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15년 동지’ 피터의 책에 추천사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에서 개인전 열어줘
엔진룸 없는 미래차, 디자인 혁신 필수적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차의 디자인경영담당 사장인 피터 슈라이어를 통해 미래를 개척하고 있어 주목된다. 피터는 “자동차는 두 번째 집이다”라는 말을 남긴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다. 정 회장이 피터를 통해 꿈꾸는 미래차의 모습은 뭘까? (CNB=손정호 기자)
“처음 피터의 디자인 철학인 ‘직선의 단순함’을 접했을 때,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디자인 방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는 정의선 회장이 현대자동차그룹의 디자인경영담당 사장이었던 피터 슈라이어의 책 ‘디자인 너머’에 쓴 추천의 글이다.
피터는 미국 시카고 굿디자인상, 독일 연방 디자인대상 등을 받은 세계적인 디자이너이다. 올해 68세로 고령인 피터는 최근 어드바이저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피터의 디자이너 인생을 정리하는 책에 정 회장이 추천사를 실은 셈이다.
정 회장은 피터가 기아자동차의 ‘K 시리즈’를 탄생시키고, 기아차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호랑이 코(tiger nose)’ 그릴을 만든 주역이라고 평가했다. 이후에 현대차그룹의 디자인경영담당 사장으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일하는 방식과 고객과 소통하는 방법 등에서도 영감을 주었다고 술회했다.
정 회장의 관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의 디자인라이브러리에서 피터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 개인전에서 피터는 자신의 스케치, 아우디와 폭스바겐, 현대·기아차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남긴 것을 정리한 책을 전시했다. 피터가 후배 디자이너들과 소통하는 토크쇼도 열었다.
이전에도 정 회장은 ‘제네시스’를 글로벌 브랜드로 소개하는 미디어 행사에 피터와 함께하며 애정을 보여왔다. 또한 피터는 해외 유명 자동차 기업의 디자이너를 영입하며 현대차 혁신에 기여해 왔다.
수소·전기차, 디자인 변화 폭 커져
이처럼 정 회장이 피터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미래차 전략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미래 자동차의 중심축은 기존의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자동차로 바뀌고 있다. 현대차는 ‘퓨처링 제네시스’ 프로젝트를 통해 오는 2030년까지 제네시스를 수소·순수 전기차로만 생산할 계획이다. 해외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제너럴모터스(GM)가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바꾸는 플랜을 수립했다.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거의 끝났다는 얘기다.
미래형 콘셉트카가 계속 연구되고 있고, 운전자 없이 운행하는 자율주행 자동차도 꾸준히 준비되고 있다. 더 먼 미래에는 1인용 이동수단이 나오면서 자동차가 로봇과 결합된 모빌리티(Mobility, 이동수단)로 진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자동차 디자인에도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우선 전기차는 엔진 없이 모터와 배터리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엔진룸이 사라지고 내부 바닥이 평평해지는 등 차체 자체가 이전과 다르다. 이에 따라 외관 뿐 아니라 차량 시트와 인테리어도 바뀌어야 한다. 달라진 만큼, 디자인의 진화가 매우 중요한 때가 된 것이다.
현대차는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인 피터를 통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피터는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자동차디자인을 배우고, 아우디와 폭스바겐에서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일했다. 이후 정 회장이 기아차 사장직을 맡고 있을 때인 2006년부터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로 함께 해왔다.
피터는 현대디자인센터 내에 프레스티지디자인실을 만드는 등 조직 개편도 지휘해왔다. 어드바이저로도 남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차 관계자는 CNB에 “자동차의 중심이 전기차로 옮겨가면서 더 다양한 디자인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며 “차량의 형태가 기존보다 많이 바뀔 수 있어 디자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어드바이저 역할하며 후배 양성할 듯
현대차는 피터가 만들어 놓은 토대 위에서 미래형 자동차의 디자인을 더욱 발전시킬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피터를 영입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회장은 새벽에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어둠의 정적 속에서 집중하고 있는 피터를 만난 적이 있으며, 가정사 같은 개인사도 공유하는 친밀한 관계라고 밝힌 바 있다.
정 회장은 피터와 호흡을 맞추었던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을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피터는 이 부사장의 자문 역할을 하며 변화에 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피터가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만큼,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CNB에 “피터 슈라이어 사장은 그동안 주로 실무 책임자들과 만나 디자인 업무를 추진해왔다”며 “앞으로는 주로 사내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