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의 힘은 강력하다. 장치의 배치만으로 특정 공간을 불러낼 수 있다. 사진전 ‘건설 is 열정’이 진행 중인 서울 종로구 현대건설 본사 1층은 지금, 건설 현장이 됐다. 실제 비계(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로 꾸민 전시장이 한바탕 벌어지고 있는 공사의 판을 건물 안으로 소환했다. 로비(lobby)가 일순에 선연한 땀이 밴 노동의 장이 된 것. 거친 중장비 소리가 들리는 듯한 ‘현장’을 지난 13일 찾았다. (CNB=선명규 기자)
공사현장 그대로 옮긴 전시장
숨, 땀, 웃음…사진으로 전해
건설노동자와 ‘동고동락’ 촬영
한걸음 떨어져서 보면 미완성의 가건물이다. 동선은 미로처럼 얽히고설켰다. 그 길을 헤집다 보면 아리송하다. 관람인지 체험인지. 철제 설치물 사이사이에 걸린 사진 30여점은 갸우뚱한 와중에 긴장감마저 불러일으킨다. 각종 장비와 도구가 분주한, 숨 가쁜 건설 현장을 포착한 장면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람을 마치면 알게 된다.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시 부제에 이미 힌트가 있다. ‘현대적인 삶, 건설적인 사람’. 이번 사진전을 준비한 이원석 공간사진작가(스튜디오 카리야스 대표)는 “건설현장에 가보니 모든 것이 그냥 지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계보다는 인간이 더 우선시되는 무언가의 휴먼파워가 느껴졌다”고 했다.
전시장에 걸린 여러 사진 중, 한창 올라가고 있는 건물의 뼈대를 폭넓게 포착한 것이 있다. 실로 웅대하다. 자잘한 구조물이 규칙성을 갖고 엉겨 붙으며 솟아나고 있다. 그 꼭대기에 점처럼 작은 물체가 있다. 유심히 봐야 알 수 있다. 안전 장구를 몸에 두른 두 명의 작업자다. 기계의 힘이 닿지 않는 미세한 영역에서 정교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 영근 땀이 건실한 건물을 지어나가는 부속인 것이다.
인간적인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 작업자끼리 장비 착용을 돕는 모습, 휴식시간에 환하게 웃는 표정 등이 긴장된 공기를 무르게 만든다.
이번 사진전에서 인물은 중요한 장치적 요소이기도 하다. 부피를 가늠하는 역할을 한다. ‘콜로세움’이란 작품에서 두런두런 대화하는 이들을 지우면 그 웅장함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원석 작가는 “사람이 없다면 규모를 모를 것이다. 사람이 작게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건물 크기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6개 현장의 노동·건설 담아
동일한 땀의 결과물이다. 이원석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현대건설이 시공 중인 ‘서울제물포로 지하화’, ‘힐스테이트 신촌’, ‘김포고촌 물류시설’, ‘부산항 신항 서컨테이너터미널’, ‘세종-포천 고속도로’, ‘힐스테이트 이진 베이비시티’ 등을 돌며 직원들과 동고동락했다. 업무 시작 시간부터 종료까지 함께 생활하며 사람·노동·건설의 면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필요하면 드론까지 이용해 건설 현장 구석구석을 촬영했다.
각고의 정성을 쏟았지만 이 작가는 유독 한 작품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설치한 구조물인데, 내 시선에 들어온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웅장함뿐 아니라 정교함에서도 힘이 느껴졌지만 그 감정과 기운을 사진에 담아내지 못해 숙제로 남는다”라며 한사코 겸양했다. 허나 이 말에 쉽게 동의하기란 어렵다. 우람하면서 짜임새 있는 피사체를 마주하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추체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현대건설이 ‘건설 is 열정 ; 현대적인 삶, 건설적인 사람’을 주제로 개최하는 이번 사진전은 지난해 9월 래퍼 키썸과 진행한 ‘건설 is Challenge’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이다. 오프라인 전시는 오는 17일까지 열리며, 현대건설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작가 인터뷰와 대표 사진들을 볼 수 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