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섭기자 |
2026.01.29 13:27:55
베트남 출장 중 서거한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권 인사 등 각계의 조문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전 총리와 38년간의 ‘질긴 악연’으로 회자되고 있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조문해 정치권의 눈길을 끌었다.
김 전 위원장은 장례 이틀차인 28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빈소에서 헌화와 분향으로 예를 표한 뒤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한 뒤 상주를 자처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유시민 작가 등과 악수를 나누며 “애석하다”고 이 전 총리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어 김 전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고인은) 더불어민주당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한 정치인”이라며 “고인은 민주당 대표 등을 지내며 오늘날 이재명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데 주된 역할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건강상 어려웠던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김 전 위원장은 ‘이 전 총리와 특별한 인연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특별한 인연은 없다”고 말했으나 두 사람의 지나간 행보는 지난 1988년 13대 총선을 시작으로 오랜 인연으로 얽히고설킨 한국 정치사의 대표적인 ‘악연’으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두 차례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48세의 김 전 위원장은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3선을 노리고 출마했으나, 당시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화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36세의 신인인 이 전 총리에게 5천여표(4%p) 차이로 패한 것으로 시작으로 ‘질긴 악연’은 시작됐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다른 정치 노선을 걸으며 장기간 충돌 없이 각자 경력을 쌓다가 28년이 지난 2016년 당시 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 전 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면서 다시 만나게 됐다.
김 전 위원장은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맡아 공천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중도 확장’과 ‘물갈이’를 내세우면서 당시 당내 주류이자 친노(친노무현) 그룹 좌장이던 이 전 총리를 비롯해 정청래, 이미경 의원 등을 공천에서 컷오프(공천배제)하자 이에 반발한 이 전 총리는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세종시에 출마해 당선된 뒤 복당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위원장은 최근 측근들에게 “당시 민주당의 선거 전략상 부득이하게 그렇게 한 것이지 이 전 총리에게 어떤 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치 9단’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27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을 통해 “8~9년 전 제 아내가 입원, 사경을 헤맬 때 (이 전 총리가) 박양수 전 의원과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해 함께했다”면서 “이 자리에서 이 전 총리는 ‘내가 민주당에서 컷오프되리라고는 꿈에서도 생각못했다. 눈앞이 깜깜해서 집으로 가서 아내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 간의 ‘악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김 전 위원장이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비대위원장과 선대위원장을 겸직하면서 보수 야권의 전면에 나서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이 전 총리에 맞서는 구도가 형성됐으나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해 6월 김 전 위원장이 취임 인사차 민주당 대표실을 찾아 이 전 총리를 만났을 때 “4년 전엔 내가 여기 앉아 있었는데…”라고 말하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던 것도 이들의 질긴 ‘악연’이 정치권에 각인됐기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CNB뉴스=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