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미술 전시회에 빠졌다. 샤걀처럼 미술사에 오랫동안 기억되는 화가의 그림부터,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까지 다양한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는 것. 미술품을 통한 투자는 물론 경매까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회를 활용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CNB=손정호 기자)
투자은행(IB) 시대 맞아 마케팅 진화
경매․강연회 기본…앱 활용 투자까지
그림 좋아하는 고액자산가 마음잡기
미래에셋대우는 WM강남파이낸스센터에서 이수애 작가 초대전을 열었다. ‘달의 노래’라는 서정적인 이름이 붙은 개인전이다. 미래에셋대우 영업점에서 투자를 하는 고객들은 상담을 받으면서 이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영업점 상담룸과 복도 등을 갤러리로 활용한 이 색다른 미술 전시회는 오는 10월 말까지 계속된다.
이수애 작가의 작품들은 개울과 꽃밭, 달 등을 표현하고 있다. 노란색과 초록색, 분홍색 등 따뜻하면서도 정감이 있는 색채를 활용해 서정성을 자극한다. 미래에셋대우는 고객들이 자유롭게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도록 하고, 구입을 원할 경우 갤러리를 통해 소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앞으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하이투자증권도 나섰다. 이 증권사는 DGB금융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후, 대구은행과의 복합점포를 선보였다. ‘DIGNITY’ 브랜드다. 수도권 첫 복함점포를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타워의 강남WM센터에 문을 열면서, 고미술품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DIGNITY’ 강남WM센터 벽면에는 비디오아트 작품이 걸려 있다. 흐르는 강물과 매화꽃 등 동양의 서정적인 풍경을 10장의 스크린을 연결시켜서 보여준다. 로비 중앙공간에는 청화백자와 철화백자 등 지방 문화재급 도자기들을 배치했다. 동양의 아름다움을 도자기와 비디오아트라는,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장르를 통해 보여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CNB에 “예전부터 고객들이 많이 찾는 WM센터에 좋은 미술작품들을 진열해 놓는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요즘에는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특정 작가나 주제를 테마로 미술관처럼 전시회를 여는 추세다”고 말했다.
‘전시회+세미나’ 눈길
단순히 그림 전시로 끝나는 건 아니다. 미술품 전시회와 세미나, 경매 등 다양한 체험을 종합적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NH투자증권은 지난 20~22일 서울 평창동에 있는 옥션하우스에서 ‘세기의 동행’ 전시회를 열었다. ‘문화, 투자가 되다’라는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에 맞춘 창사 50주년 기념 행사였다. 옥션하우스 1층 전시장에는 ‘50’이라는 숫자 조형물이 놓여졌다. VIP 고객들을 초청하고,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공개한 형태다.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옥션하우스 옆에 있는 가나아트센터에서도 이번 전시회가 이어졌다. 매일 30분씩 2번 도슨트 투어를 제공했다. 일반인들이 미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트디렉터의 ‘국제 미술시장 트렌드’에 대한 강연도 열었다. 미술 컬렉터인 배우 이광기 씨는 실전 구입방법 노하우를 전했다. 경매사로 나서서 실제로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줬다.
신한금융투자는 우수한 고객인 ‘탑스클럽(Tops Club)’을 상대로 세미나를 했다. ‘탑스클럽’은 신한금융그룹(신한금융투자․은행․카드․생명 등) 고객들 중에서 이용실적이 좋은 사람들을 통합회원으로 운영한다. 이 고객들을 대상으로 4월 갤러리인 이태원 인터아트채널에서 ‘당신의 취미에 투자하세요!’라는 이름의 강연회를 열었다.
크라우드펀딩 업체인 와디즈와 제휴한 행사다. 재즈 피아니스트인 오환희 씨의 공연으로 시작해 프랑스 파리 등 유럽 지역의 미술과 사진 트렌드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아울러 와디즈는 ‘매그넘 인 파리’ 사진전에 대한 펀딩 투자를 소개했다. 이 전시회는 오는 2020년 2월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매그넘은 세계적인 보도사진 그룹이다. 매그넘 포토스 소속의 사진가 40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셈이다.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CNB에 “고액 자산가들 중에는 미술 작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며 “고객들에게 보다 특이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다가가는 마케팅 차원에서 그림을 이용하는 경향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새로운 미술 시험도
실험적인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모바일 금융플랫폼 핀크를 통해 미술시장에 나섰다. 핀크는 하나금융그룹이 SK텔레콤과 함께 출자해 만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다. 핀크는 아트테크 플랫폼인 아트투게더와 손잡고 미술작품을 공동으로 구매해 투자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미술 작품은 고가라서 일반인이 원화를 소유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아트투게더를 활용하면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함께 1/N로 작품을 구입할 수 있다. 갖고 싶은 미술 작품을 공동으로나마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다.
핀크와 아트투게더의 서비스는 지난 6월 말 처음 시작했다. 최근까지 약 900명이 참여했다.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공동 투자자를 모집한 작품은 마리킴의 ‘Red Hat’이었다. 2시간 만에 599만원의 크라우드펀딩을 모두 마쳤다. 아울러 인공지능(AI)과 인간 화가의 콜라보레이션 이벤트를 하고 있다. AI 기업 펄스나인의 AI화가 이매진과 극사실주의 작가 두민이 독도를 주제로 함께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소유할 수 있도록 내놓았다.
또 다른 증권가 관계자는 CNB에 “증권가에서 아트투자 개념이 조금씩 발전해왔다”며 “경매와 달리 P2P 기술을 이용해 사회초년생들도 1만원만 있어도 미술 작품에 투자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이런 기획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증권가에서 미술 전시회가 증가하는 이유는 증권업계 내부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에 의하면 5월 말 기준 국내 증권사는 56개다. 자산운용사는 3월 말을 기준으로 했을 때 207곳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이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생겼다. 브로커리지(주식 위탁매매), 투자은행(IB), 자산관리(WM) 등의 분야에서 한 명이라도 고객을 더 잡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술이라는 부드러운 장르를 토대로 좋은 고객들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의 일환인 셈이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