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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대구미술관, Sean Scully 현대추상 회고전 '션 스컬리 : 수평과 수직'

"추상-구상- 조각의 삼면화, 이음새가 맞아 떨어지는 제단화처럼, 아름다움 넘어선 영적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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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진부기자 |  2025.03.19 11:10:04

션 스컬리(Sean Scully) 작가(B. 1945)가 대구미술관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 적갈색의 반영 앞에 서 있다. (사진= 김진부 기자)

션 스컬리(Sean Scully) 작가(B. 1945) 특유의 느린 말투는 마치 과거 선지자나 구도자의 언어를 연상시킨다. 영혼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그의 목소리는 이해하기 쉽지만, 가볍지 않고 묵직하다.

대구미술관에서는 3월 18일부터 8월 17일까지 현대 추상화가인 '션 스컬리'의 대규모 회고전을 연다. 필자는 저널리스트이자 미술평론가로서 17일 대구미술관을 방문해, 작가와 인터뷰하고 70여점의 작품도 감상했다. 다음은 대구미술관의 전시 기획과 션 스컬리의 작품에 대한 감상평이다.

대구미술관의 션 스컬리 展
한마디 評 '친절한 회고전'
"추상에 대해 정리할 기회"


작년 9월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에서 '소울(SOUL)'이라는 주제로 션 스컬리 전시가 열리긴 했지만, 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은 대구미술관이 최초다.

필자가 무엇보다 미술관의 전시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갤러리는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미술관은 작가의 깊은 작품 세계와 의미있는 정신 세계를 분석하고 정리해, 공간감있게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번 대구미술관의 션 스컬리 회고전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번 대구미술관이 기획한 '션 스컬리' 회고전은 한마디로 "친절한 추상작품 회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대구미술관의 이번 전시 기획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추상작품 전시는 기획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일반적으로 '추상작품 전시'라고 하면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그림들로 나열돤 '불친절한 전시'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마디로 '친절한 추상작품 회고전'이다. 과거 '추상표현주의' 전시를 관람하러 갔다가 낭패를 본 관람자들이라면, 이번 전시를 꼭 관람하길 추천한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션 스컬리의 추상작품을, 깊이 있지만 세련되고 심플하게 전시해 놓았기 때문이다.

'현대추상전'인데 구상에서 구상으로?
"추상은 가사 없는 음악" 명쾌한 정의


이번 전시 작품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은 1966년작 '무제(UNTITLED)'다. 1970년대 격자추상을 시작하기 전 초기 구상작품인 셈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022년 최신작이 '무제(UNTITLED)'라는 같은 제목의 '자화상'이다. 구상에서 추상을 거쳐 다시 구상으로 마무리 된 느낌이다. 이것은 작가가 추상이라는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친절하게도 두 작품을 포함한 구상 작품들은 대구미술관의 한 공간에 함께 전시되고 있다.

 

션 스컬리의 1966년 작 '무제(UNTITLED)' (사진= 김진부 기자)

이를 뒷바침하 듯, 션 스컬리는 추상에 대해 "사람들은 추상을 추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추상적이지 않다. 추상 또한 자화상이다. 자신의 상태를 그린 초상화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왜 자화상을 그렸는지 이해가 된다.

 

션 스컬리의 2022년 최신작 '무제(UNTITLED)' (사진= 김진부 기자)

션 스컬리는 필자가 평생 잊지 못할 추상에 대한 정의를 내렸는데, 그는 추상을 "가사가 없는 음악"이라고 정의했다. "가사가 있는 노래"는 구상과 같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 명쾌한 논리가 있을까. 그래서 작가는 현대추상을 통해 그 맥락을 없애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치 가사 없는 장중한 음악을 작곡하고 있는 셈이다.

최초 공개한 대형 조각 2점의 의미
평면 추상의 원(原) 모습


이번 회고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션 스컬리'의 가장 최신작인 대형 조각 작품 2점이다. 대구미술관에서 최초로 공개한 작품이어서 가치가 있지만, 무엇보다 션 스컬리의 추상작품을 물질적,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그 묵직한 의미가 남다르다.

 

션 스컬리의 최신 조각, 대구 스텍 (DAEGU STACK) (사진= 김진부 기자)

대형 조각 작품 2개 중 하나는 야외에 석양을 뒤로 한 채, 육중하고 거대하게 쌓아 올려진 철조각, "대구 스텍(DAEGU STACK)"이다. STACK은 적층을 의미한다. 거대한 철의 판들이 적층되어 있어서 그 무게감이 관람자의 몸 속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 조각 작품은 션 스컬리가 평면에 담은 추상, 특히 랜드라인(LANDLINE) 시리즈의 실제 모습, 그 무게감을 설명하는 듯하다. 실제로 DAEGU STACK을 한 쪽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션 스컬리의 LANDLINE 추상 회화가 눈에 들어온다. 추상회화의 무게감, 조각의 평면화를 경험할 수 있는 STACK이다.

