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총리의 존재감 부재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호사가들의 지적에서부터 유명인 이름과 겹쳐진 단순 착각이라는 얘기까지 설이 분분하다. 국가를 대표하는 총리 이름이 제멋대로 둔갑된 사연을 살펴봤다. (CNB=도기천 기자)
SK그룹 뉴스메이커 ‘김원홍’과 헷갈려
‘의전총리’로 존재감 사라진 것도 한몫
CNB가 3일 국내 대표적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를 ‘정원홍 총리’로 검색한 결과, 네이버는 17건이, 다음에서는 26건이 잘못 표기된 채 첫 화면에 노출됐다.
이 중 대부분이 언론사들의 표기 오류였다. 심지어 국내 대표적인 모 통신사, 유명 일간지의 칼럼에서도 잘못된 표기 그대로 기사가 송고돼 있었다.
이러다보니 카페, 블로그 등에 ‘정홍원’이 ‘정원홍’으로 퍼날라졌고, 트위터 등 SNS상에서도 ‘정원홍 총리’로 표기된 사례를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제목이 ‘정원홍 총리’로 표기된 동영상이 ‘유튜브’에도 등록돼, 국내 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 대한민국 국무총리의 이름이 오기(誤記)로 전파되고 있었다.
‘정홍원’이 ‘정원홍’으로 표기된 사례가 잇따르면서, 심지어 네이버에서는 검색어로 ‘정원홍’을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정홍원’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처럼 한 국가의 총리 이름이 잘못 알려진 데는 여러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정 총리의 ‘존재감 부재’가 원인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은 총리에게 독립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이른바 ‘책임총리’를 약속했지만, 정홍원 총리 체제에선 이 약속이 유명무실 해졌다.
정 총리는 지난해 2월 취임 당시부터 존재감 없는 ‘의전총리’라는 말이 정치권 안팎에서 무성했다.
정 총리 스스로도 책임총리의 정의를 ‘대통령을 정확하게 보필하는 것’이라고 규정 내렸고, 이에 야권은 크게 반발했다.
당시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정 후보자는 대통령 보필을 잘 하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비서실장 역할이 맞지 않느냐”며 “의전총리, 무늬만 책임총리에 그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며 취임도 하기 전부터 흔들어댔다.
이후 정 총리는 비교적 무탈하게 버텼으나 세월호 국면에서 국민적 원성을 사며 사실상 경질되다시피 사직서를 냈다.
사직서를 낸 이후에도 정치권 일각에선 “실권도 없는 의전 총리가 사직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평상시엔 하릴없이 지내다 일 터지면 총대 메고 나가는 게 총리”라는 등의 비아냥이 계속 됐다.
더구나 후임 총리 후보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인사청문회도 열기 전 전격 사임하면서 정 총리의 존재는 ‘시한부 총리’ 역할로 한정된 ‘어정쩡한’ 상태가 됐다.
이런 분위기가 ‘총리 이름’ 표기에 대한 긴장마저 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현재 ‘정원홍’을 검색해보면 ‘정원홍 변호사’가 자동검색어로 따라붙을 뿐 그리 두드러진 인물은 없다.
하지만 최근 SK그룹의 숨은 실세이자 ‘그림자’로 알려진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이 최근 1년새 부쩍 언론을 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김씨는 SK그룹 최태원 회장 횡령사건 재판의 핵심 키맨으로 부상한 바 있다.
김씨는 2011년 3월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홍콩을 거쳐 가족이 있는 중국 상해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았다. 이후 대만으로 도피, 기소중지 됐다가 지난해 7월 대만에서 이민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같은해 9월 국내로 송환됐다. 올해 초 SK사건의 핵심 공범으로 기소돼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런 가운데 ‘김원홍’이라는 이름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언론 지상에 오르내렸다.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원홍’이라는 이름이 정홍원 총리의 이름과 오버랩 되면서 정치·경제부 기자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는 설이다.
그렇더라도 이를 바라보는 고참 기자들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모 언론사에서 정치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27년차 기자는 “기자 초년생 시절(80년대) 선배들이 가장 강조했던 게 제목에서 고위층의 이름이 틀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라며 “당시에는 본판 인쇄 전 시청 앞 길거리에 초판을 먼저 까는(내놓는) 관행이 있었는데, 대통령 이름에 한자 획순이 하나 빠진 것을 발견한 위(청와대)에서 연락이 와 인쇄를 새로 했고, 담당 기자는 시말서를 썼다”고 전했다.
또다른 언론사의 한 고참기자는 “국가를 대표하는 국무총리의 이름이 잘못 표기된 채로 버젓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것을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