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모험’보다 ‘안정’ 선택
효자상품·추억상품 리뉴얼로 승부수
새로운 맛 접할 기회 줄어 아쉬움도
식품업계가 신제품 출시보다 기존 제품 리뉴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경기침체가 지속 되면서 도전·모험보다 안정적 매출 확보를 택했기 때문.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고 경기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이런 ‘추억의 먹거리’ 전략이 계속될 전망이다. (CNB=전제형 기자)
SPC삼립은 최근 과거 높은 인기를 끌었던 ‘포켓몬빵’을 새롭게 출시했다. 포켓몬빵은 지난 1998년 첫 발매된 제품으로, 당시 빵에 동봉된 ‘띠부씰(떼었다 붙였다 하는 스티커)’ 수집 열풍이 불며 월평균 500만개가 팔려나가는 등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캐릭터 라이선스 계약 만료에 따른 생산 중단으로 2006년 단종됐다. 이후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재출시 요청 끝에 ‘그때 그 추억 소환’을 콘셉트로 띠부실 159종을 무작위로 동봉한 포켓몬빵을 다시 선보인 것이다. 빵 가격이 과거 500원에서 1500원으로 크게 올랐음에도 재출시 2주일 만에 350만여 개가 판매되며 인기몰이 중이다.
오뚜기는 지난 3일 자사 볶음면 판매량 1위 브랜드 ‘콕콕콕’ 용기면 3종을 리뉴얼했다. 콕콕콕 용기면은 2004년 첫 출시된 이래 연간 매출액 150억원을 올린 효자 제품으로 꼽힌다. 패키지 디자인과 용기 재질에 변화를 줬으며, 주 소비층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톡톡 튀는 색감과 이미지를 강조했다. 용기 재질은 간편한 전자레인지 조리를 선호하는 소비자 니즈를 반영해 기존 폴리스티렌(PS) 재질의 용기를 ‘스마트 그린컵’으로 변경했다. 스마트 그린컵은 용기 겉면에 발포성 소재를 코팅, 열처리 가공을 통해 전자레인지 조리가 가능하며 탄소 발생 저감에 일조하는 친환경 용기다. 또 콕콕콕 연구원이 추천하는 레시피를 담은 QR코드를 제품 뚜껑에 표기했다.
오리온은 작년에 스낵제품 ‘와클’을 15년 만에 재출시했다. 지난 10개월 동안 누적 판매량 780만개를 판매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2016년 공장 화재로 생산이 중단된 ‘태양의맛 썬칩’도 2018년에 다시 선보이며 지난달 말까지 1억3000만개 판매를 돌파했다. 이외에도 ‘치킨팝’ ‘배배’ 등도 소비자들의 높은 관심을 얻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제과는 이달 초 출시 20주년을 맞은 설레임의 리뉴얼을 단행했다. 구입 시점에 너무 꽁꽁 얼어 있어서 즉시 먹기 힘들었던 점을 개선하기 위해 설레임 밀크쉐이크의 우유 함량을 기존 1%에서 10%로 10배 가까이 늘렸으며, 제품의 뚜껑이 잘 열리지 않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뚜껑의 크기를 기존 16mm에서 22mm로 키우는 동시에 돌출 면을 만들어 그립감을 높였다. 아울러 제품 로고를 비롯한 패키지 디자인에도 변화를 줬다.
빙그레도 이달 중 추억의 제품 ‘링키바’ ‘매운콩라면’ 재출시할 예정이다. 앞서 매운콩라면은 콩기름만을 쓴 색다름, 링키바는 한 박스 12개입이 들어있는 풍성한 양 대비 저렴한 가격의 가성비 제품으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각각 2003년, 2006년 단종된 바 있다.
‘대박’ 보다 ‘지속가능’ 택해
이처럼 식품업계가 앞다퉈 기존 주력 제품들을 새롭게 내놓는 이유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제품 개발에 투자하는 것은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효자 상품 리뉴얼은 개발 비용과 시간 등에 있어 비교적 부담이 적다. 상당수가 최소 2~30년 전에 출시돼 일정한 고객층이 확보된 데다, 꾸준한 소비자 요청에 따른 리뉴얼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큰 수익은 아니더라도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자는 전략이다.
최근 대형마트 또는 백화점 식품관에서 시식이 어려워진 점도 리뉴얼 쪽으로 방향을 튼 배경이 됐다. 애써 신제품을 개발해도 시식의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에 기업의 제품 연구개발(R&D) 등 투자 여력을 감소시켰다.
또 다른 이유로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에게는 추억을 자극하고, Z세대에게는 신선함을 전달하려는 판매전략이 존재한다.
앞서 주류업계가 2020년에 복고풍 감성이 물씬한 주류 제품들을 선보이며 소비층을 넓힌 바 있다. 2030세대에게는 윗세대를 통해 경험한 상품들을 새롭게 접하는 즐거움을, 기성세대는 어릴 적 추억이 되살아나게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
포켓몬빵 열풍의 경우 159종의 다양한 캐릭터로 구성된 띠부실을 모으는 재미에 더해 90년대 후반을 추억하는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여러 요인에 힘입어 향후 식품기업들의 레트로(Retro·복고) 전략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SPC삼립 관계자는 CNB에 “어린이들은 물론 과거를 추억하는 성인들에게도 폭넓게 사랑받고 있는 포켓몬빵을 ‘진화’를 테마로 맛과 품질, 띠부씰까지 업그레이드했다”며 “이달부터 새로운 포켓몬빵 라인업 출시와 함께 다채로운 마케팅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뚜기 관계자도 “대표 볶음면 브랜드 ‘콕콕콕’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소비자들의 세분화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전면 리뉴얼을 진행했다”며 “앞으로도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제품들을 선보이며 브랜드 경쟁력을 높여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추억 마케팅’이 식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일 저녁 편의점에 들려 빵을 구매한다는 직장인 김모(33)씨는 CNB에 “‘맛’의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아 아쉽다. 기업들이 인기 상품을 재출시하는 전략을 되풀이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맛을 접하기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CNB=전제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