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성향 후보들은 17개 시·도 중 13곳을 차지하며 대약진했다. 진보 교육감은 2010년 지방선거 때 서울·경기·강원·광주·전남·전북 6곳에서 당선됐는데, 이번에는 대구·경북·울산·대전만 빼고 거의 전 지역을 석권하며 전국 교육감 세력구도에서 보수 세력을 압도하게 됐다.
이로써 경쟁과 수월성 확보를 근간으로 하는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은 집권 이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CNB=도기천 기자)
진보 교육감 13개 시·도 석권…교육계 지각변동
경쟁보다 평등교육에 ‘한표’…보수단일화 실패도 원인
보수, 세월호 참사 불구 ‘공교육 정상화’만 외치다 패배
진보, 인간성 교육 부각시키며 30·40대 앵글리맘 자극
전국 교육감 선거 최종개표 결과를 보면 조희연(서울), 김석준(부산), 이청연(인천), 장휘국(광주), 최교진(세종), 이재정(경기), 민병희(강원), 김병우(충북), 김지철(충남), 김승환(전북), 장만채(전남), 박종훈(경남), 이석문(제주) 등 13개 시·도에서 진보 성향 후보가 당선됐다.
보수 성향 후보는 우동기(대구), 설동호(대전), 김복만(울산), 이영우(경북) 4명만이 승리했다.
서울교육감 선거에서는 아들의 지원으로 ‘좋은 아빠’ 이미지를 부각시킨 조희연 후보가 39.2%로, 현직 교육감인 문용린(30.9%) 후보와 ‘고시 3관왕’ 출신 고승덕(23.9%) 후보를 눌렀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지지율 1위를 달렸던 고 후보는 딸의 페이스북 글 파문을 극복하지 못한 채 3위로 좌초했고, 고 후보와 ‘공작정치’ 진실게임을 공방을 벌였던 문 후보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장 많은 7명의 후보가 출마한 부산에서는 진보 성향의 교수 출신 김석준 후보가 34.7%를 득표, 현직 교육감인 보수 임혜경 후보(22.2%)를 여유있게 따돌렸다.
경기에서는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진보 성향의 이재정 후보가 36.5%로 ‘전교조 저격수’로 불리는 조전혁 후보(26.1%)를 눌렀고, 인천 역시 진보인 이청연 후보(31.9%)가 보수 이본수(27.4%) 후보에 승리했다.
충북에서는 전교조 지부장 출신인 김병우(44.5%) 후보가 보수 장병학 후보(30.9%)에 승리했고, 제주에서도 진보 이석문 후보(33.2%)가 보수 고창근 후보(26.9%)를 누르고 교육감 자리에 올랐다.
보수세가 강한 경남과 충남에서도 진보 진영이 이겼다. 경남은 진보 박종훈 후보가 39.4%로 보수 권정호(30.5%) 후보를 눌렀고, 충남에서는 진보 김지철(32.0%) 후보가 보수 서만철(30.8%) 후보에 신승했다.
진보성향 현직 교육감인 광주의 장휘국(47.6%), 전북의 김승환(55.0%), 전남의 장만채(56.3%), 강원의 민병희(46.4%) 후보는 모두 상대 후보들을 여유있게 제치고 재선됐다.
보수 진영에서는 대구의 우동기 후보가 58.5%를 받아 진보 정만진 후보(28.2%)를 따돌렸다. 대전에서는 보수 성향인 설동호(31.4%) 후보가 한승동(15.9%)·최한성(15.1%) 두 명의 진보 후보를 눌렀다.
현직 보수성향 교육감인 김복만(울산, 36.2%)·이영우(경북, 52.1%) 후보도 정찬모(27.5%)·이영직(26.8%) 후보에 승리하며 재선 관문을 통과했다.
보수 참패 이견 '분분'
정치권에서는 보수진영의 참패를 두고 이견이 분분하다. ‘보수 난립-진보 단합’이라는 구도 때문이라는 지적에서부터 세월호 참사가 30·40대 ‘앵그리맘’을 투표장으로 이끌면서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보수 성향 후보들에게 타격을 가한 것이라는 해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보수 진영이 대부분 지역에서 단일화에 실패한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진보 후보들은 13개 시·도에서 단일화를 이룬 반면, 보수 후보들은 대구와 울산을 제외한 11곳에서 난립했다.
서울의 경우 진보진영은 일찌감치 조희연 후보를 단일후보로 내세웠지만, 보수에서는 고승덕, 문용린, 이상면 등 3명의 후보가 나왔다.
진보 단일후보인 이재정 후보가 1위를 달리는 경기지역 역시 보수에서는 김광래, 조전혁, 최준혁 등 3명이 복수후보로 나섰다.
보수 후보들은 상대방 진영은 물론 같은 진영끼리도 경합을 벌이면서 서로에게 흠집을 내는 바람에 유권자에게 네거티브 이미지를 줬고, 결국 진보 후보가 득을 본 결과를 가져왔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보수후보들의 득표율을 모두 합치면 절반이 훨씬 넘는데도, 단일화에 실패해 표를 분산시킨 것이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여기다 세월호 참사로 ‘앵그리 맘’들의 표심이 경쟁보다는 평준화교육, 협력교육 등 인간적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보수 참패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대부분 진보 교육감 후보들은 특수목적고, 자율형 사립고 등에 반대하며 평등교육을 주창했다. 조희연 후보는 시내 전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면 대부분 보수진영 후보들은 이렇다할 혁신책을 내놓지 못했다. 정세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전교조 만큼은 손을 보겠다”(고승덕 후보)거나 공교육살리기·학교폭력예방 등 고루한 주제들을 되풀이 하면서 주도권을 놓쳤다.
하병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세월호 참사로 입시 위주 교육에 대한 국민적 성찰이 일면서 교육감 선거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이번 교육감 선거결과에 대해 우려와 기대가 엇갈리고 있다.
서울시내 중학교의 한 간부급 교사는 “과거 곽노현 서울교육감 시절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두고 교육계가 크게 혼란을 겪은 바 있다”며 “경쟁 위주의 교육정책이 다소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와 급격한 변화로 교직사회 분열이 조장될 것이라는 우려가 함께 제기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