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어렵지 않다. 유희(遊戲)가 될 수 있다. 작품을 만지거나 굴리는 등의 체험을 통해 가능하다. 포스코미술관이 올해 마지막으로 여는 전시 ‘예술, 그냥 즐겨!-JUST ENJOY IT!’의 기획의도는 관람객 참여와 놀이. 따라서 전시장에 놓인 모든 것이 재미를 위한 도구다. 지난 18일 열린 개막연에서 관람이 아닌 경험의 방식으로 작품들을 만났다. (CNB=선명규 기자)
“제발 손대주세요”가 취지
모든 작품에 제한선 없어
관람 아닌 체험으로 감상
바닥에 ‘신발 벗고 입장해주세요’란 문구가 붙었다. 망설이지 말고 “어서 들어오세요”라는 신호다. 폭신하게 깔린 카펫 위로는 형형색색의 공들이 나뒹굴고 있다. 백인교 작가의 ‘Rolling Ground'는 먼발치서 관망만 해선 의미가 없다. “색을 만져보게 하고 싶었다”는 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이 작품에 앉아보고 굴리는 직접적인 조우를 통해 완상이 완성된다.
전시장엔 공통적으로 관람 제한선이 없다. 마음껏 선을 넘어도 된다는 뜻이다. 오유정 포스코미술관 큐레이터는 “‘손대지 마세요’가 아닌 ‘제발 손대주세요’가 이번 전시의 취지”라고 했다.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 같은 STUDIO 1750의 설치작 ‘평행정원’도 마찬가지. 멀찍이 떨어져 시청만 가능하다고 지레 짐작하지 않아도 된다. 부단한 움직임이 경계를 부를 순 있다. 민들레 꽃씨를 닮은 투명소재의 작품이 대표적인 경우. 맞춰진 타이머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데, 꽃이 만개했다 지는 듯한 형상이다. 이 반복운동은 공기가 주입되고 빠져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오색찬란한 조명은 작품을 더욱 역동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 혹여 그 작동을 훼손할까 조심스럽다면 옆에 마련된 풍선들로 시선을 돌려보자. 누르면 밀가루가 푸시시 뿜어져 나온다. 바닥이 더럽혀져도 상관없기 때문에 어른은 물론, 어린이들도 부담없이 체험하기 좋다.
정재엽 작가의 ‘소리의 형태’에선 음파(音波)를 만들 수 있다. 벽에 붙은 구리테이프에 손을 대면 공중에 매달린 구조물에서 소리가 난다. 매만지는 결에 따라 날카롭고도 청아한 음이 실내에서 공명한다. 촉감으로 개입하면, 이윽고 청음의 감상을 만끽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놀이에 가장 충실한 작품은 엄익훈 작가의 ‘그림자 조각’일 것이다. 어둠과 미세한 빛이 공존하는 캄캄한 공간이 놀이터다. 칠흑 같은 방안, 단상에 물체가 놓였는데 아무런 규칙성이 없어 그자체로는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허나 빛을 맞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벽면에 조명이 투사된 모습을 보면 숨은 존재를 알아챌 수 있다. 소녀와 소년이다. 옆에 놓인 물체를 이들에 얹으면 또 다른 장면을 끄집어 낼 수 있다. 모자, 크리스마스 트리, 새가 나타난다. 이 물체들을 이리저리 옮기고 결합하는 것으로 ‘그림자놀이’가 가능해진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비닐봉지를 직조해서 천을 만드는 김태연 작가의 ‘까만 봉다리가 피운 꽃 한 송이’ 앞에선 카메라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포토존이 있다. 화사한 색감의 실뭉치들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오밀조밀 모여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 담기 좋은 피사체다. 그 안으로 쑥 들어가면 부유하는 실들이 몸을 감싸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한편 이번 전시 기간, 특별한 작가들의 초대전이 함께 진행된다. 순천시 평생학습관 한글작문교실 초등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른바 ‘순천 소녀시대’ 할머니들의 작품이 전시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자신들이 말하고 싶은 인생, 가족 등에 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에 담았다. 다분히 사적인 삶의 시간이 그림일기처럼 펼쳐졌다. 서툰 솜씨지만, 그 세월이 느꺼워 쉽게 눈을 떼기 어렵다.
오유정 큐레이터는 “전시 제목에서 느껴지겠지만 관람객들이 즐겨주셔야 한다”며 “설명에 집중하기 보단 직접 만져보고 체험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내년 1월 21일까지.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