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체온 치료를 마치고 정상 체온을 회복할 때까지 48시간이 걸려 이 회장의 의식 회복 여부는 13일 오전 중에나 파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CNB=도기천 기자)
건강악화 장기화… ‘그룹경영·후계구도’ 파장
‘전자(이재용)-화학·서비스(이부진)-패션(이서현)’
사업재편 가속화 될듯…'마하경영' 차질 우려도
이 회장은 1999년 폐암 수술을 받은 후부터 건강악화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당시 폐 부근 림프절에서 암세포가 발견돼 수술을 받았었다. 이후 줄곧 폐를 비롯한 호흡기가 좋지 않았다. 2009년에는 기관지염으로, 지난해 8월에는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12년 11월 말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수상자들과의 만찬 직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출근한 뒤 100일 넘게 출근을 하지 않고 해외에 체류해 건강 악화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초 지난해 6월 7일이던 신경영 20주년 기념 만찬이 10월 말로 두 차례 연기된 것도 건강 이상설의 불씨가 됐다.
이 회장은 해외출장 등을 구실로 지난해 가을부터 봄까지 미국 하와이 등 따뜻한 지역에서 지내왔다. 이 회장은 최근 귀국해 그룹 사업재편과 미래전략실 인사 등을 직접 챙겼지만 건강 악화설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 회장이 고령인데다 수술 등으로 줄곧 호흡기가 좋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치료가 끝나더라도 당분간 요양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이 입중치료 중인 삼성서울병원의 의료진은 “초기 응급 치료를 매우 잘했고 심장 시술도 성공적이어서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이 회장이 얼마나 병원에 입원해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금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이 회장의 병세는 스텐트 시술의 경과와 폐 질환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하겠지만, 앞으로 1주일 정도가 고비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는 지난주 삼성SDS 연내 상장 발표를 비롯한 일련의 조치들이 이 회장의 건강 문제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지배구조 재편이 삼성그룹에서 밝히는 사업 경쟁력 강화 등 대외적인 목표 외에 만약에 있을지 모를 경영상의 변화까지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것.
삼성그룹 관계자는 12일 CNB와의 통화에서 “최근의 사업구조 재편은 관련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를 위한 것으로 (이회장의) 건강 문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지만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보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있다.
지난해 연말 제일모직의 패션사업부문을 삼성에버랜드로 이전하면서 시작된 삼성그룹의 경영혁신은 ‘전광석화(電光石火)’에 비유된다. 삼성SDS, 삼성에버랜드, 제일모직, 삼성SDI, 삼성종합화학, 삼성석유화학, 삼성생명 등 핵심계열사들이 최근 6개월새 줄줄이 합병·이전·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제일모직이 패션사업부문을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에 넘기는 대신 삼성에버랜드는 건물관리업을 떼내 삼성에스원에 양도하고 급식업을 분리했다.
삼성SNS와 삼성SDS를 합병하고, 삼성코닝정밀소재는 미국 코닝사에 매각했다. 올 3월에는 제일모직과 삼성SDI가 합병했다. 뒤이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으로 중화학 부문을 정비하고, 삼성증권·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에 대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최근에는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 계열사들의 지분 정리 작업도 시동을 걸었다. 삼성전기, 삼성정밀화학, 삼성SDS, 제일기획 등 비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을 처분하고, 삼성화재와 삼성자산운용 등 금융 계열사의 지분을 삼성생명 쪽으로 모으고 있다.
이 회장 일가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삼성SDS를 연내 상장하겠다는 지난주 발표는 구조개혁에 방점을 찍었다.
삼성SDS를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 도약시키기 위해서라고 삼성 측은 밝혔으나, 재계 주변에서는 이를 그룹의 3세 승계 구도나 지배구조 재편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는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11.25%)과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3.90%),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3.90%)이 지분을 나눠갖고 있는 삼성SDS가 에버랜드와 함께 경영권 승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이 회장의 건강악화를 염두에 두고 사업재편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외아들인 이재용(46)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금융 계열사를 맡고, 장녀인 이부진(44)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건설·중화학을, 차녀인 이서현(41) 제일기획 사장이 패션·미디어를 맡는 이른바 ‘3분(分) 전략’에 본격 시동을 건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래의 먹거리가 될 사업을 키우고 부실한 사업은 축소·보강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이후 승계 구도까지 염두에 둔 복합적인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삼성그룹은 이 회장의 건강악화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매주 월요일에 하는 팀별 주간회의를 그대로 진행했으며, 매주 수요일 열리는 사장단 회의 역시 예정대로 이어갈 계획이다.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오전 병원에 들러 이 회장의 상태를 살펴보고 나서 회사에 출근했다. 전날 이 회장의 곁을 지키던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도 평소처럼 출근해 업무를 봤다.
병원에는 삼성그룹 관계자 몇 명만 남아 이 회장의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고 내부에 보고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지하에 마련된 임시 기자실은 전날보다 붐비지 않았지만, 이 회장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취재진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은 “각 계열사들이 별다른 동요 없이 평소 해오던 대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