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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임용석 교수의 ‘스포츠와 인권’<11>…프로와 아마추어, 정도와 권도

결과만 바라보고 과정은 무시, 근시안적 행정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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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성호기자 |  2014.06.03 10:41:08

“Citius, Altius, Fortius.”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라는 라틴어로 올림픽 표어다. 남보다 ‘더’ 뛰어나야만 이길 수 있다는 스포츠의 결과 측면이 내재돼 있다. 


이는 그동안 올림픽이 추구해온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 초기에는 순수한 스포츠 참여와 경쟁의 즐거움을 내포하고 있는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과정의 중요성에서 시작됐지만 표어는 결과 지향적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은 아마추어리즘과 상대적 개념이다. 어떤 일에 대해 뛰어난 기량을 갖춘 전문가적 마음과 정신이다. 전문가란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전문성을 획득한다.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그들은 성취도도 높은 편이다.


한국 농구 국가대표 팀에 귀화선수 열풍이 불고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2014년 9월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결과를 위해 ‘더 큰 키, 더 뛰어난 신체능력, 더 훌륭한 기술’의 ‘전문가’를 모시려는 노력이다. 


남자 대표팀의 귀화대상은 2013-2014년 SK나이츠에서 뛰었던 애런 헤인즈(Aaron Haynes)다. 여자 대표팀의 귀화대상은 2012-2013년 삼성생명에서 활약했던 앰버 해리스(Amber Harris)다. 그런데 대한농구협회는 아시안게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들이 귀화를 하더라도 사실상 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해당국가에 지속적으로 3년간 체류해야한다’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lympic Council of Asia)의 규정 때문이다. 귀화 추진은 대한농구협회의 안일한 준비와 주먹구구식 행정이 빚은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대한농구협회의 판단착오를 계기로 우리 스포츠계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태극마크만 달면 국가대표가 되는가?’


첫 번째로 국가대표의 의미 문제다. 스포츠 국가대표는 나라를 대표하는 운동선수다. 국가대표는 한 나라의 얼굴이며 이미지다. 운동실력 뿐 아니라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정체성(Identity) 역시 국가대표여야 한다. 생활에서도 모범이 돼야 한다. 운동장 밖에서 일부 국가대표선수의 부적절한 행동과 언행이 이슈가 되는 이유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 두 번째로 국내선수 육성 문제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의 각종 국제대회 때마다 불거지는 이슈는 대표 팀의 세대교체다. 문제는 내부가 아닌 외부자원을 동원해 세대교체를 추진한다는 점이다. 물론 대만, 카타르, 필리핀 등의 나라들이 현역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선수를 귀화 국가대표로 영입했거나 추진 중이다. 


문제의 핵심은 대표선수 선발의 기반이 되는 국내선수 발굴, 육성의 무관심이다. 국가주도로 소수의 학생선수만을 집중, 육성하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구조는 열악하다. 진정한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세대교체를 위해서는 한국 스포츠의 자원이자 기반인 학교운동부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누구를 위한 대표선수인가?’ 마지막으로 성적지상주의의 문제이다. WKBL(여자프로농구협회, Women’s Korea Basketball League)은 앰버 해리스가 귀화하더라도 국내 리그에서는 외국인선수로 적용된다는 이중적인 결론을 내렸다. 각 구단의 전력 평준화란 이유로 ‘한국인’의 의미를 재해석했다. 


남자농구 대표팀의 귀화 대상자 에런 헤인즈도 한국인이 됐다면 앰버해리스와 달랐을까? ‘더 나은 성적’이라는 명목아래 인간의 도구화에 대한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성적을 위한 과정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쇼트트랙 국가대표 ‘빅토르 안’이 모국에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동메달을 안겼다. 그는 쇼트트랙 최초 전 종목 금메달리스트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외에도 최다 메달 수(8개), 2개 대회 3관왕(2006 토리노, 2014 소치), 2개 대회 전 종목 메달획득이란 진기록을 세웠다. 


또 하나 주목해야할 기록은 그가 국적을 바꿔 양국에서 금메달을 따낸 최초의 동계올림픽 선수란 것이다. 그는 2007년까지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다. 바로 ‘쇼트트랙의 황제’라고 칭송받던 안현수의 이야기다.


그는 2011년 12월 부상, 빙상연맹과의 불화, 소속팀 해체라는 삼재(三災) 속에 한국대신 러시아에서의 선수생활을 선택했다. 그는 소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귀화, 운동, 올림픽에 대해 말했다.


“운동을 정말 하고 싶었다.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는 러시아로 귀화했다. 한국보다 훨씬 좋았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아주 쉬운 결정이다. 그것은 내가 쇼트트랙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정도(正道)와 권도(權道)’


1636년 12월, 청나라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의 영토를 침략했다. 병자년에 일어난 오랑캐의 침략, 바로 ‘병자호란(丙子胡亂)’이다. 청나라의 황제는 형제로 지내오던 조선과의 관계를 군신(君臣)관계로 바꿀 것을 강요했다. 조정은 ‘오랑캐와는 협상할 수 없다’는 주전파(主戰派)와 ‘일단은 살고 훗날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화파(主和派)의 주장이 팽팽히 대립했다. 


이때 주전파의 주장은 정도에 해당한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원칙으로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할 도(道)라고 할 수 있다. 주화파의 견해는 권도에 해당한다. 부득이한 경우 상황에 따라 달리 발휘하는 도다.


초반에는 주전론이 우세했다. 이는 전투로 이어졌고, 수많은 인명, 재산 피해를 냈다. 청나라 군사는 열흘 만에 수도 한양을 점령했다. 조선의 왕은 남한산성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이후 인조는 주화파의 의견대로 항복하고 청나라의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을 보였다. 결국 ‘주전론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고, 주화론은 실천 가능한 치욕’일 뿐이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보다 중요한 것’ 순수 한국 사람만으로 국가대표를 구성하는 것은 정도다. 좋은 성적을 위해 외국인 선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권도다. 하지만 귀화 과정에서 이들의 인권이 유린되면 안 된다. 근간이 되는 한국농구의 새싹을 잊어선 안 된다. 정도와 권도보다 중요한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결과만을 바라보고 과정은 무시하는 근시안 적 행정은 단지 ‘꼼수’일 뿐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과정 없는 결과란 있을 수 없다. 결과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스포츠에서 더 그렇다. 과정과 결과 둘 다 중요하지만 우리는 승리를 위해 과정을 무시하곤 한다. 문제의 본질은 성적중심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 불이 있어야 연기가 나는 법이다.


글쓴이 임용석은?

고려대학교에서 스포츠 교육학과 인권을 강의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한 그는 청소년농구 대표를 지낸 전도유망한 선수였다. 불의의 사고를 계기로 책을 쥔 그는 학생선수의 교육 및 교육과정에 대해 관심이 많다. 또 스포츠 현장에서의 훈련성과와 인권 등도 깊이 연구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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