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은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바짝 긴장하고 있다. 유 전 회장 일가와 금융권의 오랜 유착관계가 베일을 벗을까? (CNB=도기천 기자)
금감원, 청해진해운 등에 돈 빌려준 금융사 대대적 검사
‘금융판 중수부’ 기획검사국 지휘…가용 자원 총동원
산업·기업·우리은행·농협 등 수십곳 대출금 2000억 육박
‘아이원아이홀딩스’ 세모그룹 지주사로 부활, 자금흐름 주도
금감원은 유 전 회장의 두 아들과 두 딸, 핵심 측근들이 소유하고 있는 10여곳의 기업들이 청해진해운 지주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를 중심으로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세월호 참사가 청해진해운의 부실경영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주목, 청해진해운을 지배하고 있는 유 전 회장 일가 회사들의 자금줄이 된 금융사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금감원은 “모든 인력과 자원을 집중해 유병언 전 회장 일가와 청해진해운을 둘러싼 금융권 비리 가능성을 발본색원하라”는 최수현 금감원장의 긴급 지시에 따라 지난 25일 청해진해운 등에 대한 대출 규모가 가장 많은 산업은행, 경남은행, 기업은행, 우리은행에 대해 특별검사에 착수한데 이어 10여개 신협과 저축은행, 캐피탈사, 보험사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금감원은 청해진해운 뿐 아니라 지주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를 포함해 천해지, 아해, 다판다, 세모, 문진미디어, 온지구, 21세기, 국제영상, 금오산맥2000, 온나라, 트라이곤코리아 등에 돈을 빌려준 금융사 전체를 들여다보고 있다.
대출규모는 산업은행(508억원), 기업은행(376억원), 우리은행(311억원), 경남은행(306억원)이 가장 크다. 다음으로 하나은행(63억원), 신한은행(33억원), 국민은행(12억원), 외환은행(10억원), 대구은행(6억원), 전북은행(4억원), 농협은행(3억원) 순이다.
제2금융권에서는 한평신협(15억원), 세모신협(14억원), 인평신협(14억원), 제주신협(7억원), 남강신협(3억원), 대전신협(2억원), 더케이저축은행(25억원), 현대커머셜(18억원), LIG손해보험(1억원)이 자금을 대줬다.
청해진해운 관계사들은 부동산 매입과 문어발식 사업 확장 탓에 차입금 의존도가 60%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금융공기업인 기업은행은 이처럼 재무구조가 취약한 회사들에 대해 전체 차입금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저금리로 빌려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출규모가 가장 큰) 산업은행 등 4개 은행을 중점적으로 검사하고 있으며, 나머지 대출 금융사에 대해서는 신협중앙회 등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으론 유 전 회장이 지난 2008년 법정관리 중이던 ㈜세모를 인수하는 과정에 금융기관들이 특혜성 대출을 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돼 주목된다.
유 전 회장은 두 아들이 소유한 회사인 다판다와 문진미디어 등을 통해 세모그룹의 모체인 ㈜세모를 인수했다.
당시 법원은 3자 배정 방식으로 신주를 발행, 이 과정에서 ㈜세모의 자본금은 46억원에서 168억원으로 크게 늘어난다. 신주배정에 참여한 주주는 (주)다판다(31.0%), (주)새무리(29.0%), ㈜문진미디어(20%.0)와 우리사주조합(20.0%) 등 4곳이다. 이 가운데 우리사주조합을 제외한 나머지 3곳은 유 전 회장 일가와 최측근 인사가 다수 지분을 가진 회사다.
이 중 새무리는 당시 기업은행과 농협중앙회에서 담보도 없이 223억원의 거액을 대출받아 다판다, 문진미디어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등 ㈜세모를 인수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회사는 2006년 4월 설립됐는데 2008년 회계연도 한 해 감사보고서 외엔 공개된 자료가 없다. 이 감사보고서를 보면 새무리는 ㈜세모 인수를 위해 2007년 기업은행에서 95억원, 농협중앙회에서 128억원의 단기차입금을 빌렸다.
당시 이 회사가 보유한 유형자산은 21억원 상당의 집기 비품이 전부였다. 새무리는 초기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된 건강식품 유통업체로 당시 임직원 수가 4명에 불과했다. 대출 해당년도의 매출액은 2억원이 채 되지 않고 13억원 정도의 당기순손실을 냈으며, 임직원 4명의 평균 연봉은 1050만원에 그쳤다.
