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국회의원 "훈민정음 글씨로 ‘국가적 상징성’ 복원할 것" 주장
현재의 광화문 현판 글씨를 쓴 임태영이 시대적 대표성이 없는 공사 실무 책임자이자 경신박해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광화문 현판으로 걸리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 광주동구남구을)은 12일 문화재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광화문 현판 글씨를 쓴 사람은 당시 경복궁 중건 책임감독관(영건도감제조)을 지냈던 무관 출신의 임태영으로 그는 1859년과 1860년 천주교도 탄압의 대표적 사건인 경신박해를 주도한 인물이라고 공개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임태영은 좌포도대장을 지낼 당시 30여 명의 천주교도를 체포하면서 방화와 약탈을 자행했는데 그 행위가 가혹한 점을 들어 파면됐다. 그의 부친인 임성고 역시 1839년에 <기해박해>를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천주교에 대한 오랜 반감으로 인해 임태영은 조정의 허락도 받지 않고 천주교도에 대한 수많은 옥사를 일으켰다.
임태영이 쓴 ‘門化光’ 글씨가 본래의 광화문에 자리에 걸려 있었던 기간은 고작 60년에 불과하다. 광화문은 본래의 위치에서 일제에 의해 1927년, 건춘문 북서쪽으로 이전되었고, 6·25 전쟁 때 폭격으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1968년에 다시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2006년 이를 대대적으로 복원하면서 당시 문화재청이 1868년 경복궁 중건 시기를 기준으로 복원하면서 현재의 임태영이 쓴 글씨가 다시 걸리게 된 것이다. 즉 광화문 625년의 역사 중 당초의 장소에서 임태영 글씨를 걸고 있었던 기간은 1868년부터 1927년까지의 60년 동안에 불과한데 복원의 기준이 되고 만 것이다.
복원 당시에도 한글학자들과 수많은 국민이 한글로 광화문 현판을 제작할 것을 주문했으나 문화재청은 이를 ‘소모적 논쟁’의 재현으로 몰아세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병훈 의원은 “국가적 상징을 다시 세우자는 것이 소모적 논쟁인가?”라고 반문하면서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사람들이 다 인정하고 있고, 우리가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글의 대표성과 역사성을 문화재청이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광화문은 단순한 어느 한 지점의 역사에 대한 복원이 아니라 조선 개국 후 625년 동안 국가의 상징으로 자리해왔다는 점에서 ‘국가적 상징성’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한 복원 기준이다”면서 문화재청의 복원 기준 설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병훈 의원은 최근 시민단체들에 의해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한글의 원형 글자체를 집자해 시범 제작한 ‘광화문’ 현판이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보고 문화재청은 이 문제를 전향적 차원에서 검토해 줄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