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도기천 편집국장)
“힘든 세상. 재석이형, 아파트값 좀 잡아줘요.”
지난 19일 ‘2020 SBS 연예대상’에서 수상소감을 밝히던 배우 김광규가 갑자기 유재석에게 부탁한 말이다. 김광규의 이 뼈때리는 한마디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팩폭’에 가깝다. 오죽하면 ‘대통령님’을 놔두고 ‘유느님(유재석+하느님)’을 불렀을까.
‘어용지식인’을 자처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옹호에 팔을 걷어부친 그조차 최근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서 “강력하고도 혁신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부동산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번 넘는 정부 부동산 대책이 별 효과 없었음을 우회적으로 꼬집은 셈이다. 새해 소망을 묻자 “더이상 ‘땅 사고 팔아 부자돼야지’ 하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라고 강조했다.
#1. 집주인과 세입자로 ‘분단된 조국’
2020년은 부동산이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해로 기록된다.
20여년전 고 노무현 대통령은 동서로 갈라진 지역감정을 극복하고자 ‘국민통합’을 핵심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부터는 진보-보수로 갈라져 ‘진영논리’라는 말이 번졌다. 지금은 영호남 갈등보다, 이념적 좌우보다 더 무서운 ‘집주인과 세입자’로 대한민국이 갈라졌다.
“전세 4억인데 주인이 들어온다고 해서 대출받아 7억으로 올렸줬어요. 임대차3법 이런거 아무 소용없어요.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40대 직장인)
“16억짜리 급매물 있어요. 한강뷰 나오고 공덕역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예요”(서울 공덕동 어느 공인중개업소)
6년전 4억원대에 분양했던 서울 마포구의 역세권 아파트가 지금은 16억원이란다. 반대로 2년전 4억원에 전세계약했던 임차인은 최근 전세금을 3억이나 더 올려줬다. (최근 개정된 임대차3법에는 전세금 인상률 상한선이 5%지만, 시세대로 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련기사: [단독] 구멍 숭숭 임대차법…‘5%룰’ 넘는 전세계약 횡횡 “왜” )
이같은 기형적인 부동산 시장(특히 아파트 시장)은 극심한 자산양극화를 가져왔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집주인은 부동산 자산이 크게 늘었다. 반면 임차인의 자산은 갈수록 줄고 있다.
이런 현상을 한마디로 요약한 김광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육중완(가수)은 집을 샀고 나는 세입자로 사는데, 시간이 지나니 육중완은 부자가 됐고, 나는 월세로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
#2. 양극화가 만든 ‘두 개의 세상’
자산양극화는 돈 가치가 각기 다른 ‘두 개의 세상’을 만들었다.
1주택자는 집을 팔아도 그만큼 주변 집값이 올라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사 가지 않는 한 이득을 챙기기 어렵지만, 다주택자는 얘기가 다르다. 한 채만 처분해도 수억원의 매매 차익이 수중에 떨어진다.
이들이 부호 대열에 합류하면서 샤넬·루이비통·에르메스 등 명품샵에는 코로나19가 무색할 정도로 인파가 넘치고, 유명 골프장 부킹 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이 나온다. 인당 3만원(김영란법 식사비 상한 기준)으로는 먹을만한 데가 없다는 소리도 들린다. 얼핏보면 돈 가치가 많이 추락한 것 같다.
하지만 다른 한쪽 세상에서는 여전히 단돈 몇만원이 귀한 몸이다.
삽겹살 1인분이 만원도 되지 않는 식당이 아직 수두룩하며, 코로나로 손님이 뜸하자 가격을 내린 곳도 있다. 마치 외환위기 시절의 ‘IMF메뉴’가 다시 나온듯하다.
임금은 거의 동결 수준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8720원으로 고작 1.5% 오른다. 역대 최저 인상률이다. 여전히 서민들에게는 김영란법 상한선인 3만원짜리 밥 한끼가 ‘접대’이며, 가깝지 않은 지인의 결혼식 부조금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5만원이다.
#3. 그시절 김 대리는 어디갔나
이렇게 만들어진 ‘두 개의 세상’에서 생기는 부작용은 엄청나다. “너는 남들 집 살 때 뭐했냐”를 시작으로 부부싸움이 잦아지고 심지어 이혼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사장이 연봉 3천만원 김 대리의 급여를 월 10만원(연봉 4% 인상) 올려줘도 김 대리는 착잡하다. “누구는 가만히 앉아서 아파트로 몇억씩 버는데 나는 고작 10만원 오른게 전부네ㅠ”
이같은 상대적 박탈감은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월급 모아 전세금 올려주기 급급한 직장인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처럼 부동산 문제는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 그래서 지금은 극약처방 수준의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다주택자의 두 번째 주택부터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는데도 집이 모자란다는 얘기는 한 사람이 여러주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 이들이 소유한 주택이 시장에 쏟아지게 만들어야 한다.
유럽 국가들처럼 정부가 다주택자의 집을 꾸준히 사들여 공공임대 비율을 늘리는 정책도 절실하다. 지금처럼 택지개발에만 의존하는 공급정책은 환경파괴, 로또분양 등 부작용이 더 크다.
검찰개혁도 경제민주화도 남북평화도 중하지만 집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이다. 당장 맘놓고 살집 없는 이들이 나라걱정하게 생겼나?
글쓴이는 집이 있냐고?
“분양전환되는 공공임대아파트 삽니다. 전월세로 몇 년 거주한 뒤 주변시세보다 조금 낮은 가격에 분양 받지요. 일반 전세입자보단 낫고 집주인보다는 못해 우리같은 사람을 ‘중간계’라 부릅디다.”
(CNB=도기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