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남 김해에서 열린 제4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농구 8강전. 건장한 차림의 청년들이 서울팀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다. 결과는 지난해 우승팀인 경기도 대표의 19점차 대승. 아쉬워하는 선수들에게 응원단이 다가가 위로를 건넸다.
서울에서 다섯 시간을 달려 응원전을 펼친 이들은 현대모비스 본사 임직원들로 구성된 봉사동아리 ‘새싹생활체육회’(이하 새싹회) 회원들이다. 새싹회는 원래 직장인대회 참가를 목적으로 지난 2022년 결성된 농구동호회다.
봉사활동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여느 주말 연습 중인 직원들에게 자신을 ‘한강팀’ 소속이라고 소개한 백승희 감독이 다가와 합동훈련을 제안했다. 현대모비스 직원들은 한강팀을 또 다른 아마추어 동호회라고 생각했다.
한강팀은 서울시 유일의 지적장애인 12명으로 구성된 농구팀이다. 서울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참고로 장애인 농구는 휠체어와 지적장애인 경기로 나뉜다.
한강팀 선수들은 평소에는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고, 야간에만 틈틈이 모여 연습을 해왔다. 가장 큰 어려움은 훈련 파트너의 부재였다. 전국대회 출전을 위해서는 경기 감각을 꾸준히 익혀야 하는데 팀을 쪼개 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백감독은 이전에도 비장애인 동호회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꾸준하게 참석하는 이들이 없었다.
한강팀과 처음 대면한 새싹회원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자신들도 전문 코치가 아닌 순수 아마추어 동호회였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 훈련해야 하는지, 선수들과 소통은 수월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목표는 높게 잡았다. 1년 후에 있을 전국대회 우승이었다.
새싹회와 한강팀은 매달 2회씩 훈련을 진행했다. 주로 기본기 훈련과 연습경기를 통해 실전감각을 익혔다. 현대모비스 직원들은 한강팀이 원(One)팀으로 거듭나길 응원했다. 지적장애 선수들도 훈련장에 빠짐없이 나타나는 새싹회원들을 형처럼 따르기 시작했다. 공을 다루는 능력, 슛 성공률, 팀웍도 점차 향상됐다. 투지만큼은 프로선수들과 다름없었다.
그 사이 현대모비스 임직원들이 장애인 체육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선수들에게 전국대회는 참가에 의미를 두거나 체력을 증진하는 단순 여가활동이 아니었다. 지적장애인 특유의 끈기와 열정은 누구보다 강인했기 때문이다. 전국대회를 앞두고는 훈련 횟수도 점차 늘렸다. 퇴근 후 훈련까지 마치면 녹초가 되는 일상이 반복됐지만, 대회가 임박하며 기대감은 상승했다.
전국대회 첫 경기는 연습한대로 경기를 쉽게 풀어가며 대승했다. 상대팀을 상대로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상대는 지적장애인 농구 국가대표가 즐비한 팀이었다.
8강전 당일 현대모비스 새싹회 임직원들은 휴가를 내고 경기가 열리는 삼천포체육관까지 내려갔다.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피켓을 활용한 이례적인 ‘원정응원’이 등장했다. 선수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파이팅도 불어넣었다.
경기에선 크게 졌다. 전날 체력을 많이 소모해서인지 실력차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1년간의 아름다운 도전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한강팀 백승희 감독은 “현대모비스 임직원들이 선수들에게 자신감과 성취감을 선물해줬다”며 “생업에도 종사하는 선수들인만큼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구성원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장에 있던 대회 관계자들도 현대모비스 임직원들의 원정응원에 관심을 나타냈다. 장애인 체육대회의 특성상 선수단과 가족들을 제외하면 응원문화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장애인 스포츠 저변확대와 사회적 인식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현장 관계자는 전했다.
한편 현대모비스는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봉사활동을 독려하는 ‘자기주도 봉사활동’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 임직원들이 보유한 지식이나 취미, 재능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 방안을 자유롭게 건의하고 풀어가는 활동이다. 회사 측에서는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최대 수백만원 규모의 지원금을 제공하고, 전문 멘토단이나 기관과 연계해 자문을 구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