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의회 상원의원인 앨 프랭큰 의원이 삼성전자 측에 보낸 갤럭시S5 관련 서면 질의서 문건.(사진=정찬대 기자)
미(美) 연방의회 상원의원이 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갤럭시S5의 지문인식 보안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삼성전자 측의 답변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낸 것으로 CNB 취재결과 확인됐다.
애플과 삼성이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시점에 나온 미 연방의회 의원의 서신은 향후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미 의회가 삼성에 대해 ‘글로벌기업 길들이기’를 시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이 문제가 외교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매우 이례적”이라고 강조했다.
앨 프랭큰 “갤럭시S5, 생각만큼 안전하지 않아 염려”미 연방상원 사법위원회 산하 사생활·기술·법 소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소속 앨 프랭큰(Al Franken) 의원은 지난 13일(현지시각) 삼성전자 측에 갤럭시S5의 지문인식과 관련 다양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서면 질의서를 보내왔다.
CNB가 입수한 해당 문건에 따르면 프랭큰 의원은 서신에서 “갤럭시S5의 지문스캐너가 생각만큼 안전하지 않아 이로 인한 보안의 틈새가 (미국사회에) 광범위한 보안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보고에 염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서신을 받은 날로부터 1달 내에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삼성전자 측은 현재 답변서를 준비 중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1일 CNB와 통화에서 “미 의회 의원으로부터 갤럭시S5에 대한 질의서를 받았다”며 “현재 답변서를 작성 중에 있다”고 이를 확인해줬다.
프랭큰 의원은 지문스캐너의 보안 문제와 관련해 “차문·유리잔·스마트폰 스크린 등 하루 동안 만지게 되는 셀 수 없는 물건에는 지문이 남는다”며 “비밀번호와 달리 지문은 바뀌지도 않는다. 해커가 지문을 확보하게 되면 완전히 그 사람처럼 행세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프랭큰 의원에 따르면 아이폰5s의 지문인식 장치는 단순히 핸드폰의 잠금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부 앱에서의 사용은 철저히 통제된 앱에서만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 내 보편적인 기준에 따른 조치다.
반면, 갤럭시S5의 경우 지문인식 사용이 광범위하고 모든 앱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쓰인다고 지적한다. 결국 갤럭시S5가 미국 보안시스템 및 개인정보 유출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 “갤력시S5 지문스캐너는 오류가 나더라도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할 수 있고, 어떤 앱에서든 비밀번호 대신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갤럭시S5 지문스캐너를 페이팰(PayPal·인터넷 결제서비스) 상에서 송금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비밀번호 앱에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악용 가능성을 우려했다.
실제로 지난 달 독일 보안업체 시큐리티 리서치랩스(SRL)는 갤럭시S5의 지문스캐너에 접착제로 만든 가짜 지문을 인식시키는 방법으로 잠금을 해제하는 장면을 영상에 담아 인터넷에 공개한 바 있다.
프랭큰 의원은 13가지 질문에 대해 삼성전자 측의 답변을 요구했다. 해당 질문은 법적·기술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이 포함돼 있다.
▲갤럭시S5의 판촉행사 광고물.(사진=연합뉴스)
美의회 ‘글로벌기업 길들이기’…도요타·소니 이어 삼성?미 의회는 글로벌기업에 대해 잇달아 청문회를 여는 등 기업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10년 2월 도요타 자동차의 최고 경영자인 도요타 아키오 사장의 미 하원 청문회 출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타국 기업의 CEO가 다른 나라의 청문회에 출석할 의무를 지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그리고 이는 2011년 4월 ‘소니 사태’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소니는 지난 2011년 4월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PSN) 서비스에 대한 해킹공격으로 7,700만 명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됐고, 미 하원 상업·제조 및 무역 소위원회는 이와 관련 청문회를 진행했다.
소니의 히라이 카즈오 사장은 미 의회의 계속된 요구에 불응한 채 청문회 출석을 거부했고, 결국 계속된 압박에 소위원회 질문에 대한 답변서와 증빙자료를 제출했다.
그런데 최근 미 의회의 삼성전자 흔들기가 심상치 않다. 일각에선 일련의 흐름을 두고 미 의회의 ‘글로벌기업 길들이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것은 다시 자국기업에 대한 보호무역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특허권 침해를 이유로 삼성전자와 애플의 제품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ITC(미국무역위원회) 판결에 대해 애플의 대해서만 거부권을 행사, 노골적인 보호무역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앨 프랭큰 의원이 갖는 상징성…美 정치상황 염두프랭큰 의원은 집권당인 민주당 소속 연방의회 상원의원으로 현재 상원 사법위원회(우리나라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해당) 사생활·기술·법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가 맡은 소위는 인터넷을 포함한 기술의 사용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다룬다. 삼성전자 측에 보낸 서신도 소위 위원장 자격으로 보낸 것이다.
프랭큰 의원은 지난 2008년 대선과 같이 치러진 선거에서 정밀 재검표를 통해 득표수가 역전되면서 상원에 입성한 인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추진을 도울 수 있는 상원 의석 확보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그는 특히 유대인 출신으로 미국의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시사평론가이자, 미국의 간판 오락프로그램인 SNL(Saturday Night Live)에서 활약한 유명인사다.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TV분야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에미상을 3차례나 수상하기도 했다. 또 상원의원이 되기 전까지 자신의 이름을 딴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정치적 영향력 이상으로 대중적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이라는 평가다.
갤럭시S5의 보안성 문제를 이슈화하는데 있어 가장 확실한 위치에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되는 배경이다.
미국 내 정치상황도 우려되는 변수 중 하나다. 현재 미 정가는 11월 실시되는 중간선거의 예비경선이 한창이다. 민주당 우세에서 공화당 우세로 상원 의석수의 변화가 점쳐지고 있어 민주당이 보호무역을 앞세운 전략으로 갤럭시S5의 보안성 문제를 이슈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앨 프랭큰 의원 홈페이지 모습(사진=홈페이지 캡처)
미 의회 의원의 질의서 발송…문제는 없나프랭큰 의원은 삼성전자 북미(北美) 법인과 함께 서울 삼성전자에 해당 서신을 보냈다. 수신인은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타 국가 의회 의원이 이처럼 외국 기업의 CEO에게 직접 서신(질의서)을 보낸 것은 드문 경우다. 제재 방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나 국제적 통상마찰을 우려해 이를 자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20일 CNB와 통화에서 “기업에 대한 문제제기는 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자칫 기업 길들이기로 비칠 수 있어 조심스런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는 “만약 (프랭큰 의원 서신이) 자국기업을 보호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는 외교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어쨌든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한 입법조사관(변호사)도 본지와 통화에서 “정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글로벌기업을 규제하려 한다는 지적이 그간 있어온 것이 사실”이라며 “도요타가 미 의회에 굴복한 일이 나쁜 선례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사관은 추후 삼성전자 측 대응에 대해 “미국 내 상황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게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서신을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등 소극적인 대응을 해선 안 된다”며 “적극적인 해명을 통해 상대방(프랭큰 의원)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삼성전자 관계자도 “성실하게 답변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향후 대응을 묻는 질문에 “현재로선 드릴 말씀이 없다”며 “답변서를 보낸 이후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