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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건축물 ‘구 수원시청사’ 등 11건 문화재로 등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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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왕진오기자 |  2014.05.02 17:20:25

▲구 수원시 청사.(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2일 '구 수원시청사', '구 수원문화원', '양평 지평양조장', '고양 행주수위관측소', '남양주 고안수위관측소', '고양 흥국사 대방', '서천 구 장항미곡창고', '광주 조선대학교 부속중학교 구 교사', '광주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본관', '임실 회문 보루대','임실 운암 보루대' 등 11건에 대해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다.

구 수원시청사’는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돌을 사고석 형태로 다듬어 외벽 마감을 하고, 상자 모양의 창틀을 설치하여 입면의 단조로움을 보완한 것이 특징이다.

6.25 전쟁 이후 우리나라 모더니즘 건축이 시작되는 시기에 건립된 관공서 건물로서, 서양 기능주의 건축의 영향을 받은 한국 근대 건축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구 수원문화원’은 금융회사인 조선중앙무진회사의 사옥으로 건립된 벽돌조 2층 건물로 광복 후 오랫동안 수원문화원 건물로 사용됐다.

평면은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이며, 창호 몰딩(moulding)을 벽돌 쌓기 벽체보다 돌출시켜 입체적으로 구성하였고, 정면의 창호에 꽃봉오리 모양을 장식하여 강조하는 등 규모는 작지만 장식적인 요소가 많다.

▲'고양 행주수위관측소’.(사진=문화재청)

‘양평 지평양조장’은 현재 3대에 걸쳐 이어온 전통 제조 기술을 그대로 유지하여 전통주를 제조하고 있는 건물이다. 환기를 위해 높은 창을 두고, 보온을 위해 벽체와 천장에 왕겨를 채웠으며, 서까래 위에 산자 대신 대자리 형식으로 짜고, 외벽 일부에 흙벽돌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일제 강점기에 한식 목구조를 바탕으로 일식 목구조를 접합하여 대공간을 구성한 절충식 구조로 당시 막걸리 생산 공장의 기능적 특성을 건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고양 행주수위관측소’와 ‘남양주 고안수위관측소’는 부자식(浮子式) 자기수위계를 설치하여 한강의 수위를 관측하던 시설이다. 정통(井筒), 관측소로 이루어진 타워, 강안(江岸)에서 관측소를 연결하는 교각 등으로 구성되는데, 현재 교각은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건립 당시의 토목 기술과 수위 측정 방식 등을 알 수 있는 시설물로써 가치가 있다.

‘고양 흥국사 대방’은 정토 염불 사상이 크게 성행하던 근대기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염불 수행 공간과 누·승방·부엌 등의 부속 공간을 함께 갖추고 대웅전을 실제적·상징적 불단으로 삼아 염불 수행을 하도록 구성된 독특한 형식의 복합 법당이다. 기존의 전통적 방식을 벗어나 복합적이고 기능적인 근대 건축의 성립을 보여주는 등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독특한 건축 형식, 공간 구성, 시대정신 등을 담고 있다.

▲'서천 구 장항미곡창고'.(사진=문화재청)

‘서천 구 장항미곡창고’는 특별한 형식의 철근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고 그 상부에 도리 방향으로 상호 연결된 목조 트러스로 매우 정교한 지붕틀을 가설하는 등 일제 강점기 창고 건물로서는 매우 독특한 건축기법을 구사했다.

장항이 1920년대부터 대일 곡물 출항 항구로서의 역할이 시작된 후, 1931년 장항선 철도 개통을 계기로 더욱 비중이 커지면서 세워진 쌀 보관 창고 건물이며, 경기·충남 지역의 쌀 수탈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증거물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광주 조선대학교 부속중학교 구 교사’는 벽돌을 쌓은 벽체 위에 목조 트러스를 얹은 1층 규모의 건축물로, 중앙에 주 출입구를 두고 중복도를 중심으로 수평으로 길게 교실을 배치한 전형적인 학교 건물의 평면을 갖고 있다. 조선대학교 최초의 건물로 대학과 지역사회에서 오랜 역사성과 상징성을 지닌 건물로 가치가 있다.

‘광주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본관’은 중앙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편복도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하였으며, 층높이가 높아 수직으로 긴 창호를 설치하여 수직성을 강조한 외관이 특징이다.

1957년 약학대학 교사로 건립되었으나, 1962년 무렵부터 의과대학 본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로 대학에서의 역사적인 가치와 함께 동시대 건축 기술과 대학 교육시설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써 가치가 있다.

‘임실 회문 보루대’와 ‘임실 운암 보루대’는 광복 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던 시기에 지역 방어를 위해서 지역 주민들의 자금으로 축조된 시설물이다. 건립 당시에 ▲ 1층은 총과 탄환, 기타 장비를 보관하였고 ▲ 2층은 숙직실 ▲ 3층은 기관총과 다른 장비를 이용한 사격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광복 이후 어지러운 당시의 치안 상태를 잘 보여주는 시설물로, 빨치산 활동과 경찰에 의한 공비 토벌 등 한국 현대사에서 나타난 혼란 과정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유구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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