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생방 나선 대통령과 당하는 공직자+기자… 쥐-바퀴벌레 튀는 소리?

‘역 판옵티콘 카메라’가 나랏돈 도둑 줄이고 경제 활력 올려줄까

최영태 기자 2025.12.19 11:49:55

18일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한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 
각 부처 업무보고의 생중계를 알리는 KTV 화면.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18일 아침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재미있는 얘기를 했습니다. 국무회의부터 각 부처 업무보고까지를 생중계로 방송해버리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을 ‘판옵티콘’으로 비유한 발언입니다.

‘판옵티콘’은 판(pan=모두, all) + 보기(opticon=보다, seeing)의 합성어입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1791년에 제안한 감옥의 감시 구상입니다.

원형 감옥의 중앙에는 감시자가 어둠 속에서 360도 방향으로 죄수들의 동태를 볼 수 있지만, 죄수 방에서는 중앙의 감시자가 어느 방향을 보는지 알 수 없는 공간 구성이지요.

‘나는 감추고 너는 노출시킨다’는 이러한 구조는 피감시자에게 ‘감시자가 보고 있다’는 강박감을 심어줘, 쳐다보지 않고도 감시하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러미 벤담의 1791년 판옵티콘 구상을 구체화한 그림. 

 

강 대변인은 대통령의 생방송 의지를 ‘판옵티콘의 카메라 렌즈를 자기 자신에게도 향하도록 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역(逆) 판옵티콘’, 즉, 5200만 국민이 대통령을 감시할 수 있도록 카메라 방향을 돌려놨다는 얘기입니다.

카메라 앞과 카메라 뒤

판옵티콘의 원리 그대로 세상에는 카메라 앞에 서는(노출 당하는) 사람이 있고, 카메라 뒤에서 촬영하는(노출 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스마트폰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카메라 앞에 노출시키는 이른바 ‘셀카’를 즐깁니다. 하지만 셀카와 이 대통령이 실행 중인 생방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셀카는 ‘내’가 노출자이면서 동시에 피(被)노출자이므로, 예쁘게 나오지 않은 컷은 100% 버려집니다.

반면, 생방(生放)은 글자 그대로 날것을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그만큼 무섭지요.

바야흐로 세상은 유튜브를 통해 생방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미세한 표정 변화와 숨결까지 그대로 드러내는 게 생방이니 속일 수가 없어요. 가위질(편집) 권력이 없으니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의 진정성이 날것 그대로 전달됩니다. 

 

대통령실 브리핑룸의 기자들을 비추는 카메라. (KTV 화면 캡처)


이리 되니 가위질 권력(언론)의 좌절감은 보통이 아닙니다. 카메라 뒤에 서서 피사체의 예쁨 또는 미움만을 선택적으로 골라 내보냄으로써 특정인을 성공시키거나(스타로 만들거나 당선시키거나) 좌절시키는(악마화하거나 낙선시키거나) 역할을 하면서 권력을 누려왔던 언론의 곤혹스러운 모습은, 대통령실 기자단 브리핑의 역 판옵티콘 카메라(질문 기자를 비추는)의 등장에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물론 기자들은 이에 적응해가고 있지요.


기자들보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아마 고위 공직자들, 공사 사장들일 것 같습니다. 특히 생방 카메라 앞에 서기를 거의 상상하지 못했을 ‘신의 직장’ 공사 사장님들, 특히 이런저런 연줄로 ‘꿀 보직’을 차지한 사장님들은, 대통령의 칼 질문에 대책 없이 노출되는 자신의 모습에 살이 떨리지 않을까 싶네요.

'생방 대통령'을 불편해 하는 목소리들

‘역 판옵티콘의 카메라’ 앞에 선 대통령의 모습을 불편해 하는 목소리도 분명 있습니다. “나는 이 대통령 지지자이지만 대통령이 생방 중 가끔 내비치는 비꼬거나 냉소적 발언-표정은 불편하다” 또는 “저러다가 큰 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는 등의 반응들입니다.

물론 필자에게도 대통령의 언행 중 “아, 저 말은 안 하면 좋았을 텐데” 하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사소한 실수는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이익이 너무 클 것 같기 때문입니다.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들에게 '국민주권시대, 공직자의 길'에 대해 지난 7월 31일 강연하는 이재명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강 대변인은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의 생방송 철학을 “결과 중심이 아니라 과정 중심의 행정을 보여주자는 철학이니 그걸 봐 달라”고 했습니다.

최종 결과물만이 아니라 과정까지 보여줘야 시민의 참여가 활발해집니다. 가위질 권력(언론)이 끼워 맞춘 최종 결과물밖에 볼 수 없다면 시청자는 휘둘리지 않을 재간이 없어요. 특정 사람-집단-정당의 모습에는 예쁜 데도, 미운 데도 있지요. 완벽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예쁘거나 미운 한쪽 측면만을 골라내서 쉬지 않고, 지치지도 않고 보여준다면, 그 피사체는 실체와는 상관없이 ‘결국’ 예뻐지거나 미워지기 십상입니다. 실체의 진실과는 상관없이.

“과정을 보여준다”는 강 대변인의 말을 들으니 예전 노무현 대통령실의 조기숙 홍보수석이 미국 워싱턴DC에서 미국인들 앞에서 한 말이 떠오르네요. 그는 한국 시민들의 참여 사례를 소개하면서 “한국인들은 정치인을 가르치려 들어요. 미국엔 이런 거 없잖아요?”라고 물었고, 미국인들은 잠잠했습니다.

12.3 친위 쿠데타 이후 한국인들의 ‘참견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름을 붙고 있는 게 바로 이 대통령의 생방입니다. 예전에 결과만을 보고도 분기탱천해 참견해 왔던 한국인인데, 이제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생생히 보게 됐으니 참견-참여하지 않을 재간이 없지요.

참견을 통해 '나랏돈 도둑'이 줄어들면?

나랏돈을 쓰는 문제에 있어서 국민의 참견-참여는 적어도 어이없는 예산 낭비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문규 한국석유공사 기획재무본부장이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부처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멋대로 결정한 대통령과 여기에 화장 칠을 해댄 가위질 권력이 협잡해 성사시킨 대표적 사업들이 바로 23조 원 이상을 강바닥에 쏟아 부은 4대강 사업, 그리고 타당성에 대한 계산도 없이 1천억 원 이상을 동해 바다 밑에 쳐넣은 대왕고래 프로젝트입니다.

쥐-바퀴벌레를 쫓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환하게 비추는 것입니다. 어두웠던 구멍에 조명이 비춰지면 쥐, 바퀴는 줄행랑칩니다.

단돈 몇 억이 없어서 벤처 사업들이 좌초합니다. 수십 조 원을 국민의 참견-참여를 통해 이런 벤처-창업들에 돌리면 한국 경제가, 고용 사정이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 턱이 없지요.

이 대통령이 돌려세운 ‘역 판옵티콘 카메라’ 덕에 국민 참여를 통한 경제 활력이 핵폭발 급으로 터져 오르기를 예상하고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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