 

션 스컬리 조각 38 (사진= 김진부 기자)

또다른 조각 작품은 전시장 어미홀 내부에 설치된 "38", 무거운 알루미늄 컬러 프레임을 쌓아올린 작품이다. DAEGU STACK이 무게감이라면, 38은 컬러감이다. 경쾌한 컬러감은 무게감을 감춘 채 마치 빛처럼 가볍게 날아간다. 이 작품도 한쪽 면만 보면, 색띠가 추상 평면회화처럼 보인다. 평면추상의 원(原) 모습인 셈이다.

션 스컬리의 숭고한 '랜드라인' 추상
대구미술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공간?


대구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중에는, 관람할 시간이 없더라도 반드시 느긋하게 앉아서 명상하듯 직관(直觀)해야 하는 작품이 있다. 작품 "적갈색의 반영"이 그것이다. 대구미술관에서는 영적인 아치형 입구를 통해 그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작품 앞에 미니멀한 쇼파도 배치해 건축적 숭고미도 느끼게 했다. 대놓고 꼭 제대로 감상하라는 의미다.

 

션 스컬리의 숭고미가 느껴지는 작품과 대구미술관의 공간 (사진= 김진부 기자)

션 스컬리의 추상이 왜 추상회화를 영성으로 이끈다고 평하는 지를 알 수 있는 공간이다. 수평으로 층층히 쌓여 있는 묵직한 색들은 서로의 무게감에 눌려지고 부딪히면서 서로 껴안고 있다. 자세하게 볼 수록 땅과 바다, 하늘이 서로 닿는 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번 회고전의 주제는 '션 스컬리 : 수평과 수직'이다. 작가는 "흑과 백은 색으로 치환된 수평과 수직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흑백으로 수평과 수직을 표현할 때, 나는 가장 순수한 상태라 하겠다. 가장 본질적인 상태, 세속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을 초월한, 어쩌면 가장 영적으로 포부가 큰 상태"라고 수평과 수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세속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초월한 가장 순수한 상태'가 수평과 수직이라며, 작가는 그 본질을 영적인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가 물질로 표현한 작품으로 추구하는 것은, 정작 본질적 영(SPIRIT)이다.

삼면화의 관계성
신성하고 신비로운 의미 부여


주목해야 할 또다른 작품은 '삼면화(Triptych)'다. 삼면화는 '세폭 제단화'를 일컫는 말이다. 종교적 소재를 그린 그림을 교회 제단 뒤에 설치하는 제단 장식의 일종이다.

 

션 스컬리의 '성모마리아 삼면화(Madonna Triptych)' (사진= 김진부 기자)

션 스컬리는 이번 전시에서 '삼면화'를 몇 작품 선보이고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 '성모마리아 삼면화(Madonna Triptych)'다. 삼면화는 세계의 작품처럼 전시돼 있지만,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러나 션 스컬리의 이 삼면화는 그 내용면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 삼면화라는 형식을 빼면 전혀 종교적이지 않다. 그러나 삼면화를 통해 엄마와 아이라는 단순한 관계성에 또 다른 타인을 포함시키는 행위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션 스컬리는 "삼면화는 또 다른 관계성이다. 우리는 숫자 셋에 신성하고 신비로운 의미를 부여하지만, 무엇보다 이는 우리를 단순한 거울 혹은 반영된 자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며 당신과 신, 당신과 연인처럼 단조로운 두 사람의 관계성에도 또 한 명의 '타인'을 얹는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번 회고전에 전시된 삼면화로는 그 외에도 '구브러진 랜드라인 삼면화', '블록 삼면화(block triptych)' 등이 있다.

결론

대구미술관에서 기획한 회고전 "션 스컬리 : 수직과 수평" 展 감상을 마치면서, 필자는 이번 회고전이 "친절한 추상작품 회고전"이라는 생각과 함께, "대구미술관 전시장 자체의 넓고 깊은 공간감이 주는 숭고미가 큰 몫을 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했다.

 

미술평론가 김진부 

지난 전시 '와엘 샤키 展'에서도 그 공간감은 아시아, 중동, 유럽을 아우르며 그 진가를 발휘한 바 있다. 이번 '션 스컬리 회고전'에서도 아우라가 느껴지는 대구미술관 전시장의 공간감은 추상, 영성, 숭고미라는 미감과 조화롭게 어울렸다.

현대추상의 거장 션 스컬리, 기획력 뛰어난 큐레이터, 깊은 공간감을 가진 대구미술관이 삼위일체가 된 느낌이다. 또한 추상과 구상, 조각의 경계가 해체돼 '세개의 면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작품'이 됐다. 마치 삼면화를 보는 듯, 서로의 이음새가 잘 맞아 떨어지는 제단화처럼, 아름다움을 넘어선 영적 감동을 준다.


(CNB뉴스= 김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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