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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다시, 노나메기 세상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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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21.02.25 10:14:02

(CNB=도기천 편집국장)

 

“도 국장, 오랜만에 오늘 저녁 번개 어때?”

모임?

웃기 싫어도 웃어야 하고 피곤해도 앉아 있어야 하고 피하고 싶은 질문 답해야 하고 먹기싫은 술 억지로 먹는 일?

“저 오늘은 가족 회식이 있어서요”

1년전 내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형님~ 늦더라도 들릴께요. 저 없이 다먹지 마십슈” “오~ 안그래도 어찌 지내나 싶었는데 당장 날잡자”

이런 말을 했던게 언제였던가.

사람과의 접촉이 어색해져 간다.

편안함이 일상이 되어간다.

샤워하고 맥주 한캔 마시며 넷플릭스 보기. 드라마 정주행하는 맛이 이렇게 편할줄이야!

안부는 전화나 카톡, 페북으로. 굳이 안 봐도 본 것 같다.

추운날 길거리에서 택시 잡느라 떨 일도 없어졌고, 만원버스·지하철 탈일도 줄었다. 언쟁하다 얼굴 붉힐 일도 없고, 만취로 다음날 머리 깨질 일도 없다. 나가서 돈쓸 일 줄어 주머니 사정이 좋아진 건 덤.

그런데, 그런데도 어디가 아프다.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쓰리다.

체육대회 나눔장터 단체회식 마라톤 졸업식 입학식 꽃박람회 워터파크 산악회 집회현장취재…

사라진 일상들이 꿈에 등장한 날은 더 그렇다.

꿈 속에선 왁자지끌 했고 웃음이 넘쳤고 목소리가 컸다. 마스크는 없었다.

결국 사람이었다. 잃었던게 사람이고, 잊었던게 사람이었다.

 


가장 놀라운 백신은 ‘우리’

사람이 사라진 자리는 숫자가 대신하고 있다.

누적확진자 8만8516명, 사망자 1581명. 그들이 누군가의 부모이고 누군가의 형제고 이웃이라는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양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한파로 소득 하위 20%에 속하는 이들의 근로소득은 크게 줄었지만 상위 20%의 소득은 오히려 늘었다. 생산과 소비가 위축되면서 부동산·주식으로 자금이 쏠렸고,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노나메기.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모두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한평생 약자의 편에서 싸워온 고(故) 백기완 선생(지난 15일 작고)이 남긴 유지다.

여전히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고, 노나메기 세상은 언제올지 모른다.

 

지난 19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고 백기완 선생 영결식. '노나메기 세상'이 적힌 휘장 문구가 절실히 와닿는다. (사진=도기천 기자)

그래도 사람은 희망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 엄청나게 늘어난 물동량을 소화하기 위해 끼니를 거르고 뛰어다니는 택배종사자들,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수많은 자영업자들, 졸업식·입학식도 갖지 못한 청소년들, 휴가·외출을 금지당한 군장병들, 주말을 반납한 방역 공무원들… ‘사람 공동체’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친구·지인·친척에게 전화부터 돌리기. 영상으로 마주하기. 뜨듯한 말 한마디로 위로 주고받기.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없는지 돌아보기.

당장 이것부터 시작하자.

코로나 상처를 치유하고,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유일한 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오늘 퇴근 후에는 꼭 전화 30통 돌리고 자야겠다.”

(CNB=도기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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