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시대, 최초의 ‘국산 활명수’로 탄생
상해임정과 국내 독립운동 잇는 가교 역할
가장 많이 복용한 일반약…‘국민 소화제’로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한길을 걸어온 기업들이 있다. 이에 CNB뉴스가 국내 대표적 장수(長壽) 기업들의 태동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짚어보고 미래 비전을 소개하는 <미니사사(社史)>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이번 편은 127년간 ‘한국인의 소화제’로 자리매김해온 동화약품 ‘부채표 활명수’ 이야기다. <편집자주>
<관련기사>
[미니사사(社史)①] “교육이 민족의 미래”…교보생명의 66년 교육 외길(上)
[미니사사(社史)②] “설계기업에서 시공능력 4위 종합건설사로”…현대엔지니어링의 50년 도전史
[미니사사(社史)③]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선대의 인간존중 정신 잇다(下)
[미니사사(社史)④] “금융이 나라의 근간”…최초 민족자본 우리은행 125년史
[미니사사(社史)⑤] “건강한 국민만이 나라 되찾아”…유일한 박사 민족정신 잇는 유한양행
동화약품 활명수(活命水)는 출시 127주년을 맞은 국내 최초의 신약이자 최장수 의약품이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을 담은 활명수는 조선 말부터 일제강점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민건강에 기여하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의약품이자, 가장 오랜 시간 사랑받은 국민 소화제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제국이 선포되던 1897년 궁중 선전관 노천 민병호 선생은 약이 없어 고통받는 백성들에게 좋은 약을 만들어 널리 보급하기 위해 궁중의 비방에 서양의학을 접목, 국내 최초의 약품이자 최초의 양약인 활명수를 개발했다.
민병호 선생은 이후 아들 민강 선생과 함께 활명수의 대중화를 위해 동화약방(現 동화약품)을 창업했다. 당시 조선의 민중들은 급체, 토사곽란 등으로 고통받았는데, 탕약 외에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다.
이에 활명수는 그 의미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물’(살릴 活, 생명 命, 물 水)’이라고 불리며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다.
이처럼 국내 제약산업은 대한민국 최초의 제약기업이자 국내 최장수 기업 동화약품 ‘활명수’의 개발과 그 시작을 함께 했다.
동화약품은 일제 강점기 들어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도 했다. 1919년 3·1 운동 직후 체계화된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 간 비밀연락망인 ‘서울연통부’를 동화약방에서 운영했다.
현재 서울 순화동 동화약품 창업지(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9길 14)에는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에 의해 ‘서울연통부 기념비’가 세워져, 서울연통부의 활약상과 설립 의의를 재조명하고 있다.
“이곳은 서울시청과 비슷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할의 서울 연통부가 자리 잡고 있던 터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인 4월 13일 중국 상해에 수립 선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연통부와 교통국을 은밀히 조직해 국내외를 오가며 활약했다. 그중 서울 연통부는 일제와 싸우면서 임정이 수립돼 활동하고 있음을 국민에게 알리고 나라 안의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임정에 보고·전달했다”(서울 연통부 기념비)
당시 동화약방(現 동화약품)의 사장이었던 민강 선생은 국내외 연락을 담당하고 정보를 수집했으며,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행정책임자였다.
활명수 한 병값은 50전으로 설렁탕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말을 살 수 있는 가격이었는데,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이동 시 활명수를 지참해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동화약품은 민강 사장, 5대 윤창식 사장, 7대 윤광열 사장까지 3명의 CEO(최고경영자)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생명을 살리는 물…한 세기 동안 ‘진화’ 거듭
시간을 현재로 돌려 활명수가 대한민국 No.1 액제소화제 브랜드로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은 뭘까?
우선 부작용이 거의 없고 복용 편의성이 뛰어나며 127년 동안 국민을 통해 소화제로서의 효능 효과가 직접 검증됐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이에 더해 활명수는 시대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를 추구해 왔다.
동화약품에 따르면 ‘까스활명수’는 1967년 본래의 활명수에 탄산을 첨가한 제품으로 청량감을 보강해 액제 소화제의 대표 제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1991년에는 브랜드 리뉴얼을 추진해 ‘까스활명수-큐’를 발매했다.
‘꼬마활명수’는 만 5세에서 7세를 위한 어린이 전용 소화정장제로, 스틱형 파우치 포장과 어린이 보호용 안전 포장을 적용했으며, 2020년 9월에 출시한 동화약품의 스틱형 파우치 소화제 활명수-유는 10ml 용량으로 복용 편의성을 높였다. 2012년 출시한 편의점 상비약 까스활(活)을 비롯해 2017년에는 상큼한 맛을 더한 신제품 미인활(活)을 출시한 바 있다.
2024년 현재 동화약품은 일반의약품인 활명수, 까스활명수, 꼬마활명수, 활명수-유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까스활(活), 미인활(活) 등 총 6가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활명수 브랜드는 액제소화제 시장 매출 1위는 물론 70%에 달하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약 90억병이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활명수를 한 줄로 세웠을 때 지구를 스물다섯 바퀴나 돌 수 있는 양이며, 전 세계 81억명의 인구가 한 병씩 마시고도 남는 수량이다.
국민 소화제 활명수에 대한 소비자들의 변함없는 선호는 현재 진행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생산실적 1위 품목은 까스활명수로 나타나 일반의약품 중 국민이 가장 많이 복용한 일반의약품으로 꼽혔다. 활명수 브랜드는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했으며 2023년에는 약 80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 액상소화제 시장 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동화약품은 앞으로의 100년을 바라보는 활명수를 재조각하고 있다.동화약품은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활명수의 메인 메시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며, ‘부채표’, ‘활명수’ 브랜드 가치 유지에 힘쓰고 있다.
앞서 활명수가 국민적인 인기를 끌면서 유사 약품과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1920년대부터 ‘브랜드’ 개념을 적용해 대한민국 최초의 등록상표 ‘부채표’를 광고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활명액·생명수 등 유사품에 속지 말고 ‘부채표가 있어야 진짜 활명수’라는 것을 적극 알렸고 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
동화약품 측은 CNB뉴스에 “활명수가 오랜 세월 꾸준히 발전해 왔듯이, 앞으로도 시대에 맞게 변화하기 위해 여러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SNS 채널 운영 등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지속해서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CNB뉴스=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