀렸다.


5학년 끝남을 알리는 봄방학이 시작되기 전날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날 불렀다. 선생님 옆에 서 있는 분이 물었다. “너 농구해보지 않을래?” 내 얼굴보다 더 까만 얼굴의 남자는 다른 국민학교의 농구부 코치였다. 


부모님 몰래 따라간 농구부실에서 코치선생님으로부터 헌 유니폼 한 벌을 받았다. 꼬질꼬질한 헌 농구 유니폼이 왜 그리 멋져보였을까? 부모님은 운동을 하겠다는 내 의지를 꺾지 못하셨다.


1주일 만에 전학수속을 밟고 옮긴 학교, 6학년이 된 기쁨보다 기대했던 농구부 생활이다. 그 설렘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전학 후 1개월 정도가 지난 후, 난 해오던 대로 코치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다.


코치: 드리블 레이업해.

나: 이건 어떻게 해야 해요?

코치: 앞에 사람 하는 거 보고 따라해.

나: 그냥 튀기면 돼요? 왜 그렇게 해야 해요?”


“짝~.” 코치의 두꺼운 손바닥이 대답 대신 얼굴 한편으로 돌아왔다. 코치: 이 새끼가 어서 말대꾸야? 너 공부할 때 그렇게 물어보는 게 똑똑해보일지 몰라도, 여기서 그러면 싸가지 없는 거야! 알겠어? ‘귀싸대기’사건 이후 코치선생님에게 질문은 할 수 없었다. “예.”, “아니오.”로만 대답이 가능했다.


‘존경과 증오’, ‘희망과 절망’, ‘애정과 차별’ 의미가 극과 극인 단어들. 11명의 농구스승님을 난 모두 다르게 기억한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지낸 11년 동안 다양한 농구 기술과 지도방법을 배웠다. 


운동을 그만둔 후 나 역시 한 대학 농구부의 지도자가 됐다. 운동부 경험을 토대로 제자에겐 좋은 것만 전하고 싶어 시작한 지도자 생활. 하지만 스승을 통해 배운 말투, 지도 방식, 행동은 1년간의 짧은 지도자 생활에 많은 영향을 줬다. 내 제자들은 날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일을 잘하는 것 vs 옳은 일을 하는 것


“doing right things right.” 현대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의 말이다. ‘일을 잘 하는 것(doing things right)’보다 중요한 것은 ‘옳은 일을 하는 것(doing right things right)’이다. 일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 내 제자의 미래를 위한 지도자의 최선의 배려다.


지도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사전적 의미로 ‘지도자’란 남을 가르쳐 이끄는 사람(leader)이다. 남을 이끄는(lead) 것은 남을 이해(understand)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리더’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올바른 일을 하도록 하는 사람이다. ‘리더’는 핵심은 독제가 아닌 이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할까?


석, 박사 과정 동안 다양한 연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학생선수, 운동을 그만 둔 학생, 운동부 지도자, 은퇴선수 등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운동부내에서 지도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란 것이다. 감독의 ‘말’은 ‘법’과 같다. 감독의 결정으로 선수들의 학업과 운동 일상이 바뀐다.


진정한 이해는 말 그대로 남의 밑(under)에 서(stand)는 것으로 시작된다. 남의 위(over)에 서(stand)려는 자가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미국의 교육자 파커 J. 파머는 말했다. “훌륭한 가르침은 하나의 테크닉으로 격하되지 않는다. 가르침이란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에서 나온다. 


남을 지도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에 거울을 비추는 행위이다.” 운동부 지도자 역시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배움의 자세를 먼저 알아야 한다.


운동부 지도자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고민하고 실천해야할까? 첫째, 자신의 말과 행동에 신경써야한다. ‘운동부는 거칠다’,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외부의 일부에서 운동부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운동부만의 독특한 언어와 행동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운동부’와 ‘일반인’으로 운동선수인 자신들과 운동부 이외의 사람을 구분한다.


충남대학교 체육교육과 이주욱 교수의 표현처럼 일반인과 구분되는 운동부만의 독특한 문화는 지도자→선수, 선배→후배로 대물림돼 강화된다. 마치 군대의 상명하복 문화와 같다. 운동부 지도자의 언행과 행동은 운동부문화를 재생산하는 중심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둘째,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부모, 형제, 친구, 자식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다. 같은 단어지만 맥락과 대상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제자를 사랑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14년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학생선수는 10만4000여 명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다양한 이유로 운동을 그만둔다. 직업선수의 길을 걷더라도 30대 초, 중반에 대부분 은퇴한다. 즉 운동을 할 날보다 하지 않고 살아가야 할 시간이 더 길다. 제자를 사랑하는 것은 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장기적 안목을 통해 학생선수의 현실을 고려한 지도자의 선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학생’과 ‘선수’의 이중경력(dual career)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학생선수의 경력을 ‘운동’만으로 한정할 것이냐 ‘운동도’ 포함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인가?


셋째,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自負心)이다. 일에 대한 가치를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다. ‘자부심’은 ‘자존심’과는 별개다. 자부심은 남과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생겨난다. 자존심은 나 혼자만의 것인 데 비해 자부심은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느끼고 당당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스스로의 가치와 능력을 믿고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은 가장 우선적으로 전해야할 핵심가치이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mystery, Today is present -by Eleanor Roosevelt


미국 32대 대통령의 영부인 엘리노어 루즈벨트가 말했다. 어제(Yesterday)는 이미 지나간 역사(history)이고, 내일(Tomorrow)은 알 수 없는 미스터리(mystery)와 같다. 오늘(Today)은 선물(present)과 같이 소중한 것이다. 스승을 기억하는 모든 제자의 얼굴에 선물과 같은 미소가 절로 번지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글쓴이 임용석은?

고려대학교에서 스포츠 교육학과 인권을 강의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한 그는 청소년농구 대표를 지낸 전도유망한 선수였다. 불의의 사고를 계기로 책을 쥔 그는 학생선수의 교육 및 교육과정에 대해 관심이 많다. 또 스포츠 현장에서의 훈련성과와 인권 등도 깊이 연구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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