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가 공정위 의결서, 고소장, 대리점주들의 진술서, 국순당의 답변서 등 사건과 관련된 일체의 자료들을 단독 입수, 국순당 사태의 총체적 진실을 조명해봤다. (CNB=도기천 기자)
대리점 앞세워 거래처 정보 수집
앞치마 수량까지 파악…사찰(?) 수준
수집된 정보 신규사업자에 넘겨 논란
기존대리점, 권리금도 못받고 쫓겨나
지난 9일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서봉규)는 지난 수년간 제기돼온 국순당의 각종 불공정거래 의혹과 관련, 삼성동 국순당 본사를 압수수색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영업관련 문건 등을 확보했다.
검찰이 ′갑의 횡포′와 관련해 본격 수사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여름 아모레퍼시픽, 토니모리 등 화장품업계 ‘갑을 논란’이 치열했을 때도 검찰은 뒷짐을 지고 있었다.
검찰이 국순당에 대해 사정칼날을 들이댄 것은 대리점주들이 본사를 고소한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10월 국순당 대리점주 18명은 신제품을 강제로 떠넘기는 등 국순당 본사의 ′밀어내기′ 횡포를 문제 삼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바 있다.
CNB가 단독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일부 언론에 알려진 물량밀어내기 외에도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 위반, 강요죄, 업무방해 등 여러 혐의가 명시돼 있었다.
대리점주들이 검찰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공정위의결서, 물품공급계약서, 도매점 정보입력사항, 진술서 등을 종합해보면 본사 차원의 불공정행위가 공공연히 계속돼 온 것으로 보인다.
대리점주들의 주장에 따르면 국순당은 2001년경부터 도매점포털관리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2004년경에 이르러서는 경영통합관리프로그램인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를 도입했다.
문제는 ERP를 회사내부의 경영정보를 관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대리점주들을 앞세워 거래처 정보를 수집, 활용해 왔다는데 있다.
국순당은 본사가 대리점에 도매가로 물량(주류)을 공급하고, 다시 대리점이 해당지역 거래처(식당, 주점 등)에 물량을 납품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본사는 대리점주들에게 거래처와의 거래내역을 수시로 ERP에 입력토록 했다. 이를 어길 경우 대리점평가제에 반영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놨다는 게 대리점주들의 주장이다.
ERP에는 거래처상호, 사업자등록번호, 대표자명, 대표자 생년월일, 전화번호, 사업장규모, 테이블 개수, 종업원의 숫자, 주메뉴, 월평균 매출 등이 상세히 입력됐다. 심지어 거래처 벽면의 국순당 포스터와 경쟁업체 포스터 부착 수량, 국순당 판촉물(로고가 들어간 차림표, 앞치마 등)의 비치 수량까지 수시로 입력토록 했다.
이를 위해 본사는 대리점주들에게 PDA를 5~10대씩 의무적으로 구입토록 했으며 성실 기재 여부를 대리점평가에 반영했다. 사실상 사찰(伺察)과 다름없는 일들이 저질러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이 취득된 거래처 정보를 대리점 계약이 해지되거나 대리점주가 바뀌더라도 삭제하지 않고 계속 활용해 왔다는 점이다. 거래처나 대리점주의 동의없이 정보 소유권을 본사에 귀속시킨 것.
이같은 정보는 대리점을 통제하는 무기(?)로 활용됐다. 대리점평가제에서 하위등급을 차지한 대리점을 퇴출시키는 근거자료가 됐고, 영업지역 이전, 기존영업점 인수(사업자 교체) 등에 거래처 자료가 활용됐다.
심지어 대리점주들의 단체행동을 방해하는데도 이용됐다. 국순당 대리점협의회에 가입돼 있던 염모씨는 지난 2009년경 본사 영업사원으로부터 협의회 탈퇴를 종용 당했다고 한다. 염씨가 이를 거부하자 영업직원들이 직접 거래처에 주류를 공급했다. 이때 활용된 게 ERP에 입력된 거래처 정보였다는 게 염씨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 국순당은 지난 2009년 퇴출프로그램인 소위 ‘H프로젝트(H-Project)’를 시행, 판매실적이 부진한 대리점주 23명에 대해 계약해지를 진행한 바 있는데 이때도 ERP를 활용했다.
이들 23개 대리점은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본사가 대리점 모집공고를 내 신규사업자를 모집했다. 국순당은 모집된 신규사업자들에게 “기존 대리점주에게 권리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또 신규사업자들에게 기존 대리점주들의 거래처 정보를 제공했다.
부당퇴출도 문제지만 기존 대리점이 권리금을 받을 수 있는 근거인 거래처 관련 정보를 본사가 취득해 활용하는 바람에 기존 대리점주들은 권리금 한 푼 못받고 쫓겨나게 된 것이다.
