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급속한 창궐로 대한민국이 유례없는 비상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이에 주요 기업들이 선택한 대응전략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의 대표적 방안인 ‘재택근무’와 ‘교차출근’이다.
반드시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가급적 집에서 근무하는 방식으로 사무실에서 있을 수 있는 개인간 접촉을 최소화하자는 것. 이외에 출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해 러시아워를 피한다거나, 불필요한 오프라인 회의, 이벤트를 최대한 줄이는 등 다양한 해법이 적용되고 있다.
재택근무는 LG, SK, KT, 한화 등 10대 그룹사를 비롯해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 등 IT 기업을 중심으로 중견기업,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직장인 앱 ‘블라인드’가 지난 2월 25일부터 27일까지 국내기업 재직자 24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재직자의 약 29%가 이미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거나 적극적으로 고려 중이다. 기업 3곳 중 최소 1곳은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갑작스럽게 재택근무가 대중화되면서 예상치못한 문제들이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화상회의’다. 아직 화상회의 프로그램의 사용에 익숙치 못한 직원들이 많다보니 진행이 순조롭지 않은 경우가 많다.
최근 통화한 제약업계 근무자 A씨는 “아무래도 나이 든 임원들이 컴퓨터에 익숙치 않아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카메라가 켜지지 않거나, 홀로 켜놓고 참여하는 사례, 마이크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거나, 볼륨 조절이 되지 않는 문제 등이 노출됐다. 회사에서야 이런 문제가 발생해도 IT기술지원 담당자나 다른 직원이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가정에서는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하다보니 불필요한 시간낭비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금융기업에 근무하는 B씨는 “집에서 근무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며 또 다른 상황을 설명했다. 회사의 경우 다중 모니터와 고성능 PC 등 업무에 최적화된 작업환경이 잘 세팅돼 있지만, 가정에서 쓰는 PC는 노트북이어서 모니터가 지나치게 작은 데다가 하드웨어 사양도 열악하며, 타 가족이 설치한 프로그램 등도 많아 원활한 업무 수행이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이 가정 내에 또 있을 때도 골치다. 어학 사이트를 운영하는 C씨는 “남편도 출근하지 않고, 아이도 개학이 미뤄지다 보니 세 식구 모두 일주일째 집안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라며 “어떻게든 업무를 수행하고는 있지만, 주부로서 다른 가족을 보살피는 일도 신경쓰다 보니 업무에 자꾸 공백이 생긴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코로나19발 재택근무 바람이 근무환경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지만, 기업 종사자들의 적응 능력은 한계가 있어 당분간은 이런저런 기술적, 사회적 고충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문제는 근시일내에 근무환경이 과거로 ‘원상복귀’할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는 것. 코로나19가 잠잠해질 시기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코로나19를 기준으로 근무환경이 이전과 이후로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해외에서 빠르게 원격근무, 재택근무, 다거점근무가 확산되고 있을 때도 국내에서는 보수적 기업문화 때문에 이런 업무문화 확산이 더딘 측면이 있었지만, 이번 코로나19의 전례없는 확산은 대면접촉 위주의 한국적 업무문화에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발전된 통신 인프라가 재택근무, 다거점근무를 수행하기 충분한 환경인 것을 감안하면, 남은 과제는 기업 종사자들이 변화된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CNB=정의식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