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섭기자 |
2025.11.26 11:50:31
지난 76년간 이어져 왔던 공무원법상 ‘공무원의 복종 의무’ 규정이 이제는 사라지게 됐다.
인사혁신처와 행정안전부는 25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현재의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이 지난 1949년 국가공무원법 제정 당시 도입된 ‘공무원의 복종 의무’ 규정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개정 시도에도 불구하고 ‘행정 조직의 효율적·통일적 운영 등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지금껏 불발돼 그대로 유지돼 왔다.
따라서 ‘공무원들은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 명령을 반드시 이행해야만 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도 이어졌고, 특히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를 거치며 이런 목소리는 더욱 거세져 인사처와 행안부는 ‘복종 의무’ 조항을 순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이와 관련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은 지난달 열린 국정감사에서 “국민에게 충직한 공직사회 구현을 위해 명령과 통제에 기반한 복종의 의무를 개선하고 상관의 위법한 지휘와 명령에 대한 불복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가공무원법 57조 등의 ‘복종의 의무’ 표현이 ‘삭제’되는 대신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 등으로 바뀌며, 또한 구체적인 직무수행과 관련한 상관의 지휘·감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행을 거부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의견제시·이행거부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하면 안 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아울러 56조의 ‘성실의무’ 표현을 ‘법령준수 및 성실의무’로 변경하고, 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인사처는 “개정안은 공무원이 명령과 복종의 통제 시스템에서 벗어나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의사를 결정해나가도록 하는 한편, 상관의 위법한 지휘·감독에 대해선 이행을 거부하고 법령에 따라 소신껏 직무를 수행해야 함을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위법성 판단 기준이 불명확하다거나 업무처리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인사처 관계자는 26일 CNB뉴스와의 통화에서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의 구체적인 기준은 정부가 법 취지를 충분히 반영한 시행령이나 복무규정 개정을 통해 충분한 가이드라인을 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특히 제도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여러 홍보와 교육을 할 것”이라며 “객관적으로 합리성을 갖출 정도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위법으로 판단하고 거기에 대해서 명령을 거부하는 것으로 위법한 사항이 이행될 염려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현장의 혼란이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하면서 “개정안은 국회 논의 절차 등을 거쳐 내년 중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이같이 공무원이 상사의 위법한 직무 명령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을 정부가 입법 예고하자 공무원 노조들이 이날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은 이날 성명을 통해 “76년간 공무원 노동자들을 옭아맸던 ‘복종의 의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며 “공무원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규정했던 낡은 질서를 타파하고, 위법한 지시에 대한 거부권을 명시한 이번 개정을 환영한다”고 반겼다.
그러면서 전공노는 “상관의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대신 합리적인 대화와 법치에 기반한 직무 수행을 보장하겠다는 제도적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전공노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언급하며 “맹목적 복종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뼈저리게 목격했다”며 “이번 법 개정은 공직사회가 다시는 헌법 유린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게 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강조했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국공노)도 성명에서 “이번 개정안은 그동안 ‘상명하복’ 고착된 공직문화에 중대한 균열을 낸 조치”라며 “공무원을 수동적 집행자가 아닌 적극적·책임 있는 행정 주체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라고 환영했다.
한편 국방부도 이날 위법한 명령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단서 조항을 담은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범여권 의원 10명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위법하고 부당한 명령에 대한 군인들의 거부권을 보장하는 취지의 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방위 법안소위에서 논의 중이인 가운데 국방부는 25일 국방위 법안소위에서 이 같은 검토 의견을 보고했다.
특히 국방부는 ▲위법한 명령에 대한 거부 ▲헌법과 법령에 반하지 않는 명령 발령 의무 ▲헌법 수호 의무 ▲헌법교육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는 의견을 피력하는 등 범여권 의원들의 안과 대동소이한 내용이다.
먼저 국방부는 제25조(명령 복종의 의무)는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했으나 이를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단,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에는 거부할 수 있으며, 이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개정했으며, 또한 명령 발령자의 의무를 규정한 제24조에 ‘군인은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여 명령을 발령하여야 한다’는 문장을 추가했다.
아울러 제36조(상관의 책무)는 ‘상관은 직무와 관계가 없거나 법규 및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반하는 사항 또는 자신의 권한 밖의 사항 등을 명령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표현을 ‘상관은 헌법 또는 법령에 반하는 사항 또는 자신의 권한 밖의 사항 등을 명령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개정한 의견을 제출하면서 ‘헌법 준수’를 강조했다.
이에 더해 국방부는 범여권 의원들의 개정안에는 없었지만, 제20조(충성의 의무)에 ‘군인은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며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와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군인에게 헌법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는 헌법교육 의무화 조항을 추가하자는 의견도 냈다.
국방부는 “도입 초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위법 명령에 대한 사례와 대처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교육할 방침”이라고 설명했으나, 야당 의원들은 제25조 개정안에 포함된 ‘정당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부분을 문제 삼는 등 여야 간에 견해차가 커 해당 안건은 일단 보류됐다.
(CNB뉴스=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