회사의 규모에 비해 대출액이 클 뿐 아니라 대출 당시 담보물이 앞으로 보유하게 될 ㈜세모의 주식 외엔 없었다는 점에서 특혜대출 의혹이 일고 있는 것.
새무리의 주주 황 모씨 등 개인 주주 8명은 유 전 회장과 관련된 인물로 추측된다. ㈜세모는 최종부도 뒤 1999년 법정관리가 결정된다. 이를 종결하기 위해 채무변제 계획을 법원에 제출했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게 되자, 2007년 12월 기존주주의 주식을 감자소각하고 신주를 발행해 새무리 컨소시엄의 투자를 받는 쪽으로 회사정리계획을 바꿨다.
이 때문에 새무리는 세모그룹의 모체였던 ㈜세모의 법정관리 종결을 위해 ‘급조’한 페이퍼컴퍼니 성격의 회사로 짐작된다.
사정당국이 청해진해운 관계사들 뿐 아니라 과거 세모그룹과 관련된 기업들의 자금흐름 조사에 나선 것은 유 전 회장 일가가 세모그룹의 모체인 ㈜세모와 청해진해운 지주사이자 계열사 12곳의 지분을 가진 아이원아이홀딩스를 통해 수십여개의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서로 간의 지배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대체로 4명의 자녀와 10여명의 측근들이 관련 회사들의 경영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최대주주인 유대균(44)씨와 유혁기(42)씨는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의 두 아들이다. 두 아들의 지분은 38.9%에 이르며 유 전 회장 핵심측근인 김혜경(52) 한국제약 대표이사가 6.29%를 보유하고 있다.
차남 혁기씨는 현재 출판사인 문진미디어와 사진전시업체 아해 프레스 프랑스 대표이며 자동차부품 회사 온지구의 3대 주주다. 혁기씨는 29살 때인 2001년 말 온지구의 최대주주로 처음 공식기록에 등장한다. 유 전 회장의 장녀 섬나(48)씨는 계열사의 실내장식이나 행사를 담당하는 모래알디자인 대표다.
계열사의 감사보고서와 등기부등본에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로 혁기씨와 동갑인 변기춘(42)씨는 현재 아이원아이홀딩스와 청해진해운의 최대주주인 ㈜천해지의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변씨는 20대 후반인 1999년과 2001년 각각 청해진해운 감사, 한국제약의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변씨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변우섭 전 대전 변외과 원장이다. 변 전 원장은 1990년대 초 구원파의 총회장 또는 대전지역 책임자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인물로 유 전 회장의 최측근이다.
변 전 원장은 유 전 회장이 1976년 세모그룹의 전신격인 삼우트레이딩을 인수할 때 등기이사로 참여했다. 그는 2007년 말까지 ㈜세모의 최대지분(5.32%)을 보유했었다가 이듬해 이를 처분한다. 이로써 ㈜세모의 최대주주는 유통사 다판다로 바뀌게 된다.
다판다는 유 전 회장의 장남 대균씨가 최대주주인 회사다. 다판다 대표이사 김필배씨는 유 전 회장 일가의 핵심 측근으로 꼽힌다.
檢, 유씨 일가 주변 대대적 압수수색
세월호 참사를 수사 중인 검찰도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천지검 세월호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2차장검사)은 유 전 회장의 자녀 모두를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김혜경, 김필배 대표 등 유 전 회장의 핵심측근들도 줄줄이 소환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23일 청해진해운 관계사 등 15곳을 압수수색한데 이어 28일에는 유 전 회장 일가가 소유한 페이퍼컴퍼니로 추정되는 회사 4곳을 압수수색 했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새로 신설된 (금감원) 기획검사국이 조직이 채 갖춰지기도 전에 청해진해운 관계사들과 연관된 은행들을 상대로 첫 번째 검사에 나선 만큼 긴장하고 있다”며 “청해진해운과 관련해 선박, 부동산 등으로 담보를 잡아놔서 별문제는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으나 문제가 많은 업체라고 소문이 난 상황인 만큼 대부분 채권은행들이 만기 도래하는 대출금에 대해 연장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는 족벌경영, 부실경영에 비롯된 인재인만큼 이들에게 자금을 대준 금융사들도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추적해 재벌과 금융사들 간의 그릇된 유착 관행을 송두리째 뽑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