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일 예정된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 측이 주주친화 정책의 일환으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려는 것과 관련, 고려아연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모호한’ 반대 입장을 밝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MBK는 최근 “집중투표제 본연의 취지와 목적이 존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의 집중투표제 도입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면서도 이번 주총에서의 도입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MBK 측은 “표 대결에서 불리한 고려아연 측이 소수주주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집중투표제를 제안한 것이며, 이는 MBK파트너스와 영풍의 이사회 과반수 확보를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MBK는 과거 기업 인수 때마다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 재무구조 효율화를 앞세웠는데, 이런 태도는 자신들이 내세운 인수 명분과도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과거 사례들을 살펴보면 이 같은 이중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실제로 MBK는 자신들이 인수한 상장사에 있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거나 이를 안건으로 올리는 등의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또한 소수주주 보호를 염두에 두고 정관을 개정한 사례도 사실상 전무하다.
오히려 상장폐지를 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을 초래하는 등 소액주주 권익을 외면하거나 침해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비판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언론 보도와 MBK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역대 50여개사 포트폴리오 가운데 과거 국내 증시에서 거래됐거나 현재 상장돼 있는 기업은 △오스템임플란트 △커넥트웨이브 △오렌지라이프 △코웨이 △HK저축은행 △한미캐피탈 등 6곳이다. 이 가운데 MBK가 투자한 시점 이후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회사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MBK가 2호 펀드와 인수금융을 활용해 주식 30.9%를 1조1900억원에 인수한 A사는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다. MBK가 지분을 보유한 2013년부터 2019년 초까지 A사 정관에는 제32조(이사의 선임)와 제34조(이사의 보선)를 통해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상법에서 규정하는 집중투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기술돼 있다.
나머지 5개의 기업들의 정관 역시 이사 선임 과정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조항을 뒀다. 최근 MBK가 집중투표제에 대해 밝힌 입장과 달리 애초 MBK가 집중투표제 도입 자체를 꺼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MBK가 ‘집중투표제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이번 고려아연 주총에서의 도입에는 반대한다’는 애매한 입장과 관련해 소액주주연대 플랫폼 ‘헤이홀더’는 “MBK 입장에서는 집중투표제 도입에 찬성하자니 이사회를 장악하지 못하게 되고, 반대하자니 자신들이 주장했던 지배구조 개선이 허구라는 사실을 자인하는 셈”이라고 일갈했다.
이 외에도 MBK가 소수주주 권리 보호를 명문화하거나 추진했던 사례는 사실상 전무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MBK가 투자하거나 인수했던 상장사 중 소수주주 보호나 권익 강화를 위한 조항이 새롭게 추가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소수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행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는 과거 MBK가 인수한 기업들이 잇달아 상장폐지된 사례다. MBK가 2006년에 투자한 코스닥 상장사 B기업은 2009년 공개매수를 거쳐 자진 상장폐지됐다. 또 다른 코스닥 상장업체 역시, MBK가 인수한지 5개월 만인 2023년 8월 증시에서 퇴장했다. 코스닥 상장기업인 C사 역시 MBK가 지분을 모두 확보한 뒤 지난해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다. 당시 개인 투자자들은 보유 주식의 가치가 헐값 수준으로 전락했다며 거세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MBK가 고려아연을 타깃으로 적대적 M&A를 추진하며 주주가치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과거 투자기업에 대한 행보는 정반대였다”며 “소액주주 권익 보다는 투자금 회수에만 급급한 과거 행태를 돌아보면, 주주가치제고나 주주친화정책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을 믿기 힘들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