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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김부선’은 제2의 ‘아라뱃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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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정의식기자 |  2021.06.24 09:54:25

아라뱃길 선착장의 대형 크레인.(사진=정의식 기자)

“아빠. 저기 저거 봐봐. 엄청 큰 로봇 같아.”

서늘한 초여름 저녁 김포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인근의 산책로를 거닐던 중1 아들의 호들갑이다.

“로봇이라고? 흠.. 아빠가 옛날에 본 SF영화에 나온 로봇을 좀 닮은 것 같기도 하네.”

1980년도에 나온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이라는 영화 얘기다. 이 영화의 초반 무대는 눈덮인 얼음행성 ‘호스’인데, 이곳에 숨어있는 반란군을 소탕하러온 제국군의 무기 중 가장 위압감을 주는 것이 거대 4족보행형 로봇 ‘AT-AT’(All Terrain Armored Transport, 전 지형 대응 장갑 수송 차량)다.

강 건너 선창가에 위치한 거대한 크레인 2기는 멀리서 보면 그때 그 영화의 거대한 로봇이 이쪽을 바라보며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어쨌든 진짜 멋있다. 근데 저건 뭐하는 기계야?”

“일단은 크레인이야. 기중기라고도 하지. 굉장히 크고 무거운 컨테이너 같은 걸 들어올리는 기계야.”

“컨테이너 같은 건 어디에도 안보이는데?”

“……. 예전에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분이 여기서부터 인천까지 이어지는 운하를 만들면 서해에서 수많은 배들이 올라와서 짐을 실어나를 크레인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하나에 60억원이 넘는 저런 거대 크레인을 2대나 가져다 놓은 거지. 근데 운하를 만들어도 배는 거의 오지 않았고, 그래서 저 크레인은 하릴없이 저렇게 방치돼 있는 거란다.”

“아니 그럼 여기가 배가 다니는 길이었어? 배 다니는 거 한번도 본 적 없는데?”

“그러게 말이다.”

배가 다니지 않지만, 이곳의 공식 명칭은 ‘경인 아라뱃길’이다. 여객터미널도 있지만 항상 문이 닫겨 있고 드나드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홈페이지를 보면 정박된 요트를 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실제로 운영이 되는지는 미스테리다.

컨테이너가 쌓여있어야 할 선착장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수입차 업체들의 차량보관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인근에 수많은 물류회사들의 창고가 있지만, 드나드는 건 트럭들이지 화물선이 아니다.

2012년 5월 개통될 당시만 해도 약 3조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창출하고, 2만5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며, 관광명소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둥 장밋빛 예상이 넘쳐났으나, 현재 이 곳은 ‘2조원짜리 자전거길’로 통한다. 운하를 따라 이어진 자전거길을 수많은 자전거 애호가들이 즐기고 있기 때문. 이외의 긍정적 효과는 굴포천 일대 홍수 피해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 정도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총 2조6759억원이 투입되고, 이후로도 연간 200억원의 유지보수비가 소요되는 사업치고는 지나치게 초라한 성과다.

하지만 잘못된 국책사업의 추진 논리를 제공했던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연구·분석기관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등 대외 환경이 갑작스레 바뀐 때문”이라며 ‘남 탓’을 할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형 국책사업의 성사는 이처럼 신뢰도 낮은 전문기관들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에 달려있다. 잘못된 예측으로 엉뚱한 결과가 나오기 일쑤지만, 그 피해는 국민 모두가 떠안을 뿐이다.

지난 4월 국토부와 한국교통연구원(KOTI)이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수립 연구’ 관련 공청회에서 제안한 GTX-D 노선 일명 ‘김부선(김포~부천)’도 그런 기미를 보인다. 그동안 거론되던 경기도 안(김포~부천~삼성~하남)이나 인천시가 제안한 Y자 노선처럼 서울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노선이 아닌, 단순히 김포시 외곽에서 부천종합운동장역으로 향하는 짧은 노선이다. 이런 노선을 제안한 이유로는 경기도나 인천시가 제안한 GTX-D 노선들이 B/C값(비용 대비 편익 값)이 떨어진다는 점을 들었다.

김포 주민들과 지자체, 정치인들은 너나없이 이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말도 안된다. 경기도 용역 결과 B/C값이 1.0을 넘어 경제성이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반발하고 몇 달째 반대 시민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나 정부의 계획이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아보인다. 23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김포~부천 구간이 다른 노선과 연계될 수 있는 방안을 포함해 관련 내용을 국토교통부와 협의하겠다”며 “아마 다음 달(7월) 정도면 관련 내용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김부선’을 강행하거나, GTX-B의 지선으로 연계하는 ‘김용선(김포~용산)’ 등의 계획을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김포 시민들이 요구해온 ‘김포-서울 직결’ ‘김하선(김포~하남)’과는 거리가 멀다.

김포에서 부천으로 출퇴근하는 수요가 거의 없음에도 약 2조1000억원을 들여 짓겠다는 ‘김부선’. 이 노선이 제2의 ‘아라뱃길’로 판명날 때 국토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이 내놓을 변명꺼리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CNB=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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