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고층빌딩 속 무성한 수풀
SK그룹의 탄소중립 여정 담아
최태원式 그린경영 전사적 속도
다음은 1조원 친환경 메카 건설
모이지 말고 움직임도 줄여야 하는 ‘자제의 시대’가 저물어 갑니다. 코로나 엔데믹(풍토병)을 맞는 기대감 때문일까요? 재밌고 새롭고 신선한 곳이 봄 새싹 나듯 생겨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움츠려서 아직 몸이 덜 풀렸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CNB가 먼저 가봅니다. 가서 발과 눈과 손과 귀에 담은 모든 것을 전해드립니다. 이번에는 SK가 도심에 마련한 숲에 다녀왔습니다. <편집자주>
이곳에서 빌딩숲은 비유가 아니다. 빌딩 안에 진짜 숲이 들어섰다.
조림(造林)된 곳은 높다란 건물 늘어선 홍대 거리에 위치한 SK텔레콤의 ICT복합문화공간 T팩토리. 지난 18일, 1·5층에 있는 ‘팩토리 가든’에 올라가자 풀내가 진동했다. 음습하게 깔린 이끼, 성인의 키를 훌쩍 넘는 무성한 수림이 한 개 층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폭신한 토양의 감촉마저 발바닥에 그대로 전해지자 이곳은 엄연한 숲이 되었다.
ICT복합문화공간이란 정체성을 내려놓고 실내 식물원이라도 되고 싶었던 걸까? 이 비밀의 화원에는 비밀처럼 태블릿이 군데군데 있다. SK의 넷제로(net zero. 배출하는 온실가스양과 감축하는 온실가스양을 합한 순 배출량이 0이 되는 것) 실천 노력을 소개하는 창이다.
9개 항목이 있다. ▲EV배터리 ▲수소 ▲그린에너지 ▲친환경 플라스틱 ▲친환경 반도체 ▲클린 솔루션 ▲CCUS(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 ▲그린 라이프스타일 ▲탄소 없는 사회 등이다. 이중 하나를 선택해 실천을 약속하면 증서가 MMS로 전송된다. SK텔레콤은 방문객이 실천 약속에 참여할 때마다 1000 행복크레딧을 적립해 나눔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기부할 예정이다.
공간은 디지털과 자연의 공존으로 꾸며졌다. 500인치 대형 LED에서 탄소절감의 중요성을 알리는 영상이 내내 흘러나온다. 침잠하는 동물들, 타들어가는 나뭇잎 등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담긴 장면들이 반복된다. 지금 여기 푸릇한 숲이 회상이 될지도 모르니 경각심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김상범 SK텔레콤 유통담당은 “이번 ‘팩토리 가든’ 개편이 환경보호에 관심이 높고, T팩토리를 많이 찾는 MZ세대와 탄소 절감의 중요성을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탄소중립 향해 계속되는 항해
‘팩토리 가든’은 탄소중립을 향해 출력을 높이고 있는 SK호(號)의 중간 여정을 보여주는 자리다.
SK는 지난 2021년 그룹 전체 차원의 ‘넷 제로(Net Zero, 탄소중립) 조기 추진’을 선언하며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가속도를 붙인 건 지난해 10월 개최한 ‘2021 CEO세미나’였다. 이 자리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SK CEO들은 넷제로 추진 등을 주제로 3일간 열띤 토론 펼쳤다. 선장인 최 회장이 항로를 설정하면 CEO들이 구체적 추진 방안을 제시하는 생산적인 시간이었다.
최 회장은 먼저 “2030년 기준 전 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210억톤)의 1% 정도인 2억톤의 탄소를 SK그룹이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석유화학업종을 주력으로 사업을 영위해 온 SK가 지금까지 발생시킨 누적 탄소량이 개략 4.5억톤에 이르는데 이를 빠른 시일 내에 모두 제거하는 것이 소명”이라며 “미래 저탄소 친환경 사업의 선두를 이끈다는 사명감으로 2035년 전후로 SK의 누적 배출량과 감축량이 상쇄되는 ‘탄소발자국 제로'를 달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의지를 표명했다.
이어 “앞으로 생각보다 매우 빠른 시간 내에 탄소가격이 톤당 100달러를 초과할 뿐 아니라 지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따라서 향후의 사업계획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조건 하에서 수립해야 하며 탄소발자국 '제로'에 도달할 수 있는 사업 모델로의 진화와 첨단 기술 개발에 모든 관계사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의 역설에 SK CEO들은 상세한 로드맵을 피력했다. 우선 기존 사업 분야에서 공정 효율을 개선하고, 재생에너지를 구매하는 등 방식으로 감축 목표인 2억톤 중 0.5억톤을 감축해 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전기차배터리, 수소 등 친환경 신사업에 100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협력사 지원을 비롯한 밸류체인을 관리해 나머지 1.5억톤 이상을 추가로 감축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세미나에는 최태원 회장 외에도 최재원 수석부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조대식 의장 및 7개 위원회 위원장, 주요 관계사 CEO 등 30여 명이 참석했으며 각 사 구성원 1000여명이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5년뒤 6만평 규모 ’그린 메카‘ 완성
한번 시동이 걸리자 친환경을 향한 속도는 걷잡을 수없이 빨라졌다. CEO 세미나 폐막 약 두 달 뒤인 지난 1월 SK는 그린 비즈니스 신기술 개발을 전담할 R&D 인프라를 조성한다고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경기도 부천시와 손잡고 부천대장신도시 내에 그룹 내 친환경 사업 분야의 연구개발(R&D) 인력과 역량을 결집시키는 대규모 연구시설인 'SK그린테크노캠퍼스'(가칭)를 설립하기로 했다.
시설은 오는 2025년경 착공에 들어가 2027년 초 문을 열 예정으로, 이곳에는 SK이노베이션 등 7개 관계사의 친환경 기술 연구개발 인력 등 3000여명이 근무하게 된다.
SK는 연면적 약 19만8000㎡(6만여 평) 규모로 지어질 이 시설 조성에 1조원 이상을 투입할 방침이다. 이곳에는 SK이노베이션 외에 SK에너지, SK지오센트릭, SK온, SK E&S, SKC, SK머티리얼즈 등 총 7개사의 ▲ 차세대 배터리/반도체 소재 ▲ 탄소 저감 및 포집 ▲ 신재생에너지와 수소 등 친환경 기술개발 부문이 입주한다.
'SK그린테크노캠퍼스'에서 중점 연구할 기술 분야는 크게 두 가지.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환경 솔루션이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 부문은 배터리(2차전지, 2차전지 소재, 차세대 전지)와 수소 관련 기술을 주로 다룬다. 환경 솔루션 부문은 배터리 재활용, 탄소 포집·활용·저장, 에너지솔루션 등을 포함한다. 기타 나노 소재 등 친환경 기반 기술, 저전력 반도체 소재 등 미래 유망 친환경 기술 연구도 이뤄질 전망이다.
SK 측은 “최태원 회장이 지난 2020년부터 CEO세미나 등을 통해 그린 사업 전략을 택한 관계사들이 결집해 전략을 실현할 방법을 함께 논의하고 찾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며 “이에 따라 SK는 2020년 관계사 CEO들의 협의체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 환경사업위원회를 신설하고, 그룹 차원의 지속가능한 친환경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R&D 거점 구축 방안 등을 검토해왔다”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