21살에 국순당 영업사원으로 입사, 이후 대리점을 운영해 오다 H프로젝트에 의해 퇴출된 김모씨는 검찰에 제출한 호소문에서 “15년간 국순당과 함께 하며 청춘을 보냈지만, 결국 피눈물을 흘리며 대리점 포기각서를 써야 했다”며 “자식들에게 국순당에서 일 했었다는 걸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현행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 제18조에 따르면,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기업에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그 기업에 유용한 영업비밀을 취득·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누설한 자는 5년이하 징역 또는 그 재산상 이득액의 2배 이상 10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대리점이 본사와 분리된 별개 사업장(기업)이라는 점에서 국순당 본사에 해당 법 위반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성춘일 변호사는 23일 CNB와 통화에서 “대리점은 엄연히 독립된 사업자이므로 영업비밀이 보장돼야 함에도 본사가 대리점의 영업자료 일체를 넘겨받아 활용해온 것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판매목표 못채우면 ‘퇴출’
본사 차원의 물량밀어내기도 논란이 여전하다. 국순당은 2005년경부터 도매점평가제를 운영하며 당시 신제품이었던 ‘삼겹살에 메밀 한 잔’ ‘오십세 주’ ‘백세주 담’ 등에 대해 판매목표를 설정, 대리점에 해당 주류를 할당했다.
대리점들은 도매점평가제, H프로젝트 등에 의해 벌점을 받아 퇴출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신제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특히 명절 때는 본사 영업사원들이 백세주 세트, 차례주 등을 구매토록 강요했다.
구매대금은 매월말 본사로 입금됐다. 대리점주들이 검찰에 제출한 회계자료에 따르면 매월 말경에 출금액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대리점들은 실제 판매된 수량과 상관없이 매월말 구매대금을 본사에 입금해 온 것이다.
대리점주들은 “월말이 다가오면 영업사원이 전화를 걸어와 판매목표량을 채우지 못했다며 벌점 운운했다”며 “판매하지 못한 물량은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었고,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입을 모았다. 성 변호사는 “갑의 지위를 이용해 물량을 떠넘긴 행위는 형법상 강요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국순당에 대한 최근 검찰수사는 지난 5년 간 본사와 대리점주 간 분쟁이 계속돼 온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을(乙)을 지키는 길 위원회)의 중재가 무산된 이후 양측 간 고소고발이 잇따르는 등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자 검찰이 나섰다는 분석이다.
국순당 사태의 시작은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H프로젝트’에 의해 퇴출된 대리점주들 23명 중 3명이 국순당을 공정위에 제소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5월 국순당이 거래상 지위를 남용했다고 의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억원을 부과했다.
이후 국순당은 공정위 시정명령을 이미 모두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불공정 약관을 수정하고, 과징금을 납부했다는 것.
하지만 피해대리점주들에 대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자 대리점주 18명이 지난해 7월 말부터 3개월 가까이 국순당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지난해 8월에는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국순당 본사를 방문, 두 차례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자 국순당은 공정위 심결을 받은 3곳의 대리점에 대해서만 불공정한 계약해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나머지 대리점들은 자율 폐업했다며 피해배상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자율 폐업’의 근거가 된 것은 대리점주들이 쓴 ‘대리점 포기각서’였다. 대리점주들은 이 각서가 강요와 협박, 회유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반품 비용이라도 건지려면 포기각서를 써라’는 영업사원들의 강요에 시달려 각서를 쓰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양측의 교섭을 중재했던 을지로위원회 관계자는 23일 CNB와 통화에서 “공정위에 제소해 부당한 계약해지를 당했다고 결정된 3명의 대리점주 외에는 (국순당이) 협상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며 “결국 3명만 상대로 협상이 진행됐지만 이마저도 양측의 입장차가 커 결렬됐다”고 밝혔다.
협상이 무산되자 대리점주 18명은 지난해 10월 국순당 배중호 대표 등을 검찰에 고소했다. 국순당 역시 배 대표에게 사과 및 손해배상을 요구한 염유섭 대리점협의회 회장 등 대리점주 4명을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강남경찰서에 맞고소했다.
이 즈음 배 대표는 국회 국정감사장에 불려가 강제퇴출이 있었음을 시인하고 “대화를 통해 대리점주들과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지만 결국 공수표가 됐다.
국순당은 여전히 공정위 결정이 난 3명 외에는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들에 대해서는 지난 3월 법원에 보상금 조정을 신청, 오는 30일 2차 조정을 앞두고 있다.
무더기 사법처리 가능성
한편 검찰은 국순당으로부터 압수한 컴퓨터 하드디스크 분석을 통해 국순당이 ERP를 불법적으로 활용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고소인(대리점주 18명)들의 주장처럼 거래처 정보(영업비밀)를 이용해 대리점을 통제하고 권리금 행사를 방해했는 지를 수사 중이다. 또 매출자료 등을 분석해 물량밀어내기의 실체를 밝힐 계획이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국순당 직원들을 차례로 소환해 사실여부를 확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피소된 국순당 임직원은 배중호 대표이사를 비롯, 본부장 1명, 부장 2명, 과장 2명, 영업팀 18명 등 총24명에 이른다. 수사 향배에 따라 무더기 사법처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사건 대리인인 성춘일 변호사는 “공정위는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조사한 것이고, 이번 검찰 수사는 형법 위반여부를 다루고 있다”며 “검찰이 어떤 혐의에 무게를 두고 있는 지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ERP시스템, 대리점과의 입출금자료 등을 분석해 보면 상당한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CNB는 국순당 측에 각종 의혹과 관련, 공식 질의 했지만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하기 어렵다”는 짧은 답변만 돌아왔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