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 대세 되며 이웃 간 충돌
층간소음 잡는 기술개발 ‘골몰’
전담 연구조직까지 만든 기업도
분양 승패 가르는 변수로 부상
이웃간의 다툼을 넘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까지 자리잡은 ‘층간소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부가 강화된 층간소음 규제 도입을 예고하자, 주요 건설사들이 관련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DL이앤씨(구 대림산업), 대우건설, 롯데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은 저마다 층간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 공개하거나 연구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있다. (CNB=정의식 기자)
#1. 신축 아파트로 이사한 A씨. 이사를 마친 다음날 갑자기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랫집에서 층간소음이 심각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는 것. 아기를 키우는 집이라 소음에 민감한 것 같으니 신경 써 달라는 부탁이었다. A씨는 초등학생 아들에게 “절대로 뛰지 말고, 살살 걸으라”고 당부했지만, 다시 전화가 걸려올까봐 좌불안석이다.
#2. 아파트 윗집 아이들의 지나친 소음 유발에 짜증이 난 B씨. 수차례 윗집에 가서 항의했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윗집 주민이 놀라운 제안을 했다. 한달에 20만원씩 상품권을 줄테니 층간소음을 참아달라는 것. B씨는 두말않고 승낙했고, 이후 희한하게도 소음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그동안 시끄러웠던 윗집 소음이 더 이상 짜증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아파트 주거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우리나라에서 층간소음은 모든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이웃간 소소한 다툼은 다반사고, 칼부림 사건까지 종종 뉴스에 난다. 게다가 지난해 코로나19로 ‘집콕생활’이 늘어나자 층간소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한층 더 늘어났다.
한국환경공단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코로나19 영향이 심각했던 2020년 한 해 동안 집계된 층간소음 관련 민원은 4만2250건에 달한다. 2019년보다 무려 61%나 늘어난 수치다.
국토부, 겉핥기 규제에서 실질 규제로
정부도 층간소음 문제 해결을 위해 강력한 규제 조치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 2005년부터 실험실에서 바닥충격음 차단성능을 평가해 인정된 바닥구조로만 사용하도록 규제하는 ‘사전 인정제도’를 운영해 왔지만, 이 제도만으로는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
이에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는 2022년 7월부터 아파트가 건설된 뒤 사용 허가를 받기 전에 실제와 비슷한 테스트를 통해 층간소음 차단 성능을 확인하는 ‘층간소음 사후 확인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바빠진 건 건설사들이다. 현대건설, DL이앤씨, 대우건설 등은 저마다 개발한 층간소음 방지기술을 공개했고, 삼성물산, 롯데건설 등은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한 연구조직을 신설했다.
바닥 두께 늘리고, 겹겹이 쌓고…
건설사들의 층간소음 저감기술은 대부분 바닥의 구조를 다층화하거나 소재를 다변화함으로써 완충구조를 강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DL이앤씨는 3중으로 층간소음을 잡아낼 수 있는 바닥구조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성인과 아이들의 발걸음이 바닥에 미치는 충격 패턴을 분석해 이 공법을 설계했으며, 이를 활용해 중량 충격음을 기존에 60mm 차음재를 사용한 완충구조보다 저감시키는데 성공했다는 설명이다.
아파트 바닥면의 기본 뼈대인 콘크리트 슬래브 위에 3개의 층을 겹겹이 쌓아 층간소음을 걸러주는 필터형 방식으로, 기존 방식보다 몰탈층을 2겹으로 배치하고 2배 두껍게 시공한 것이 특징이다.
대우건설도 ‘스마트 3중 바닥구조’로 층간소음을 잡겠다는 계획이다. 스마트 3중 바닥구조는 △1st Layer-내력강화 콘크리트 △2nd Layer-고탄성 완충재 △3rd Layer–강화 모르타르로 구성되며, 기존 아파트 바닥구조 보다 재료의 두께가 두꺼워지고 성능이 강화됐으며, 소음 발생을 세대 내 월패드를 통해 알려주는 기술(특허 10-2185163호)도 추가됐다.
