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건 공간뿐 “상생은 계속된다”
삼성, 온라인서 농가 돕는 장터 열어
LG, 비대면 기부로 명절 나눔 이어가
현대차, 협력사 결제대금 앞당겨 지급
직접 가는 것이 안 되면 방법은 하나다. 비대면이다. 얼굴 마주 않곤 아무 일도 못할 줄 알았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비대면의 지평은 생각보다 깊고 넓었다. 영화 인터스텔라 대사처럼 “늘 그랬듯이, 답을 찾아”가며 얻어낸 성과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이에 CNB가 달라진 산업 패러다임을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다. 이번 편은 비대면 나눔으로 풍족한 추석을 여는 기업들 이야기다. (CNB=선명규 기자)
시계를 2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9년 가을, 삼성전자 기흥과 화성사업장에선 여기서 생산하는 반도체보다 시선을 더 끈 것이 있었다. 굴비와 젓갈 같은 지역 특산품이다. 삼성전자가 추석을 앞두고 자매결연을 맺은 마을의 매출 증대를 돕기 위해 직거래 장터를 열자 이내 시끄러워졌다. 직원들이 쏟아져 나와 득시글거렸다. 품질 좋은 우리 상품을 일터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는 아우성이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얼굴엔 빙긋한 미소가 묻어 있었다.
다시 지금.
이런 왁자지껄한 장면은 볼 수 없다. 다만 소리는 남았다. 흥정의 소음은 사라졌지만 클릭하는 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삼성전자는 작년 추석부터 직거래 장터의 무대를 온라인으로 옮겼다. 특정 장소에 운집시킬 수 없으므로 온라인에 장을 개설한 것이다.
올해는 판을 더욱 키웠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 관계사, 삼성물산 및 삼성 금융관계사들은 임직원 대상 온라인 장터 내에 농협과 함께하는 별도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는 최근 학교급식 감소, 지역축제 취소 등 악재로 매출이 급감한 농가를 돕기 위해 추진하는 ‘농가돕기 착한소비’ 캠페인의 일환으로 구축한 것이다.
여기서 파는 품목도 신중히 골랐다. 지난해에 비해 가격이 유난히 많이 떨어진 고추, 양배추, 대파, 무, 배추, 오이 등이다.
회사는 생산자인 농가와 구매자인 임직원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직원들이 농산물을 살 때 구매금액의 50%를 회사 측이 보태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임직원들은 양질의 농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 농가는 대량 판매가 가능해져 ‘윈윈 효과’를 볼 수 있다.
삼성 측은 “전체 구매 금액이 30억원에 도달할 때까지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상생을 목적으로 마련한 판매의 장은 또 있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을 비롯한 18개 전 관계사는 임직원 대상 '온라인 추석 장터'를 열고 ▲전국의 농수산품 ▲자매마을 특산품 ▲스마트공장 생산 중소기업 제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삼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원, 용인, 화성 등 주요 사업장 소재지 인근 복지시설과 무료급식소에도 5억원 상당의 농산물을 구입해 기부할 예정이다.
LG는 전방위적 기부로 비대면 시대 속 추석을 쇤다. 각 사업장 별로 지역 소외 이웃들에게 생활용품, 식료품과 같은 생필품을 전달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LG화학은 여수, 나주공장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 자활센터, 다문화 가정 지원센터 등 사회복지 시설에 명절선물과 생활용품을 전하기로 했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세대에는 집 수리도 지원한다.
LG생활건강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을 통해 수도권과 충청, 부산 등에 거주하는 돌봄이 필요한 여성과 노인, 청소년 등에게 생활용품과 화장품을 기부한다. LG이노텍은 평택, 구미 등 5개 사업장에서 장애 이웃, 홀몸 어르신 등을 대상으로 명절음식과 생활용품, 공기청정기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협력사 대금 결제는 ‘추석 전’에
많은 기업들이 본격적인 추석 나눔을 앞두고 실시한 예열 과정이 있었다. 빠른 협력사 납품 대금 처리다.
삼성의 12개 계열사(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제일기획, 에스원, 삼성웰스토리)는 협력회사들이 여유 있게 자금을 운용할 수 있도록 총 8000억원 규모의 물품 대금을 일주일 이상 앞당겨 추석 연휴 전에 지급했다.
LG전자, LG화학, LG유플러스를 비롯한 LG의 8개 계열사는 중소 협력회사들에게 약 6200억원 규모의 납품대금을 예정 지급일보다 최대 10여일 빨리 처리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현대건설·현대글로비스 등에 부품 및 원자재, 소모품 등을 납품하는 3000여개 협력사에 납품대금 총 1조2354억원을 기존보다 최대 37일 서둘러서 줬다.
한화그룹의 주요 제조/화학 및 서비스 계열사들은 약 1500여개의 협력사 대금 850억원 가량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CJ그룹은 3300여억원, 아모레퍼시픽그룹은 470억원, SK텔레콤은 총 1100억원 규모의 거래 대금 지급을 예정일 보다 이르게 처리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CNB에 “길어지는 코로나 여파로 올해 추석 역시 과거보다 기부와 봉사활동이 위축된 경향을 보인다”며 “비대면 기조로 인해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도 기업들이 저마다의 나눔 방안을 고안해 추진하는 점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