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신용호 창업주의 교육정신 계승
서른살된 대산문화재단 작가 포럼 열어
광화문 교보 글판은 일상 지친 삶 위로
교보생명그룹은 우리나라 1위 서점인 교보문고를 보유한 기업답게 다양한 문학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익재단 대산문화재단을 통해 ‘젊은 작가 포럼’을 열고 있으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광화문과 강남 사옥에 꿈과 희망, 삶의 의미를 담은 대형 글판을 내걸고 있다. 이처럼 교보는 문학에 진심이다. CNB뉴스의 <기업과 문학>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다. (CNB뉴스=손정호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마스크를 착용하는 일이 일상이 됐습니다. 언젠가 마스크를 벗으면 마음을 담는 얼굴의 개념이 바뀌어 있지는 않을까요.”
정용준 소설가(서울예술대 문예창작학과 조교수)가 ‘젊은 작가 포럼’에서 한 말이다. 이 포럼은 대산문화재단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28~30일 서울 광화문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렸다.
기자가 찾은 28일에는 서이제, 정용준, 최은미 소설가가 ‘코로나(이후) 시대의 삶, 연결과 단절’을 주제로 독자들을 만났다. 50여명의 독자들이 젊은 작가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장맛비에 우산을 들고, 광화문 덕수궁 골목길에 있는 고풍스러운 이 건물을 찾아왔다.
대산문화재단은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와 작품 낭독을 위해 방송팀을 준비했다. 2명의 방송팀 사람이 카메라와 송출 장비를 이용해, 독자들이 유튜브 생중계로 포럼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강동호 문학평론가(인하대 한국어문학과 조교수)는 ‘전복과 회복’이라는 포럼의 전체 주제를 소개했다. 이어 정용준, 최은미, 서이제 소설가가 차례대로 자신의 작품 일부분을 낭독하고, 대학과 가정, 직장에서 겪은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전염병) 시대에 대해 문학적인 소감을 전달했다.
이번 포럼은 총 5개의 세션으로 진행됐다. ‘노동하는 인간, 내/일을 위한 시간’ ‘움직이는 몸, 말하는 몸’ ‘책의 미래, 미래의 책’ ‘이야기되는 역사, 이야기하는 여성’에 대해 젊은 작가, 시인, 평론가들이 3일 동안 대화를 나눴다.
문학계에서 많이 논의되는 주제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눈길을 끌었다. 박서련 소설가는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인 배달의민족과의 콜라보레이션, 배수연 시인은 NFT(Non-Fungible Tokens,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대체 불가능한 토큰) 시집 경매, 유희경 시인은 시집 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로 문학의 내일에 대해 역설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대산문화재단은 교보생명 창업주인 고(故) 신용호 회장의 뜻에 따라 1992년 설립됐다. 재단의 이름은 대산(大山)이라는 신 회장의 호에서 따온 것으로, 교보생명이 활동에 필요한 기금을 출연해 시작됐다. 이듬해인 1993년에 제1회 대산문학상 시상식을 열었으며,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다양한 문학 지원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현재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대산문화재단을 이끌고 있다. 국내외 문학 작품의 번역, 웹진 ‘대산문화’와 관련 전문서적 발행, 포럼 기획 및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올해 5월에는 1922년에 태어난 문인들을 기억하기 위한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열기도 했다. ‘폐허의 청년들 존재와 탐색’이라는 주제로 시인 김춘수와 소설가 손창섭 등 9명의 문인들을 기억하는 행사였다.
대산문화재단 측은 “이번 포럼은 한국 사회의 동시대성을 사유해 문학의 역할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것”이라며 “코로나, 여성, 책, 노동, 몸을 키워드로 한 이번 포럼으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연대와 공동체의 감각을 예감해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국내최초 교육보험사업이 오늘날 ‘문학과의 동행’으로
교보생명그룹의 문학 지원활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교보생명은 매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서울 광화문과 강남 빌딩 벽면에 내걸어둔 글판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 지난 1991년 신용호 회장의 제안으로 시작돼 계절마다 글판을 바꾸고 있다.
글판 글귀는 시인, 소설가, 교수, 문학평론가,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문안선정위원회를 통해 선정된다. 꿈과 희망을 함축한 글귀는 삶에 지친 시민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 특히 이 일대가 빌딩 숲을 이루고 있어 교보의 ‘연가’는 메마른 직장인들의 일상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해오고 있다.
현재 교보생명의 광화문 빌딩에는 김춘수 시인의 시 ‘능금’ 중 한 구절인 ‘우리들 두 눈에 그득히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가 있다’가 적혀 있다. 올해 4월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은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파도야 놀자’의 한 장면이 배경 그림으로 사용됐다.
이처럼 교보그룹이 문학에 공을 들이는 데는 민족교육에 뿌리를 둔 창업정신이 배경이 되고 있다.
신용호 창업주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피폐해진 조국을 재건하는 길은 오직 ‘교육’에 있다는 신념 하에 국내 최초로 생명보험의 원리와 교육을 접목한 ‘교육보험’ 제도를 창안해 1958년 대한교육보험(교보생명의 전신)을 설립했다. 이같은 교육에 대한 열정은 1980년에 광화문에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를 세운 동력이 됐고, 이후 본격적인 문학 지원의 토대가 된 것이다.
(CNB뉴스=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