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 즐겁습니까? 아니면 재미없습니까?” 인사를 마친 뒤 곧바로 질문을 한다. 기업 강의에서 질문 시작 기법은 ‘파격’이다. 청중은 여유 있는 듣기를 생각한다. 느슨한 호흡을 기대했던 청중은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 교육장은 처음부터 긴장감이 감돈다. 청중의 눈빛이 빛난다. 강의는 청중의 참여로 박진감 넘친다. 일사천리로 스피디한 진행이 된다. 시작 질문기법은 결론, 구체적인 답을 원하는 현대인의 성향과도 맞다.
강의 주제는 열정, 긍정, 주도성 등이다. 기업 특성에 따라 맞춤강의를 하지만 큰 틀은 비전과 생산성 향상이다. 이 같은 강의에서 진지한 물음표를 던지는 필자는 다소 ‘근엄한 강사’로 인식된다. 하지만 금세 ‘이웃집 아저씨’로 반전된다. 밝은 얼굴로 친근하게 묻는다.
“여러분은 좀비입니까? 행복한 프로입니까?” 의아한 시선들을 향해 설명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떠세요? 출근이 기대되고 오늘 할 일로 설렘이 있죠. 당연히 그렇겠죠. 그렇죠?(웃음)”
필자는 목소리를 조금 낮춘 뒤 “혹, 아침에 일어날 때 이런 생각이 드나요”를 확인한다.
“아이고 죽겠다. 아이고, 찌뿌드드하다. 오늘도 시작이구나. 일단 나가야 월급 받지. 재미없는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중간생략)”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단역 배우처럼 성우 연기를 펼친 필자는 다시 청중에게 선택권을 돌린다. 일상이 부정의 반복인가를 묻는다. 말 없는 긍정눈빛으로 화답하는 그들에게 궁금증을 풀어준다.
“이게 좀비입니다. 영혼이 사라진 존재죠. 젊음과 열정과 시간과 땀을 돈으로 바꾸러 다니는 기계인간입니다.”
다시 질문 한다. “여러분, 요즘 어떠세요? 좀비라는 생각이 드나요?” 강사와 연기인의 경계를 오가는 필자의 열연에 청중은 배꼽을 잡는다. 그와 함께 씁쓸함이 얼굴에 스쳐간다. 청중은 스스로 그 표정의 의미를 잘 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취업을 열망한 회사다. 입사 초기의 열정과 기대감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필자는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한다. “여러분, 문제없는 조직 있을까요?” 모두 다 함께 “아니요”를 합창한다. “네. 잘 아시다시피 문제없는 조직은 없습니다. 다만 문제를 자꾸 들추는 구성원과 희망을 찾는 직원이 있을 뿐이죠.”
하지만 회사 인간은 좀비처럼 보인다. 상당수가 영혼 없는 직장 생활을 한다. 강의는 말과 행동 그리고 휴식이 어우러져야 한다. 생각할 시간을 갖도록 몇 초간 말을 멈췄다. 곧 정적을 깨우는 진지한 질문을 한다.
“여러분과 회사는 무슨 관계이십니까?” 청중이 대답을 생각할 때 필자는 또 한 번 묻는다. “여러분과 회사는 무슨 관계세요?”
한두 명씩 말문을 연다. “갑을 관계요.” 어느새 딱딱해진 분위기. 유연하게 할 작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도 여러분은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가서 물으니까 ‘주종관계’라고 하더군요.” 순간 긴장감을 깨는 공감의 웃음이 터진다.
청중의 기쁨도 찰나다. 필자는 분위기를 냉각시킨다. “여러분, 주종관계가 맞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계약 관계’ 아닌가요. 비즈니스 관계라는 말입니다.”
여기저기서 수긍하는 눈빛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회사와의 비지니스 관계에서 윈윈의 삶입니까? 일방적으로 회사 빨대에 의해 영양분을 빼앗기는 좀비인가요? 직원은 회사의 대주주가 아닙니다. 직원 모두의 등 뒤에는 ‘회사’라는 빨대가 꽂혀있습니다.”
낙담하는 눈빛이 여기저기에 떨궈진다. 어깨가 처진 회사인간, 체념의 물결이 강의장에 스멀스멀 치올라올 때 본론을 말했다.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프로는 다릅니다. 프로는 자신의 빨대를 꺼내서 회사에 꽂습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몇몇 참여자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들의 경험과 생각을 들었다.
이제 시선이 필자에게 고정된다. “예를 들어 봅니다. 오늘 같은 교육에서도 이미 좀비인 분들은 ‘바빠 죽겠는데 뭔 교육이야. 교육 받는다고 뭐가 바뀌나. 차라리 휴가를 주거나 돈을 주지. 교육은 다 뻔하지 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분위기는 희망으로 칠해졌다. 더 짙은 푸른색을 기대하는 청중에게 말한다. “하지만 프로는 다릅니다. 이왕 시간을 냈다. 중간에 가지도 못한다. 그럼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이를 염두에 두고 뭐라도 얻으려고, 즐기려고 노력 합니다. 바로 이것이 좀비와 프로의 차이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과 삶에서의 만족도가 달라지는 이유입니다.”
사실, 회사는 거대한 인맥의 산맥이다. 엄청난 매장량의 노하우 광산이다. 무한한 기회의 무대이다. 실시간 흐름을 알 수 있는 정보의 바다다. 든든한 후견인이고, 안락함을 선물하는 안식처다. 프로는 이를 잘 안다. 프로는 이를 활용하기 위해 회사에 빨대를 꽂는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짜내는 빨대를 꽂는다. 이것이 프로 회사, 프로 직원의 모습이다. 서로 윈윈 빨대를 가질 때 비지니스 관계인 직원과 회사는 동반성장 한다.
좀비는 시간만 허비한다. 조직의 작은 아쉬움을 큰 불만과 불평으로 키운다.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적당한 수준의 일만을 하려고 한다. 스스로 조직을 떠나려 한다. 이에 비해 같은 조건에서도 프로는 능력을 발휘한다. 조직에서도 그를 붙잡으려 하고, 주변에서도 스카우트 하려 한다.
어떤 삶이 다이내믹하고 능동적인가. 누가 행복한 일터의 주인공이겠는가. 열정, 긍정, 주도성은 프로의 특징이다. 당연히 행복도 프로의 몫이다. 과연 그대는 어떤 직장인인가.
글쓴이 방용운
기업교육 15년째인 필드고수다. 회사의 목소리와 현장의 함성을 강의에 제대로 담는 ‘강의의 달인’이다. (주)런투 컨설팅 교수실 실장이고, 윌슨러닝코리아 교수 그룹장을 역임했다. http://blog.naver.com/bangp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