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급등으로 증시에 매서운 한파
ESG 여파로 탄소배출권 시장 성장
증권업계에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에 진출하는 증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규제적 시장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캠페인이 확산되면서 증권사들은 전담조직을 꾸려 대응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CNB뉴스=손정호 기자)
탄소배출권 시장이 증권사들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Emission Trading Scheme·ETS)는 기업들이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사고팔 수 있는 제도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선진국들이 의무적으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을 단계적으로 줄이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를 규정한 교토의정서 협정 당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어 의무적인 감축 대상국은 아니지만, 신성장 동력 비전 및 발전전략을 수립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했다. 녹색성장기본법과 배출권거래제법 등을 제정해서 이를 실천해왔다.
우리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업체(12만 5000톤)와 사업장(2만 5000톤)을 의무적인 감축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해당 기업의 배출량이 감축 목표량보다 많으면 배출권을 구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반대로 배출량이 감축 목표량보다 적은 기업은 배출권을 판매해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탄소배출권 거래는 한국거래소에서 진행되는데, 이 거래시장의 회원으로 가입한 투자자가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을 이용해 호가(주식 시장에서 매매하는 유가증권의 종목·가격·수량 등을 제시하는 것)를 제출할 수 있다. 이 호가가 제출되면 한국거래소의 시장 시스템에서 매매 체결과 청산, 결제 등의 과정이 진행된다.
우선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말 탄소배출권 시장의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참여 증권사를 확대했다. 기존에는 정부와 탄소배출권 규제 대상 업체 650곳, 한국산업은행과 중소기업은행,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SK증권 등만 탄소배출권을 거래해왔다.
현재 탄소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는 증권사는 총 20곳(교보·대신·메리츠·미래에셋·부국·삼성·신영·유진투자·이베스트투자·NH투자·하나·하이투자·한국투자·한화투자·현대차·IBK투자·KB·SK증권, 신한·DB금융투자)으로 늘어났다.
한 발자국 더 내딛은 증권사들도 있다. 규제적 시장뿐만 아니라,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에도 진출하는 것.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은 감축 의무 대상이 아닌 기업과 정부 기관 등이 스스로 참여하는 시장이다. 민간 기업이 탄소 감축을 인증해 주고, 이를 자발적 탄소배출권 형태로 거래할 수 있다.
올해 들어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SK증권이 금융감독원에 자발적 탄소배출권에 대한 자기매매, 장외거래 중개 업무를 신청했다.
하나증권은 올해 3월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에 첫발을 내딛었다. ESG 채권을 발행하고, 탄소배출권 관련 비즈니스와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자발적 탄소배출권 사업을 개발해 투자와 중개 거래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탄소배출권 금융상품과 탄소중립 솔루션도 개발하고 있다.
KB증권은 이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FICC운용본부에 탄소·에너지금융팀을 신설했다. RE100(Renewable Energy 100·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프로젝트)을 선언한 기업에게 탄소와 에너지에 대한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운용사업부에 탄소금융 테스크포스(TF)를 설치했다. 농협금융지주 계열사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발적 탄소배출권과 관련한 컨설팅과 수탁 업무 등으로 업무 범위를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ESG 열풍’ 불며 시장 성장
이처럼 증권사들이 탄소배출권 시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우선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가 기업경영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친환경(E)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해야 한다는 캠페인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우리 정부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발적인 탄소 감축 캠페인인 ‘RE100’을 선언하는 기업들도 증가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아모레퍼시픽·KB금융·LG에너지솔루션·SK·SK텔레콤·SK하이닉스 등이 글로벌 RE100 캠페인에 공식적으로 가입했다. 현대자동차·기아 등은 가입을 선언하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 영향으로 규제적,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증권사 입장에서는 수익 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더구나 현재 위기상황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와 한국은행이 지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증시 투자금 이탈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 영향으로 주식 거래가 줄고 기업공개(IPO)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투자은행(IB) 비즈니스도 위축되고 있기 때문.
앞으로 점점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증권사의 역할이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증권사들은 이 시장에서 중개 역할을 하거나, 고유재산을 운영하는 자기매매를 주로 수행하고 있다. 고객의 재산을 운영하는 위탁매매는 향후 단계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며 관련 파생상품 등도 다양해질 전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CNB뉴스에 “국내의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증권사들이 얻는 이익이 크지는 않지만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며 “규제적 시장뿐만 아니라 자발적 시장에도 관심을 갖고 다양한 사업과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CNB뉴스=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