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문학의 명작을 공간과 관련지어 살펴보는 책이다. ‘혈의 누’, ‘무정’, ‘날개’처럼 익숙한 소설을 비롯해 ‘광야’나 ‘청포도’처럼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도 다루며 작품이 그리는 배경, 혹은 작품을 잉태한 공간에 대해 소개한다. 최대한 저자가 직접 답사해 찍은 사진으로 책을 구성했다. 문학은 텍스트로 존재하지만, 문학의 배경인 공간은 발로 디딜 수 있는 곳에 실재한다. 공간 속에서 문학은 물성을 갖고 독자와 접촉한다.
특히 한국현대문학의 명작 39편을 선별했으며, 이런 선별 과정에서도 개화기부터 21세기에 이르는 한국현대문학의 작품들이 각 시기별로 균형감 있게 배열될 수 있도록 신경을 기울였다. 부담 없이 문학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원고지 25장 정도의 분량으로 작품이나 작가의 고갱이만을 간명하게 논의한다.
이광수의 북촌, 이효석의 봉평, 이육사의 안동 원촌, 한흑구가 사랑한 포항, 김동리와 박목월의 경주, 김사량의 도쿄와 가마쿠라, 서정주의 질마재, 조지훈의 주실마을, 오정희의 차이나타운. 우리나라와 남의 나라 곳곳을 돌아보며 한국문학이 깃든 장소를 살펴 본 저자는 마지막으로 김동인을 낳고 기른, 그리하여 ‘감자’를 낳은 평양만은 가볼 수 없었음을 아쉬워한다. 가본 후에 쓴다는 이 책의 원칙에 따른다면, ‘감자’론(論)은 언젠가 보완돼야 할 미완의 글이라는 고백이다.
이경재 지음 / 2만 4000원 / 소명출판 펴냄 / 4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