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인데 고가 전략 고수 “왜?”
꾸준한 수요에 ‘초고가’ 제품으로 공세
과일 작황 엇박자에 혼합세트로 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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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대 명절, 설이 목전에 다가왔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을 만나고, 고마운 이에게 마음도 전달하는 시간. 연중 소비심리가 크게 들썩이는 이 시기에 발맞춰 백화점들도 분주하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3사는 앞다퉈 다채로운 설 선물 세트를 출시하며 명절 특수를 공략하고 있다.
그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은 단연 식품관이다. 지난주 찾은 서울 중구 롯데,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신촌점 식품관에는 ‘설 선물세트’ 특집 코너가 성대하게 차려져 있었다. 각 품목을 파는 구역마다 제품을 설명하는 직원들과 숱한 질문을 던지며 꼼꼼히 따지는 고객들의 소리가 바쁘게 들렸다.
꾸준히 선호되는 상품은 올해도 매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우, 사과·배, 굴비·멸치 등 전통적인 정육·청과·수산 선물세트다. 다만 자세히 살펴보니 예년과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값비싼 ‘프리미엄’ 선물 라인이 다수를 차지한 점이다. 아무리 고가 전략을 고수해온 백화점이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원물 가격 상승 등 유례없는 고물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다른 유통 채널이 ‘가성비’ 세트를 미는 것과는 반대되는 행보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단일 과일세트가 아닌 혼합 과일세트가 늘었다는 점. 여기에는 백화점 나름의 사정이 있다.
“일년에 한 두 번” 이니까, 통 크게
고급을 뛰어넘는 최고급이다.
롯데백화점은 설에 맞춰 ‘억소리’나는 한정판 주류를 선보였다. 4억 원이 넘는 ‘아르망 루소 샹베르탱 그랑 크뤼 빈티지 컬렉션’을 비롯해 1억 원대 ‘루이 13세 레어캐스트’ 등을 내놨다. 이와 함께 ‘프리미엄 미식’에 대한 수요를 반영한 ‘비밀이야 부티크’의 ‘캐비아 세트’ 등도 준비했다.
신세계백화점도 ‘1++ 암소’ 한우로만 구성된 신세계의 시그니처 한우 브랜드 ‘신세계 암소 한우 더 프라임’을 내놨고, 현대백화점 또한 전통적 명절 선물인 굴비를 ‘현대명품 참굴비 10마리’ 등으로 출시하며 고급화 전략을 펼쳤다.
고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백화점 3사는 늘어나는 1인 가구와 ESG경영 흐름에 맞춘 선물세트로 구성을 다양화 했다.
3사 모두 기존 포장 단위를 축소한 ‘소포장’ 선물 세트를 마련했다. 현대백화점은 포장 단위를 450g에서 200g으로 줄인 한우 선물세트와 ‘순살 생선 프리미엄 6종’을,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은 각각 한우 특수부위를 담은 ‘신세계 암소 한우 미식 만복’과 ‘소포장 영광 굴비’ 등의 소포장 제품을 내놨다.
윤리 소비를 중시하는 현대인들을 겨냥해 ‘환경 친화’, ‘동물 복지’ 등을 내세운 선물 세트도 공개했다. 롯데백화점은 ‘황고개농장 동물복지한우(1.6kg) 세트’를 출시했고, 현대백화점도 저탄소 인증을 받고, 유기축산 실천 농가로 인정된 만희농장과 현우농장의 ‘동물복지 유기농한우 세트’ 등을 준비했다.
사니까 판다. 백화점들이 경기 침체에도 외려 프미리엄 선물세트를 공세적으로 내놓은 이유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일반 선물과는 다른 프리미엄 선물에 대한 수요가 꾸준해 작년에 이어 올해도 판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일 년에 한두 번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프리미엄 선물에 대한 수요가 꽤 있다”고 밝혔다.
비싼 과일, 하나로만 팔자니…
과일 세트 구성의 변화도 이채롭다. 이날 현장을 돌아보니 샤인머스캣, 한라봉 등 여러 과일이 섞인 혼합세트가 단일세트보다 많이 보였다.
원인은 부쩍 높아진 물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가락시장 누리집 기준 사과 로얄부사(10kg, 특) 가격은 올해 1월 8일 9만 5000원이지만, 지난해 동일에는 7만 1000원이었다. 가격이 약 30% 넘게 오른 것이다. 신고 배(15kg)는 동일 기준 지난해 8만 3060원에서 올해 13만 9979원으로 60% 넘는 상승률을 보였다.
혼합세트는 자구책의 결과다. 신세계백화점은 물가 상승을 반영해 사과, 배 등 전통적 선물 품목에 한라봉, 애플망고, 샤인머스캣 등을 더한 ‘아실 삼색다담’을, 현대백화점은 국내산 사과 3개, 배 2개, 샤인머스캣 1송이와 페루산 애플망고 2개로 구성된 혼합과일 ‘샤인머스캣·사과·배·애플망고 정(情)세트’를 내놨다.
최근 사과·배 등 높아진 주요 과일 시세를 반영해 비교적 작황이 안정적인 한라봉, 샤인머스캣, 애플망고 등 과일을 혼합한 선물세트를 구성했다는 게 백화점 측 설명이다.
관계자는 “선물 세트 가격을 평년과 비슷하게 유지하기 위해 가격이 급등한 사과·배만 넣기보다 물가가 비교적 안정적인 다른 과일도 함께 구성하는 식으로 과일 선물 세트를 다양화했다”고 말했다.
(CNB뉴스=홍지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