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수소차만 판다” 선언
5월부터 본격적인 판매 돌입
경쟁사 이길 비결은 ‘온라인’
예약서 배송까지 비대면 완결
현대자동차가 약 12년 만에 일본 승용차 시장 재진출 계획을 공개했다. 일본 브랜드 점유율이 94.6%에 달해 ‘수입차의 무덤’이라 불리는 일본 시장에 전기차 ‘아이오닉5’와 수소차 ‘넥소’를 온라인으로 판매하겠다는 것. 업계에선 우려반 기대반이지만, 현대차 측은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CNB=정의식 기자)
최근 장재훈 현대차 사장이 일본 승용차 시장 재진출을 전격 선언한 이후 완성차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과거 일본 시장에서의 실패를 딛고 이번에는 설욕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현대차가 일본 시장에 진출한 건 지난 2001년에 이어 두 번째다.
2002 한일월드컵 공동개최, 드라마 ‘겨울연가’의 대히트 등으로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당시 현대차는 ‘욘사마’로 유명했던 배우 배용준을 모델로 내세우며 ‘쏘나타’ 판매에 집중했다.
하지만, 2001년 1113대, 2002년 2423대, 2003년 2426대, 2004년 2524대 판매에 그치며 일본 시장에서 의미있는 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했고, 2006년부터는 판매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결국 2008년 501대 판매를 끝으로 일본 시장에서 철수해야 했다. 이후로는 버스 등 상업용 차량 판매를 중심으로 일본 법인을 유지해왔다.
이처럼 한번 실패했던 시장에 재도전하는 만큼 현대차의 각오는 가볍지 않다. 과거의 경험을 거울삼아 당시와는 다른 전략으로 새롭게 접근하겠다는 계획이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8일 일본 현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차로서 12년 만에 일본의 여러분께 다시 인사를 드린다”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진지하게 일본 고객과 마주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세계에선 여러 가지 변화, 특히 라이프 스타일 관련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키워드가 지구 온난화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탈탄소화”라며 “현대차는 일본 시장에서 수소차, 전기차 등 ZEV(무공해차)로 탈탄소화 실현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가솔린, 디젤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나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가 아닌 전기차와 수소차를 중심으로 일본 시장 공략에 임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현대차는 일본 판매망을 ‘온라인’으로 한정할 계획이다. 테슬라처럼 오프라인 딜러 없이 온라인 쇼핑만으로 판매한다는 것. 차량 선택부터 시승예약, 견적, 주문, 결제, 배송 확인까지 모든 것을 온라인에서 완결짓는다는 구상이다.
장 사장은 “우리는 일본 내에 판매점, 이른바 ‘딜러’가 없다”며 “그 대신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 스마트한 차량 구매 경험을 온라인 완결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 요코하마 등에 ‘현대 고객 체험 센터’를 설치해 고객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차량 공유’ 방식의 판매 모델을 적극 도입한다는 전략도 공개했다. 가토 디렉터는 “렌터카와 카셰어링 등을 통해 고객에게 현대차를 경험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렌터카 업체나 카셰어링 업체와의 B2B 거래를 통해 판매고를 늘리고,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현대차를 알리겠다는 것.
일본법인 명칭을 ‘현대차 일본법인’(Hyundai Motors Japan)에서 ‘현대모빌리티재팬’(Hyundai Mobility Japan)으로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단순한 완성차 판매업체가 아닌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공급자’가 되겠다는 전략이다.
본격적인 판매 시기는 오는 5월경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의 일본 법인인 현대모빌리티저팬의 가토 시게아키(加藤成昭) 매니징 디렉터는 전기차 ‘아이오닉5’(2021년 출시)와 수소차 ‘넥쏘’(2018년 출시)를 소개하면서 “올해 5월부터 주문 접수를 시작해 7월부터 인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판매 가격은 아이오닉5가 479만엔(약 5000만원), 넥쏘가 776만8천300엔(약 8000만원)으로 책정됐다.
‘RE100’에 맞춘 기막힌 타이밍
전문가들은 이번 현대차의 일본 진출을 ‘기막힌 타이밍’으로 평가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원인이 기후변화(탄소배출)로 인한 자연파괴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전지구적으로 탄소중립이 필수요건이 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12월 유럽연합을 시작으로 중국(2020년 9월 22일), 한국(2020년 10월 28일) 등의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화석연료 사용 확대 정책을 전개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낙선한 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50년 탄소 배출량 제로 실현’을 선언했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글로벌 캠페인 ‘RE100’에 맞춰 일본 또한 2020년 10월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일본 내 해외 브랜드 전기차 등록 대수가 2020년 약 3200대에서 2021년 8610대로 3배 가량이나 늘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전기차 보조금을 최대 80만엔(약 835만원)으로 상향 조정할 예정이라 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차의 무덤’ 극복할까?
하지만 넘어야 할 장벽도 여전히 높다.
일본 자동차 시장은 ‘수입차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자국 브랜드의 주도권이 강하다. 자동차 업계 취합 자료에 따르면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 브랜드의 점유율은 5.4%에 불과하며, 일본 브랜드가 94.6%를 차지하고 있다.
또, 중대형 세단과 SUV의 인기가 높은 타국과 달리 일본 소비자들은 경차, 소형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현대차가 일본에 출시 예정인 아이오닉5와 넥쏘는 모두 중형SUV다.
여러 완성차 기업들과의 경쟁도 치열하다. 테슬라, BMW, 벤츠, 아우디, GM, 폭스바겐, 볼보 등 다른 수입 브랜드 전기차와 토요타, 닛산 등 일본 브랜드 전기차, 니오, BYD 등 중국 브랜드 전기차들의 각축이 예상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CNB에 “장기적인 측면에서 볼때 전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을 타고 현대차가 일본 시장에서 선전할 것”이라면서도 “당장은 여러 글로벌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만큼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CNB=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