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경제의 흐름이 좋지 않다. 무역적자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으며, 환율 약세도 심각하다. 부동산 시장에는 여전히 찬바람만 분다. 미분양과 부실PF의 늪에 빠진 건설사들이 잇따라 부도・폐업・법정관리의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많은 징후들이 1997년과 2009년 경제위기의 재림을 예언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이런 징후들을 분석해 한국 경제에 ‘경고장’을 보낸 기업이 있다. 일본의 금융회사 노무라가 그 주인공이다.
노무라는 지난 2017년부터 금융 데이터 기반 미래 예측 모델 ‘카산드라(Cassandra)’를 운영하고 있다. 그 카산드라가 운영 이래 처음으로 한국 경제에 ‘경보’를 울렸다.
카산드라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오딧세이아’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왕녀다. 그녀는 미래를 정확히 예언하는 능력을 아폴론 신에게 받았지만, 그 예언은 항상 불길했고, 예언을 말해도 주변 사람들이 그걸 믿지 않는 저주를 함께 받았다. 결국 그녀는 트로이의 멸망과 자신의 죽음 등 다양한 미래를 예언했지만, 그 예언들이 현실화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노무라의 카산드라 모델은 크게 5개의 조기경보 지표로 해당 국가의 금융위기 가능성을 분석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부채) 비율, 총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 실질 주가, 실질 부동산 가격, 실질 실효 환율 등이 그것이다. 카산드라 모형 점수(Score)가 100점이 넘는 경우가 위험하다.
노무라에 따르면, 이 모델은 1990년 이후 약 30년간 40개 국가에서 발생한 53번의 금융위기에서 36번이나 맞아떨어졌다. 약 66%의 적중률을 가진 예측 모델인 셈이다.
특히 카산드라 모델은 선진국보다는 신흥국가(이머징 마켓)의 금융위기 예측에 더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신흥국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브라질, 인도, 폴란드, 칠레, 인도네시아, 러시아, 대만 등 21개 국가를 지칭한다.
지난 2021년 6월까지만 해도 한국의 점수는 62점으로 위험수준 8위에 머물렀다. 당시 100점을 넘었던 미국, 일본, 독일, 대만, 스웨덴, 네덜란드 등 6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한국은 카산드라 모델에서 별다른 위험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지난 2월 말 위험수치 100점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세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갑작스런 점수 상승의 원인은 가계부채 부실화와 실질 부동산 가격 하락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 예고하는 여러 징후들
사실 카산드라의 경고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카산드라 외에도 수많은 기업과 기관이 지난해부터 우리 경제에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례만 간단히 짚어보면, 먼저 블룸버그는 한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1%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직전 전망치인 0.3%에서 0.2%포인트나 내려간 수치다. 이미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에 -0.4% 역성장을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여파가 심각했던 2020년 2분기의 -3.0% 이후 10분기 만에 나타난 역성장 기록이다.
블룸버그의 예측대로 올 1분기에도 우리 경제가 역성장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2분기 연속 역성장이 된다. 한국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섰다는 공식적인 평가가 나온다는 얘기다.
또, 한국은행은 2월 중 원화 환율 변화율이 다른 통화 평균치의 2배 이상을 상회하면서 표본 국가 34개국 중 가장 높은 변화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월 중 원화 가치가 달러 대비 7.4% 절하됐는데, 이는 전쟁이나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 이렇게 원화 가치가 급락한 이유는 무역수지 적자 확대로 지목됐다.
실제로 무역적자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3월까지 13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지속되고 있는데, 역대 최고 기록은 1995년 1월부터 1997년 5월까지 이어진 29개월 연속 적자였다. 직후에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를 겪어야 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10일까지 누적 무역적자는 258억 6100만 달러다. 이는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무역적자 478억 달러의 절반을 넘어서는 규모다. 3개월 만에 역대 최악인 지난해의 과반을 넘은 것. 올해 최종 무역적자 규모가 얼마나 될지 예측하기조차 두려워진다.
다행인 것은 노무라가 가진 또 하나의 예측 모델 ‘다모클레스’는 아직 우리 경제에 대해 위기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모클레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왕이 되고 싶었던 한 평민의 이름이다. 어느 날 왕은 그를 왕좌에 앉아보게 허용했는데, 왕좌에 앉은 그의 머리 위에는 한 자루의 칼이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있었다. 왕좌에는 항상 위기와 불안이 따른다는 의미의 ‘다모클레스의 칼’이란 말이 나온 배경이다.
노무라의 다모클레스 모델은 경상수지 적자, 외부 부채, 외화보유액, 실질 유효 환율 등의 지표를 활용해 약 12개월 이내에 해당하는 조기 경고 신호를 보낸다. 2003년부터 사용돼 카산드라 모델보다 더 오래됐으며, 신흥국의 위기 징후를 더 잘 포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모클레스가 잠잠한 것은 아직 우리 경제에 위기를 반전시킬 시간과 기회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부당국을 비롯한 우리 경제주체들이 이를 잘 활용해 카산드라의 불길한 예언까지도 무효화시킬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CNB뉴스=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