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잎새’전이 진행되고 있는 전시장 입구의 벽면 유리에 붉은색 필터가 붙어있어, 몽환적이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설치작업은 지하 전시장에서 상영되는 검은 화면에 이산가족들의 대화로 만들어진 ‘이념의 무게_마지막 잎새’ 작품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2월 금강산 남북 이산가족 면회소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에서 이산가족들이 나눈 대화를 각색해 만들었다.
화면은 봄을 상징하는 진달래꽃이 등장하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런 이미지가 나오지 않고, 검은 화면에 이산가족들의 말소리만 들린다.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공동기자단의 대화록을 가지고 성우들이 재구성한 현장의 목소리이다.
장엄한 음악도, 화려한 영상도 없지만 이 영상이 주는 무게감은 남북분단의 시간만큼이나 커다란 무게감으로 심경을 울린다.
“과잉된 이미지를 없애고, 화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이산가족의 대화가 바로 남과 북의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담백하게 화면을 구성했다.”
작가는 이데올로기라는 허물을 벗어놓고 인간으로서의 가족과 형제의 본질적인 대화를 담아내려 했다.
이 작업은 ‘북쪽으로 보내는 서한들_수취인 불명_황해’에서 시작된 편지의 내용은 남북의 관계에 대한 단상을 그려냈다. 냉면을 먹다가 북쪽의 당신 생각이 났다는 내레이션은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예전의 어른들이 많이 쓰는 인사말로 끝난다.
작가는 이러한 프롤로그적인 성격을 가진 작업에서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남북한의 관계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반문을 하며, 남북통일은 정치, 민족, 경제적 이데올로기의 논리가 아니라 동등한 인간으로써 기본적인 삶을 지켜내고 인간 그 자체를 존중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전시장 2층에는 김기라 작가가 지금까지 펼쳐냈던 작업의 밑그림이 되는 드로잉 작품들을 한 군데 모아, 편집기에 들어있는 영화 화면과 같은 이미지를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이미 나왔거나, 앞으로 만들어질 김기라의 영상 작품에 대한 일종의 시놉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잎새’전을 통해 작가 김기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대한민국이 겪는 고통과 이데올로기 대립을 중심으로 우리의 현재를 통찰한다. 다양한 대립을 넘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고 있다.
한편, ‘마지막 잎새’전이 펼쳐지는 페리지갤러리는 스마트폰 부품 제조업체 (주)KH바텍이 2014년 마련한 비영리 전시 공간이다. 문화예술을 통한 나눔을 실천하고자 한국 현대미술을 견인해온 40대 작가들의 지원하기 위해 김기라, 권오상, 홍경택 작가를 페리지 아티스트로 선정해 전시를 진행하게 된다.
CNB=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