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은 학습이다. 배워야 살 수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 스스로 목숨을 건진 사람 대부분은 사전에 안전 관련 교육을 받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에 CNB는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사고로부터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 <안전이 미래다>를 연재하고 있다. 3편에서는 1편에 이어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건설 현장과 생활 속 안전 유지법을 다룬다. 지난달 31일,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대우건설 기술교육원 내 ‘안전체험공간’에서 올해 대우건설 신입사원 130명과 실전 중심의 과정을 함께 밟았다. (CNB=선명규 기자)
[관련기사]
① ‘위험’과 ‘안전’의 공생법, ‘현대건설 안전문화체험관’
② 울산 현지 르포…‘현대자동차 키즈오토파크 울산’
지난해 리뉴얼한 체험공간에서
바람 맞고 기어가며 안전 배워
규칙과 신호 준수가 ‘제1 원칙’
위험은 학습으로 극복할수 있어
#1. 현혹되지 말 것
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이다. 달지, 매울지 안 먹어봐도 안다. 앞서 쓴맛(①편 참조)을 본 ‘화재대피체험’ 앞에서 홀로 머뭇거렸다. 어떤 시련이 닥쳐올지 알고 있었다. 한줄기 빛도 없고 매캐한 연기로 자욱한 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난 누군지 알겠는데 여긴 어딘지 모르는 상황이 올 것이다. 패닉을 유발하는 그 안에서 손의 감각에 의지해 사방을 더듬어가며 전진해야한다. 불난 건물에서 눈의 역할은 미미하다. 손맛을 느끼며 길을 찾아야 하는데 손은 더듬이가 아니라서 쉽지 않다. 중도 포기를 겪어본 자의 속사정을 알기나 할까? 주변의 눈들은 초롱초롱하기만 했다.
어쨌든 뛰어들었다. “세 명씩 한 조를 이뤄 입장하세요”라는 지시에 빼도 박도 못하고 셋 중 하나가 됐다. “입구로 들어가 출구로 나오면 됩니다.” 설명을 듣자마자 동행인들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먼저 가상으로 구현한 불길에 소화기를 뿌려 최초 진화를 시도한 뒤 여의치 않음을 감지, 탈출을 감행했다. 과연 어둡고 연기가 가득해 시야확보가 어려웠다. 안개 속으로 성큼성큼 사라져가는 이들의 꽁무니를 힘겹게 좇았다.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흔들 듯 아련하게 손짓하며 뒤를 따랐다.
쓴맛이 약이었다. 침착해야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이전 체험에서 배웠다. 갑자기 푹 꺼지는 바닥을 밟고 방정맞게 발을 구르다가, 허리 높이에 놓인 기둥을 피해 기다가 보니, 그래도 어찌어찌 완주가 눈앞이었다. 경험의 힘이 전보다 멀리 몸을 이끌었다.
하지만 싱겁게 끝날 리 없었다. 진짜 고난은 마지막에 있었다. 끝에 다다르자 어렴풋한 불빛이 두 개 보였다. 붉은 버튼은 위로, 파란 버튼은 아래로. ‘오호라, 건너도 좋다는 신호렷다.’ 파란색을 누르자 강풍이 냅다 안면을 강타했다. 화재 시 탑승하면 질식할 우려가 있는 승강기를 함정으로 마련해놓은 것이었다. 빨리 내려가겠다고 타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면전에 심어졌다.
정신이 채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금세 또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출구는 둘 중 하나. 이들 문 중 진짜는 무엇? 한쪽 문고리를 잡자 따스함이 전해졌다. ‘오호라, 구원의 손길이렷다.’ 희망을 부여잡듯 꽉 쥐었으나 열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유혹의 불길이 건너편에서 붙들고 있었다. “문고리에 열기가 있다는 건 이미 반대편은 화염에 휩싸여 있다는 증거입니다. 열면 안 돼요.”
화재가 발생하면 평소 익숙한 돌다리도 의심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 다급하다고 앞뒤 안 재고 직진만 해선 안 된다. 차분히 두드려가며 탈출해야 한다. 어디에 위험요소가 있을지 모른다. ‘화재대피체험’은 “현혹되지 말 것”으로 요약된다.
