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찌처럼 손목에 감는 ‘휘는 기기’ 등장
화면을 말았다 펴는 ‘롤러블’ 시대 코앞
스마트폰도 피처폰처럼…외형 진화 끝은?
“대한민국은 IT강국”이란 말은 이제 잘 쓰지 않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가 가장 클 텐데요. 그만큼 국내 정보통신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며 세계에 이름을 날려 왔습니다. 날로 고도화되는 기술,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혁신적인 제품들이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결과물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IT 이야기’, 줄여서 [잇(IT)야기]에서 그 설을 풀어봅니다. <편집자주>
삼성전자가 올해 여름 문 연 대규모 체험형 매장 ‘삼성 강남’에 처음 갔을 때 잠시 멍했습니다. 이 회사가 자부하듯 펼쳐놓은 혁신 기술 때문이 아니었죠. 한곳에 마련된 헤리티지 존(Heritage Zone)에서 눈을 빼앗겼습니다. 애니콜을 비롯해 초기 갤럭시 시리즈 모델까지. 삼성전자 핸드폰의 역사를 전시한 공간에서 추억에 잠겼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엔 주류였던 피처폰을 볼 때 추억행 열차의 속도는 빨라졌습니다. 2000년대에 한번쯤 손을 거쳐 간 폰들이 망라돼 있었거든요. 그 시절, 다른 사람들과 연결해주던 피처폰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니 머릿속 시계는 어느 새 20년 전으로 맞춰졌습니다.
손목시계처럼 착 감기는 스마트폰
아고, 옛 생각에 빠져 잠시 길을 돌아왔네요.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습니다. 피처폰의 외형인데요. 요즘은 폼팩터(form factor)라고 흔히 하죠. 어쨌든 이 외형의 개성에 놀랐습니다.
접었다 펴는 ‘폴더형’은 기본이고요. 밀어 올리면 자판이 나오는 ‘슬라이드형’에 펴서 화면을 돌릴 수 있는 ‘가로본능’까지. 바(bar)형 일색인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참으로 다채롭습니다. 삼성전자가 2019년에 폴더블폰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외형의 다양성 측면에서 스마트폰이 피처폰에 비해 부족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앞으로는 어떨까요? 많은 전자회사들이 폼팩터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만큼 큰 변화가 일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중국 전자기기 제조사 레노버의 자회사인 모토로라가 프로토타입(시제품)으로 공개한 스마트폰이 변혁의 신호탄일지 모릅니다.
‘벤더블’(bendable), 즉 휘는 기기이기 때문인데요. 모토로라의 시연 영상을 보면 스마트폰이 팔찌처럼 손목에 감기는 것이 특징입니다. ‘폴더블’(foldable)처럼 여닫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기시감이 듭니다. 국내에서 이와 비슷한 기기가 나온 적이 있거든요.
LG전자가 2021년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개막 행사에서 전세계 최초로 공개한 ‘롤러블(Rollable)폰’을 기억하시는지요. 화면을 말았다 펴는 방식이라 ‘상소문폰’으로 불린 그 기기 맞습니다.
당시 출격 예고가 나왔을 때만 해도 기대감이 컸습니다. ‘폼팩터의 혁신’이란 반응과 함께요. 그러나 그해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전격 철수하면서 결국 세상의 빛을 보진 못했죠. 그래서 결국 비운의 폰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갤럭시 롤·슬라이드’ 삼성 롤러블은 언제쯤?
화면을 돌돌 마는 롤러블 디스플레이가 가진 의미는 큽니다. 폼팩터 다양화의 핵심 기술이기 때문인데요. 롤러블폰이 나온다면 또 다른 외형의 스마트폰이 나올 길이 크게 열린다는 뜻입니다.
그 신호탄을 삼성전자가 쏠지도 모르겠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유럽특허청(EUIPO)에 ‘갤럭시Z롤’과 ‘갤럭시Z슬라이드’라는 상표를 출원한 적 있거든요.
게다가 이듬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2’에서 당시 MX사업부 최원준 부사장은 “롤러블·슬라이더블폰은 오랫동안 보고 있는 제품”이라며 확신이 섰을 때 시장에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때를 예단하긴 어려워도, 롤러블폰의 정식 출시가 기정사실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예고편이 잔뜩 쌓였습니다. 롤러블폰의 등장과 함께 스마트폰의 폼팩터 다양화 시대가 앞당겨질까요? 저마다 다른 외모의 피처폰을 보며 앞으로 나올 스마트폰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CNB뉴스=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