층간소음의 주요 원인인 중량충격음을 저감시키기 위해 콘크리트 슬래브의 강도를 높이고 차음재와 모르타르 두께를 증가시킨 것이 특징으로, 자체 개발한 건식 패드를 설치해 모르타르 두께는 기존 40mm에서 70mm로(강화 모르타르), 차음재 두께는 기존 30mm에서 40mm(고탄성 완충재)로 증가시켰으며, 콘크리트 슬래브에 철근을 추가 시공(내력 강화 콘크리트)해 바닥의 강도 또한 향상시켰다.
현대건설은 ‘H 사일런트 홈’으로 명명한 층간소음 저감기술을 올해 분양하는 단지부터 적용한다. 이 기술은 총 5단계에 걸친 15가지의 특화기술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5단계는 ▲1단계 튼튼한 골조 ▲2단계 고성능 특화 바닥구조 ▲3단계 최첨단 소음 예측기술 ▲4단계 완벽한 시공관리와 품질점검 ▲5단계 층간소음 알림시스템 등이다.
5단계에 적용되는 15가지 기술은 현대건설이 특허권을 보유중인 △슬래브 강성보강 △레이져스캔을 통한 골조 시공 품질관리 △고성능완충재(층간소음 저감재) 3건을 포함하여 △골조 진동저항 성능 평가/검증 △슬래브 두께 상향 △고강도 기포콘크리트 적용 △고중량/고강도 온돌층 △고탄성/고감쇠 마감재 △층간소음 성능예측 기술 △혼합식 구조 성능저하 방지기술 △정밀시공관리 △설비배관 최적 배치 △목업세대 성능 사전평가 △층간소음 저감재 자재검수 △층간소음 알람 시스템 등이다.
“근본 원인 찾아라”…‘신소재’에 방점
삼성물산과 롯데건설은 아예 층간소음 전담 연구조직을 만들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지난해 12월 ‘층간소음연구소’를 신설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층간소음연구소는 ENG센터 산하에 석박사급 인력 10여명으로 구성되며 연구소장은 부사장급인 ENG센터장이 담당한다.
층간소음의 원인과 현황 분석에서부터 재료와 구조, 신공법에 이르기까지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한 기술개발과 솔루션 확보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확보된 기술은 지속적인 실험과 검증을 통해 공동주택 건설현장에 단계적으로 적용해 나갈 방침이다.
롯데건설도 지난 2월 층간소음 제로화를 위해 기술연구원 산하에 소음 진동 전문 연구 부서인 소음 진동 솔루션팀을 신설했다고 전했다. 소음 진동 솔루션팀은 최고급 호텔과 초고층 건물을 건설하면서 노하우를 습득한 소음/진동, 구조, 콘크리트, 설계, 디자인 등 관련 분야 석ㆍ박사급 전문인력 13명으로 구성됐다.
롯데건설은 지난 2015년부터 롯데케미칼의 스티로폼 단열재와 고무 재질의 완충재 소재를 활용한 60mm 두께의 최고등급 층간소음 완충재를 개발해 대구 남산 2-2현장 등 여러 현장에 적용해 층간소음을 개선했지만, 올해 3월부터는 층간소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중량 충격음을 해결할 새로운 완충재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 바닥, 천장, 벽 등 소음이 발생하는 모든 경로를 찾아내서 아파트 구조 형식을 새롭게 조합해 층간소음을 획기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신소재복합구조를 개발한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신소재복합구조에는 그동안 기존의 건설 분야에서 활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완충 소재도 개발 및 적용해 층간소음을 줄이겠다는 것.
건설업계 관계자는 “층간소음을 잡는 가장 쉬운 방법은 현재 아파트 대다수가 채택하고 있는 벽식 구조가 아닌 기둥식 구조를 채택하는 것이지만, 비용이 비싸 채택률이 낮은 상황”이라면서 “새로 개발되는 층간소음 방지기술들 대부분이 바닥구조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 역시 분양원가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CNB=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