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부 안 하니?”
불혹의 아들에게 적절치 못한 질문을 던진 이는 나의 아버지다. 한동안, 꽤 오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공부라….’ 기억을 더듬어봤다. 멀리 가면 밀레니엄 시대가 오기 전이다. 세기말에 대입 수능을 준비할 때다. 대학 졸업하곤 돈벌이에 목적을 둔, 금세 휘발하는 지식을 그때그때 습득한 게 전부였다. 최근 머릿속에 뭔가 집어넣은 게 있나 했더니, 떠오르는 건 걸그룹 노래 가사 뿐이다. 이마저도 음이 없으면 문장으로 만들 수 없다. 귀로 들어온 노래가 뇌를 훑기만 하고 나갔나 보다. 공부란 대체 무엇인가, 근원적 질문의 덩어리는 커져만 갔다. 근데 이게 이렇게까지 고민할 일인가.
해 뜨면 나가고 기약 없이 들어와 잠드는 일상이 한심해서였을까, 주말이면 방바닥에 눌어붙어 꼼짝 않는 진상이 징글맞아서였을까. 공부 안 한다고 반항했다가 ‘사랑의 매’라도 들면 어쩌지? 사랑은 낯 뜨겁고, 매는 이제 뼈가 시려 못 받아들이겠다. 그냥 스쳐가는 말일 지도 모르는데 고민이 꼬리를 물다 못해 똬리를 튼다. 무언가를 작심하고 배운 게 언제였더라.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의 질문을 귓등으로 튕길 수 없어 내안의 파파고를 돌려봤다. 불현듯 하나 떠올랐다. 얼마 전 생존을 배웠었다.
사실 이런 취재를 목숨 걸고 할 줄은 몰랐다. CNB가 연재 중인 <안전이 미래다>를 기획하면서 하나만 확실히 하자고 생각했다. 머리로 말고 몸으로 익힌 안전을 알리자.
근데 배워도 너무 배웠더랬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웠다. 처음 찾은 ‘현대건설 안전문화체험관’은 고난도의 학교였다. 매달리고 떨어지는 것도 모자라 얻어맞기까지 했다. 고난의 시작이었다. 당시엔 취재고 기사고 뭐고 괴로웠다. 건설 현장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사고인 ‘추락’을 대비한다는 미명 아래 3미터 높이 철판에서 떨어져도 봤다. 아니, 떨어트렸다. 갑작스런 추락에 땀샘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두피에서 터진 땀이 척추의 계곡을 타고 내려와 바지춤을 적셨다. 팔을 X자로 해야 다치지 않는다는 사전 경고에 울버린처럼 끝끝내 양팔은 가슴에 묻어두었다. 지금도 떨어지는 꿈을 꾸면 잠결이라도 미라처럼 팔을 모은다.
화재 현장을 재현한 ‘방’에선 엉금엉금 기어 후진하는 추태를 부리기도 했다. 문 열고 들어가 반대편 문으로 나오면 되는 단순한 방식인데 장벽이 있다. 자욱한 연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전진은커녕 들어가자마자 자리 깔고 앉아버렸다. 공포심이 전신의 회로를 마비시켰다. 손의 감각에 의지해 벽을 헤집고 나아가야 하는데 시작하자마자 엉덩이로 출입문을 찾고 있었다. “불 좀 켜주세요”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다행히 입의 회로도 멈춰버려 발설하지 못했다. 그날 밤, 추태를 곱씹으며 불 꺼진 방에서 손바닥을 허우적대고 있는데 어머니가 “쟤 왜 저러나”하는 표정으로 방문을 닫았다. 그래도 특훈은 계속됐다. 실제 상황이 발생하면,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키즈오토파크 울산’에서 배운 건 운전자와 보행자는 서로를 늘 주시해야 한다는 것. 어른인지라 ‘어른이’가 되어 유치원생들과 체험을 했다. 국민학교 시절 배운 상식이 일차원적이란 걸 안 것도 이때였다. 횡단보도에서 손들고 건너면 운전자가 알아서 멈출 거란 믿음이 확고했다. 하지만 여기서 가르치는 것은 방어보행이었다. 좌우를 살피고 차 소리가 들리는 지 확인하면서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운전자를 맹신하기보다는 어린이 스스로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다. 단순 계산이지만 서로가 경계심을 높일 때 안전지수도 두 배로 올라간다.
“요즘 공부 안하니?”의 답을 이제야 찾은 것 같다. 배움은 동사(動詞)의 영역이다. 책상에서 터득하는 그 이상을 경험으로 얻을 수 있다. 체득의 힘은 크다. 오늘은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배운 게 있어요. 갑자기 떨어질 땐 팔을 모아야 하고 아이들은 횡단보도 건널 때 손 내리고 주위를 살펴야 해요!”
속은 후련해졌는데,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공부 안 하냐고 왜 물어보신 거에요?”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