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윤기자 |
2022.11.25 15:45:57
부산대학교는 대한민국 건국훈장에 추서된 민족혁명가 산수(山水) 이종률(1905~1989) 부산대 교수의 기림비를 새롭게 단장해, 25일 오전 새벽벌도서관 앞 민주언덕으로 이전하는 제막 행사를 가졌다.
이 기림비는 지난 2005년 이종률 교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 교수가 재직했던 부산대 교정에 세워진 기념 표석이다. 최근 부산대가 교내 민주화 기념장소로 새별벌도서관 앞 ‘민주언덕’을 새로 조성하면서 기존 교내 10.16기념관 앞에 있던 기림비를 이곳으로 이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종률 교수의 아들인 이우눌 씨와 차정인 부산대 총장, 송기인 신부, 배다지 민족광장 상임의장, 하일민 산수이종률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이행봉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배종렬 광복회 부산시 지부장, 부산대 민주동문회 관계자 등이 참석해 기림비 이전을 기념하며 이종률 교수의 발자취와 업적을 되새기고 고인을 추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종률 교수는 민족건양(民族建揚)·민족자주국가를 주창한 한국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민족 사상가이자 이론가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해방 이후에는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으며, 분단 후 자주통일운동·민주민족운동을 펼치는 등 우리나라 사회 변혁과 진보적 발전에 일생을 바쳤다.
이 교수는 일제강점기 국내 최초의 사회과학연구 학생단체인 공학회 창립을 주도했고,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해서도 재일본 조선유학생학우회, 재일본조선청년동맹, 신간회 도쿄지회 등에서 활동하며 압제에 항거했다. 그는 불령선인이라는 명목으로, ‘조선학생맹휴옹호전국동맹 사건’, ‘형평청년전위동맹 사건’ 등으로 투옥돼 탄압과 고문에 시달렸다.
1953년 부산대 정치학과 교수로 부임해 민족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후학들을 길러냈고, 민족혁명론을 주창하며 언론 활동에도 주력했다. '국제신보', '부산일보', '영남일보'의 논설위원을 역임했으며, 1961년 2월 '민족일보' 창간을 주도하고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를 창립했으나, 그해 5.16군사정변 이후 민족일보 사건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출감 후 민족 교육사업과 민족혁명운동에 관한 방대한 원고를 집필하는 등 이종률 교수는 1989년 별세할 때까지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로서 역할이 컸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부산지역에서 전개된 민주화 운동의 큰 축이었던 부산대의 많은 젊은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줬다.
정부는 이 같은 업적을 인정해 이종률 교수에게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고, 2021년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으로 그의 영면의 보금자리를 이전했다.
차정인 총장은 이날 제막식 기념사에서 “산수 이종률 선생님의 지고지순한 삶과 사상과 학문이 유방백세(流芳百世)로 남아, 부산대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혀가는 등불로서 큰 자산이 돼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