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도기천 정경부장) 재무구조가 취약해 금융당국의 관리대상이 된 기업들의 명단이 알려지면서 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등은 지난 12일 주채권은행에 의해 관리되는 42개 주채무계열 기업 중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14개사를 올해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 대상으로 선정했다.
기존 개선약정을 맺고 있던 기업은 한진 STX 동부 금호아시아나 대한전선 성동조선 등 6개사다. 이중 올해는 대한전선이 빠지고, 대성 대우건설 동국제강 한라 한진중공업 현대 현대산업개발 SPP조선 STX조선해양 등 9곳이 추가됐다.
주채무계열 대상기업이 지난해 30개사에서 올해 42개사로 늘어난데 이어, 재무개선 약정 기업까지 급증했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상황이 악화됐음을 방증하고 있다. 특히 새로 관리대상이 된 기업들이 주로 조선, 해운, 건설 등 기반산업과 연관된 분야라는 점에서 우려를 더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는 재무구조가 부실한 기업들을 관리, 개선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해왔고, 대표적인 대책으로 내놓은 게 재무구조개선 약정이다. 대기업들에게 돈을 꿔 준 은행들이 직접 각 기업들의 재무구조를 평가해 부실을 사전에 예방하자는 취지다.
채권은행과 재무개선 약정을 체결한 기업들은 몸집을 크게 줄여야 한다. 계열사 매각 등 사업 구조조정,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은 물론 채권단과 금융당국의 요구가 있을 경우, 오너일가의 계열사 지분 매각도 불가피하다.
주채권은행이 매년 두 차례 약정 이행 여부를 점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으로 갈 수 있다. 이 때문에 해당 기업들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재무평가, 업종별 특성 고려해야
문제는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경영간섭이 기업 활동을 위축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금융권이 약정 체결과 관련,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해 자금 조달 코스트만 높인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업종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부채 규모로만 판단하고 있다는 것.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래 기업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투자활성화 대책을 여러 차례 내놨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투자에 나선 기업들은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끌어 왔는데, 일부 는 이 과정에서 부채가 커졌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당국은 최근 주채무계열 선정 범위를 넓혔다.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 중 금융사 대출이 금융권 전체 신용공여액의 0.1%를 넘는 기업으로 대상을 한정해 오던 것을 올해부터는 0.075%로 하향 조정했다. 지배구조 등 비재무항목도 평가에 일부 적용했다.
여기에 경기불황이 더해지면서 올해 주채무계열과 재무개선약정 대상기업이 크게 늘었다. 한마디로 투자하라 해서 투자하다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대우건설, 한진그룹 등이다. 지난 수년간 적극적인 해외투자를 해왔던 대우건설은 최근 11억3500만 달러(한화 약1조1700억원) 규모의 쿠웨이트 클린 퓨얼 프로젝트 공사를 수주해 해외건설 누적 수주 505억9700만 달러를 달성했지만, 올해 처음으로 재무구조 개선 약정 기업이 됐다.
한진그룹은 최근 유동성 위기에 처한 한진해운을 인수하면서 명실공히 육해공(육:(주)한진, 해:한진해운, 공:대한항공) 글로벌 물류 기업의 기반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인수에 따른 부채증가로 재무구조 개선 약정이 올해도 이어졌다.
관리대상 기업이 되면 자금융통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다, 해외투자에서 여러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재무개선 과정에서 ‘알짜 계열사’를 시장에 내놔야 하기 때문에 추후에 유동성이 개선되더라도 경쟁력 기반이 취약해 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생각해볼 일이다.
물론 재무개선 약정의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계열사 지원 등을 사전에 차단하고 재정건전성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채권단의 긴급자금수혈로 위기를 돌파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들의 투자활성화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에서 재무평가를 강화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투자를 하려던 기업들은 주춤할 수밖에 없다.
재무구조 뿐 아니라 영업 개선 추이, 업종별 특성, 미래 성장력 등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당국은 관리 대상 기업을 늘리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기업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아야 한다.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生物)이다. ‘사고의 전환’이 항시 요구되는 게 ‘시장’이다.
(CNB=도기천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