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70년 역사만큼 사회적책임 가져야”
‘함께 멀리’ 철학으로 끝없는 ‘도전과 혁신’
새로운 100년은 ‘녹색에너지’…수조원 투자
‘100년 한화’를 선포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ESG위원회를 강화해 친환경·친사회적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으며, 탄소중립과 녹색에너지 부문에 수조 원을 투자하는 5개년 로드맵을 발표했다. 혁신의 속도는 ‘전광석화(電光石火)’에 비유된다. 한화 내부에서는 “10년 걸릴 일을 1년 만에 해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ESG에 대한 각자 의지를 카드에 적어서 이 반려나무 화분에 꽂아 두시기 바랍니다”
초여름 내음이 풍기기 시작한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빌딩 3층 오디토리움에 각 계열사의 ESG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화그룹 ESG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현일 사장을 비롯해 ㈜한화 김승모 사장,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신현우 사장 등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와 ESG 담당 임직원 80여명이 총출동 한 것.
참석자들은 개인과 조직의 ESG 목표와 실천 의지 등을 담은 메시지를 작성했다. 메시지 카드는 기념으로 배부된 반려나무 화분에 꽂아 각자의 사무실 책상 위에 두기로 했다. 일종의 좌우명처럼 업무 중에도 ESG와 연계한 활동 방안을 고민하자는 취지다. 반려나무는 한화의 태양광 패널로 생산한 전력을 활용해 키운 묘목이어서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외부 전문가 초청 특별 세미나도 진행했다. 한성대 박두용 교수(前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는 ‘최근 산업안전 동향과 ESG 관점에서 기업의 대응전략’이라는 주제로 안전경영체계와 중대재해 예방전략, ESG 관점 위기 전략 등에 대해 강연했다.
ESG위원회 출범 1주년을 맞아 열린 이날 행사는 한화가 경영혁신의 방점을 ESG에 두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기후변화 대응에 기업이 앞장서야”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을 도입해 지속가능 경영을 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가치 경영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고, 이렇게 맺어진 신뢰가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는 점에서 ESG는 이제 글로벌 기업들의 핵심 성장 전략으로 떠올랐다.
한화는 국내 경제계에서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이사회 내에 ESG 이슈를 전담하는 ESG위원회를 신설한데 이어 4월에는 ESG위원회 산하에 총 6개 부문의 분과를 정해 ESG협의체를 발족시켰다. ESG협의체는 올해 총 10개 분야로 규모가 확대됐다.
또한 ESG위원회 출범 1년 만에 7개 전 상장사는 물론 일부 비상장 계열사까지 ESG위원회를 설치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과 지배구조헌장 제정도 마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냈다. 각 계열사 ESG위원회는 위원 3분의 2 이상 혹은 전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위원장을 사외이사가 맡도록 해 독립성과 전문성까지 확보했다.
김승연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위기 등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기업의 책임과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며 “70년 역사에 걸맞은 깊은 책임감과 ‘함께 멀리’의 철학으로 ESG경영을 적극 실천하자”고 강조했다.
4조원대 베팅…한국을 태양광 전초기지로
이런 가운데 한화그룹은 지난달 향후 5년간 미래 산업 분야인 에너지, 탄소중립, 방산·우주항공 등에 총 37조6000억원을 투자하는 매머드급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중 ESG의 핵심인 ‘E(환경)’ 분야 비중이 가장 크다. 태양광, 풍력 등 그린 에너지 분야에 5년간 무려 4조2000억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태양광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최신 생산시설을 구축해 우리나라를 고효율의 태양광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글로벌 핵심 기지’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태양광과 풍력을 결합한 에너지 사업도 강화한다. ‘에너지 안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국제 환경에서 친환경 에너지 공급 기지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하겠다는 각오다.
수소 기술 상용화, 수전해 양산 설비 투자 등 탄소중립 분야에는 9000억원을 투자한다. 기후변화 위기에 발빠르게 대응하며 지속가능 성장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탄소발자국’을 없애는 활동도 지속적으로 펼친다. 친환경 고부가제품 연구 개발, 친환경 헬스케어 사업 등 친환경 신소재 분야에 2조1000억원을 투자해 ‘탄소 제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S(사회)’ 분야에서는 일자리 창출과 스타트업(신생창업기업) 육성을 내걸었다.
향후 5년간 2만명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해 사회적 고용 확대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기계·항공·방산, 화학·에너지, 건설·서비스, 금융 등 전 사업부문에 걸쳐 연평균 4천명 안팎의 신규 채용을 진행한다.
스타트업 지원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미래산업 분야의 혁신 스타트업을 발굴, 지원하고 협력해 동반성장 하자는 것이다.
ESG의 기반은 ‘준법·투명경영’
이밖에 G(지배구조) 분야에서는 투명경영에 방점을 찍고 있다.
우선,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를 위해 그룹 출신 사외이사를 배제하고 개방형 사외이사 추천 제도를 도입했다.
또 이사회 내 위원회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내부거래위원회를 개편하고 상생경영위원회를 신설했다. 내부거래위는 위원 과반 이상을 사외이사로 구성해 엄격하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심의하고 있으며, 상생경영위는 고객·협력사와의 동반성장 전략을 기획·실행하고 있다.
지배구조의 핵심 요소인 주주의 이익을 늘리기 위한 노력도 꾸준하다. 지난 10일 열린 상반기 ESG 경영성과 회의에서는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 핵심 의제였다. 올 하반기 안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한화 관계자는 CNB뉴스에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며 “이른 시일 내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승연 회장은 각 계열사별로 독립적이고 실질적인 ESG 활동이 진행될 수 있도록 큰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과 대주주로서 가장 기본적인 권한만을 행사하고 있다. CEO 선임 및 임원인사는 각 사 이사회가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사회는 ESG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김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관점에서 ESG를 강화해 나가자”고 주문하고 있는데, 이는 투명경영이 지속가능경영의 전제임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친환경 투자 규모를 늘리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한 결과, 한화그룹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2021년 상장기업 ESG 평가에서 상장 7개사 중 6개사가 종합등급 ‘A’를 받았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