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부기자 | 2021.11.23 14:18:27
사실 작년 8월 의정부시의회에서 오범구 시의원이 의장으로 선출됐을 때, 대부분 의아했다.
당시 오범구 시의원은 초선인데다 민주당을 탈당한 3명의 무소속 의정부시의원 중 한명이었고, 게다가 노조위원장을 거쳐 한국노총 경기중북부 의장을 역임한 인물이어서 강성일 것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당시 어느 하나 그가 의장으로 선출될 상황은 아니었다.
'이제 의정부시 집행부, 큰 일 났다. 한국노총 의장 출신이 시의회 의장이 됐으니'라는 생각은 결국 그의 젠틀하고 부드러운 '반전매력'에 기우(杞憂)가 되고 말았다.
"예전에 노조는 강성이어야 조합원들도 따르고 회사도 겁을 먹고 그랬잖아요. 저도 한때는 그랬죠. 제가 눈썹이 검고 두터운데다 눈이 날까로워 강하게 목소리를 높여 말할 때면 상대는 저를 무서워 했죠."
1991년부터 회사 노조위원장이 된 후 총 9번이나 선출돼 27년간 노조 수장이었던 오범구 의장은 말했다.
"그런데 제가 91년부터 그렇게 무섭게 노조위원장을 한 지 10년 쯤 지날 무렵, 한 후배가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형은 눈을 치켜뜨고 말할 때 너무 무서워요'라고, 제가 눈을 똑바로 뜨고 목소리를 높일 때면 무서운 생각이 든다는 거였어요. 그때가 2000년 초 쯤 됐을 겁니다. 후배 말을 듣고 그때 생각을 바꿨죠."
오범구 의장은 그 당시 그렇게 생각을 바꾼 후부터 오히려 노조위원장으로서의 일이 더 잘됐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노동계에서도 정치에서도 '투쟁보다 상생'을 더 필요한 덕목으로 강조하는 사람이 됐다.
의정부시의회 의장이 되고 나서도 그의 예상 외의 부드러움은 집행부와의 투쟁이 아닌 상생으로 나타났다. 그게 더 효과도 좋았다.
"2020년 의장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집행부에 요구한 것이 '회기 때 뿐아니라 평상시에도 시의회와 자주 소통을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당시 이 요구도 조용조용 얘기했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집행부에 전달했죠. 효과는 아주 좋았습니다. 이후로 안병용 시장과 부시장이 회의를 주재하면서 항상 의회 교류에 대해 많이 주문해주셨으니까요. 의회와 집행부도 노사와 똑같더군요. 상생해야 합니다."
오범구 의장은 시의원이 되기 전 노조위원장을 하면서, 2003년부터 한국노총 경기중북부 의장을 역임했다. 또한 올해 봄까지 한국노총 경기북부장학문화재단 이사장도 맡아 일해왔다.
평생 노동계에서 노동자를 위해 일해온 그의 노동자에 대한 애정은 시의원이 되고 나서도 감출 수 없었다.
"시의원이 되고 나서 먼저 택시 노동자들이 쉼터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사들이 쉬면서 샤워도 하고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는 쉼터를 2개 정도 만들려고 했죠. 하지만 의정부에 땅이 없어서 가까스로 1개를 만들어 지금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교통기획과에서 수고를 많이 했죠. 집행부와 상생의 결과입니다. 또한 시청 앞 동부광장에 화장실을 만드는 것도 택시 노동자나 기타 여러 노동자들이 화장실 쓰는 문제가 있을 수 있어서 추진했죠. 물론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데 조만간 이것도 오픈할 겁니다."
이처럼 굵직한 이력과 경험을 겸비한 오범구 의장의 내년 지방선거 행보는 무엇일까? 의정부시장? 아니면 시의원이나 도의원으로 출마? 그의 다음 행보를 묻는 질의에 그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웃음)? 회사 생활을 저는 65세까지 했어요. 62세 사표를 냈는데, 회사 측에서 더 근무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거죠. 제가 시의원이 된 것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정치하려고 당에 가서 얘기한 것이 아니고, 당시 문희상 국회의장님께서 제게 전화하셔서 시의원 한 번 해보라고 적극 권유하셨죠. 원래는 비례대표 도의원이 돼서 경기북부 영세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쉼터 같은 센터를 여러개 만들어 볼까 했었죠. 하지만 문희상 의장님의 강한 권유로 결국 시의원을 하게 됐답니다."
그의 정치 출발 자체가 자신의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부름을 받고 정치를 했다는 것. 그래서 그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지금 무소속으로 20개월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의정부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의향이 있습니다. 필요치 않은데 가봐야 소용 없잖아요. 단 공정하고 사람 냄새나는 집단이어야지 너무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곳은 가지 못할 것 같아요"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사람 냄새나는 집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오범구 의장과의 인터뷰 마지막 말은 의외의 노동계 현안으로 끝을 맺었다. 이 또한 같은 선상에서 의미있게 느껴졌다.
"저는 노동계 전략가입니다. 저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통과될 때 광장히 반대했었어요. 당시 한국노총위원장이 2살 후배였는데, 제가 막 뭐라고 했죠. 과거엔 임시직을 해도 2년, 10년, 20년 계속 근무할 수 있었지만, 요즘엔 노동자 악법인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에 회사에서 3개월 계약하고. 11개월 계약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임시직으로도 열심히 일하면 고용안정이 됐었는데, 요즘엔 2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노동계는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사람 냄새가 납니다. 조금 잘못해도 잘한다고 해주고 말이죠."
그가 앞에서 말한 사람 냄새가 나는 집단은 노동계를 말한 것일까? 아니면 그가 속해 있는 정치계의 어떤 집단을 의미한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왜 의장이 됐는지, 초선인데다가 민주당을 탈당한 3명의 시의원 중 한명이고, 노조위원장에, 한국노총 경기중북부지회 의장을 역임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왜 의장이 됐는지 알게 됐다. 그는 지금 이 시대 정치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 '투쟁보다 상생'이라는 가치를 평생 노동운동을 하면서 체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CNB뉴스= 경기 의정부/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