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인테리어처럼 집에 꼭 맞는 냉장고
공사 부위 돌출되지 않는 시스템 에어컨
삼성·LG전자, 이름에 ‘핏’ 내걸고 차별화
냉장고문 회전반경·깊이 등 기존과 달리
흔히 쓰이는 가구장 크기에 맞도록 설계
“대한민국은 IT강국”이란 말은 이제 잘 쓰지 않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가 가장 클 텐데요. 그만큼 국내 정보통신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며 세계에 이름을 날려 왔습니다. 날로 고도화되는 기술,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혁신적인 제품들이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결과물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IT 이야기’, 줄여서 [잇(IT)야기]에서 그 설을 풀어봅니다. <편집자주>
핏(Fit)이 좋다는 말은 옷 잘 입는 사람에게 하는 칭찬입니다. 몸에 맞춘 듯, 옷이 착 감길 때 이렇게 표현하곤 하죠. 자로 잰 것처럼 손목에서 딱 멈추는 소매길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만 붙는 바지통, 재킷의 어깨선이 실제 어깨와 일치했을 때. 이렇게 삼박자를 갖추면 “핏이 좋다”고 추어올립니다. 기성세대에게 조금 더 익숙하게, 한국적으로 말을 바꾸면 이런 표현도 가능합니다. “맵시가 좋다.” 결국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여러분은 어떤 단어가 더 와 닿는지요?
요즘 이 핏, 그러니까 맵시에 빠진 업계가 있습니다. 옷이 흐르는 패션계가 아니라 전자업계인데요. 가전제품에도 맵시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혼자만 예쁘게 튀는 게 아니라, 핏 좋게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몸은 집, 옷은 가전제품으로 생각하면 편하실 겁니다. 집에 가전제품을 입히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복에 가깝게요. 마치 빈집에 처음 인테리어 시공을 할 때부터 거기에 존재했던 것처럼 기기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비밀은 크기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가구장 크기에 맞추는 건데요. 특히 냉장고가 그렇습니다. 그동안은 딱히 고려 요소가 아니었을 겁니다. 냉장고는 용량과 기능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부엌이란 큰 공간에만 들어가면 문제될 일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이제 업계가 시선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냉장고를 만들며 골몰하고 있는 이 숫자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700mm. 이는 가구장 평균 깊이인데요. 지금껏 나온 냉장고는 대체로 이보다 컸습니다. 그래서 가구장에 넣으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고요. 요즘은 옆에서 봤을 때 도드라지지 않게 이 크기에 맞추고 있습니다. 특명이랄까요? 700mm를 넘지 말라! 그래야 맵시를 완성할지니.
몸집도 사이즈에 맞게, 움직여도 걸리지 않게
단순히 크기만 조절했다면 유별나지 않았을 겁니다. 맵시를 완성한 중요한 두 번째 비밀이 중요한데요. 바로 활동 반경입니다. 아시다시피 냉장고는 문이 달렸습니다. 문을 활짝 열려면 문짝 두께 이상의 틈이 확보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냉장고와 옆쪽에 있는 벽이 충분히 떨어져있어야 합니다. 바투 붙어 있으면 문이 벽에 걸리며 멈출 테니까요. 떨어질수록 좋은데, 그러면 맵시가 살지 않겠죠? 과대 포장된 것처럼 냉장고가 넓은 가구장 안에 덩그러니 놓일 테니까요.
두 회사는 양쪽에 4㎜의 간격만 있어도 맵시를 부릴 수 있게 냉장고 신제품을 설계했습니다. ‘핏’이란 이름을 내세우면서요. 삼성전자는 '키친핏 맥스'란 디자인으로 냉장고 문을 90도 이상 열 수 있게 했고, LG전자는 ‘핏 앤 맥스’란 이름으로 문에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핵심은 이른바 회전축인 ‘힌지’에 있습니다. LG전자의 설명을 보시죠. “두 개의 축을 이용해 냉장고 문을 열 때 본체 안쪽으로 회전하는 경로를 만들어 주는 힌지를 적용해 장에 밀착해 설치해도 문을 최대로 열었을 때 벽에 부딪히지 않게 방지한다.”
보통 냉장고 문은 본체와 연결된 한 개의 힌지 축을 중심으로 회전합니다. 이 때문에 냉장고를 활짝 열었을 때 문은 본체보다 돌출됩니다. 그만큼 냉장고와 장 사이를 벌려서 설치해야 하는 것이고요. LG전자는 새로운 힌지 기술인 제로 클리어런스(Zero Clearance)를 적용해 이를 극복했습니다. 문이 안쪽으로 도는 경로를 만들어준 것이 ‘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업계의 멋을 살리려는 노력은 주방에만 있지 않습니다. 천장에도 있는데요. 삼성전자는 지난달 천장 ‘단내림 공사’ 없이도 시스템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는 ‘삼성 인테리어핏 키트’를 선보였습니다. 단순하게 설명 드리면, 깔끔한 틀을 만들어두고 시스템에어컨을 꼭 맞게 끼우는 방식입니다.
천장 단내림 공사를 하면 아무래도 해당 부위가 돌출됩니다. 층고도 낮아지고요. 툭 튀어나온 냉장고와 마찬가지로 집과 어우러지지 않고 튄다는 이야기 입니다.
삼성이 공들인 점도 조화입니다. ‘삼성 인테리어핏 키트’는 천장과 시스템에어컨이 들뜨지 않게 연결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단차를 없애는 것이지요. 천장 외벽을 타공해 ‘삼성 인테리어핏 키트’를 설치하고, 설치된 키트에 시스템에어컨을 거치하는 방식으로 밀착시킵니다. 텃밭에 모종 심듯 천장에 꾹 ‘박는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겠네요.
업계 화두인 ‘맵시’는 확장될 조짐입니다. 당장 LG전자는 지난달 출시한 ‘LG 디오스 오브제컬렉션 냉장고 핏 앤 맥스’ 제품군을 상냉장 하냉동 냉장고, 김치냉장고, 컨버터블(냉장·냉동·김치냉장고) 등으로 늘리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독자적 성능, 차별화된 디자인에 더해 새로운 경쟁 요소가 생겼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본질에 집중한다는 말도 나오고요. 집(家)에 놓이는 전자기기(電)가 얼마나 가전이란 이름에 부합하는 지를 주시하니까요. 시선을 안으로 돌린 가전업계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CNB뉴스=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