#2. 장비를 단단히 고정할 것
(※개별실습이 주인 다음 과정부터는 참관 뒤, 또는 사전에 별도로 체험을 했다. 신입사원들의 교육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온몸에 의심을 품고 ‘건설안전’ 공간에 들어섰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귓등으로 튕겨낼 거라 자신했다. “사다리에 올라가보세요.” 분명 함정이 있을 것이란 걸 알기에 살짝 한 발만 올려 간을 봤다. 견고하고 별문제 없어 보였다. 이내 체중을 실어 과감히 움직이자 무게중심에 따라 뒤로 확 젖혀졌다. 그래도 주의를 기울인 탓에,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나가떨어지진 않았다. 두발로 무사히 내려와서야 비로소 벽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사다리는 통로입니다. 사다리 위에서 작업하시면 안 됩니다.’ 건설현장에서는 도구를 쓰임에 한해서만 이용해야 한다.
한번의 성공으로 상승한 자신감이 경계심을 늦췄다. 바로 옆 말비계(정상에 디딤판이 있는 사다리)를 탑승하기 전 지침을 들었다. “꽉 잡으세요.”
안전조끼를 입고 틀에 고리를 걸었다. 그것만 믿고 ‘꽉’을 배제한 채 잡기만 했다. 관계자가 버튼을 누르자 말비계가 앞으로 덜컹 쏠렸다. 느슨한 설치로 인한 붕괴를 가정한 것이다. 예상보다 강한 힘에 일순간 팔다리가 각자도생하며 해류에 휩쓸린 말미잘처럼 흐느적거렸다. 실전이었다면 그대로 추락해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 ‘건설안전’은 장비를 견고히 고정했을 때 유지될 수 있다. 그래야 작업자도 보호받을 수 있다. 지침대로 행동하는 것도 필수다.
#3. 규칙을 준수할 것
1층에서 출발한 승강기가 1초만에 45층에 도달했다. 고공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여기서 행할 작업은 어긋나 있는 난간을 바로잡는 일. 조심스럽게 다가가 구조물을 어루만지자 굉음과 함께 난간이 무너지며 그대로 떨어졌다. 짧은 시간에 인생사가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실제였다면 이 글은 세상의 빛을 못 봤을 터. ‘가상현실안전체험’ 챕터1의 장르는 어쨌거나 비극이었다.
삶의 기회는 다시 주어졌다. 똑같이 45층. 앞에 놓인 안전장비를 경배하듯 경건히 착용하고 작업에 돌입했다. 재차 난간이 무너지며 고꾸라졌지만 안전장치 덕분에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규칙 준수의 중요성이다.
마지막 챕터는 강렬한 엔딩이 장식했다. 바뀐 배경은 공사장 한복판. 중장비가 오가는 분주한 분위기에서 무심코 앞만 보고 걸었다. 멀리 정면에 선 이가 손들어 경고를 보냈다. “자재 인양 작업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무시하고 향했더니 육중한 자재들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또 한 번 유명을 달리했다. 건설현장에서는 늘 신호에 눈과 귀를 열고 따라야 한다.
‘생활안전’, ‘건설안전’, ‘가상현실안전’으로 이어진 이날 실습은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130+1명이 이론과 체험이 병행된 교육을 마치고 나오는데 복도에서 문뜩 이런 말이 들렸다. “실제 현장은 위험투성인 거 같아. 한시도 마음을 놔선 안 되겠어…” 문패 옆에 작게 적힌 ‘안전느낌 공간’이라는 문구가 유독 선명해보였다.
(CNB=선명규 기자)
대우건설 안전체험공간은? 지난해 4월 시설을 확충해 재개관한 대우건설 안전체험공간은 총 210㎡ 규모다. 생활·건설·VR로 프로그램을 세분화해 교육효과를 높인 것이 특징이다. 응급구조 장비를 다루는 법, 완강기 사용법, 건설현장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사고유형에 대처하는 법 등 22종의 체험이 가능하다. 참가자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은 가상현실로 대체해 구현했다. 대우건설 측은 “안전체험공간이 전 직원의 안전의식을 강화하고 비상대응 기초역량을 확보하는 등 실질적인 사고예방교육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