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경제부장
일반적으로 교통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빨간 신호등(적신호)’이다. 이러한 ‘적신호’를 무시했을 때, 우리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차도 건너편에 ‘적신호’가 켜지면 반드시 멈춰 서서 주위를 잘 살피고, ‘파란 신호등’이 들어왔을 때 손을 들고서 길을 안전하게 건너도록 교육을 받아 왔다.
이후 어른이 되었을 때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횡단보도 앞에 ‘적신호’가 켜져 있더라도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마음속으로 ‘급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무단으로 횡단해 본 경험이 대부분의 성인들이라면 누구에게나 몇 번쯤은 있을 법하다. 이는 우리가 가는 길에 ‘적신호’의 존재를 방해물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16일 대한민국을 강타한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다. ‘적신호’는 결코 우리 앞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던 친구였으며, 우리가 매사에 ‘빨리빨리’를 외치며 서두르는 것을 막아주고, 또 우리를 지금 이 순간으로 인도하면서 생명과 기쁨 그리고 평화를 얻게 해준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나라 곳곳에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적신호’가 켜져 있지만, 이를 충실하게 지키겠다는 올바른 질서 의식은 눈을 씻고도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국가와 민생은 도외시한 채 오직 그들만의 사익을 위해 정쟁의 이전투구를 일삼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퇴직 관료들의 안락한 노후 보장을 위한 ‘관피아(관료+마피아)’ 행태에서, 경제 질서를 외면하는 비정상적인 기업 성장과 오너 일가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정경유착, 횡령, 배임 등의 각종 비리와 불법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재벌들의 뻔뻔함에서도, 또 모든 사람의 공유물이어야 할 문화계의 재산들이 가진 자들의 사유화 내지 부정축재 등의 대상으로 이용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적신호’를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이들이 사회 도처에 너무도 많다는 사실에 그저 경악할 수밖에 없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민낯을 드러낸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적신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망각한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탐욕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또 신호를 위반한 대가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 온 국민이 뼈저리게 느끼게 하고 있다.
처음 사고의 초동대응에서 보여준 정부당국의 모습은 무질서, 무관심, 무책임의 결정판이 무엇인지를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줬으며, 6·4 지방선거를 앞둔 예비후보자들을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의 망언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태는 오히려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또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자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비리가 검찰수사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이들의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행태를 지켜보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도덕불감증의 극치란 과연 이런 것이구나’하는 냉소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간접적으로 사고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의 실체가 파헤쳐지고, 산하 단체의 기관장들의 줄 사퇴가 이어지는 가운데 ‘관피아’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도 거세게 나오고 형국이다.
이 모든 사태는 어느 누구, 어떤 단체만의 잘못이 아니다. 이미 대한민국의 곳곳에는 ‘적신호’가 가득 켜져 있었는데, 그 ‘적신호’를 무시하고 그동안 길을 계속 건너왔으며, 이번에 또 길을 무단으로 횡단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해 처절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신호를 무시한 이들은 물론, 그들을 보면서도 방관한 사람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적신호’는 우리의 정신을 올바르게 깨워 주고 안전하게 길을 인도하는 친구와 같은 존재이며, 우리 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질서인 것이다. 이미 소는 잃었지만 지금이라도 잠깐 멈춰 서서 ‘적신호’를 확인하고 외양간을 확실하게 고쳐야 한다. 그래서 ‘적신호’를 잘 살피고 안전한 길을 갈 수 있도록 올바른 질서를 다시 찾아야 할 때다.
(CNB=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