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악마의 연기가 올라온다. 소량만 흡입해도 죽는다. 피부에 닿아도 죽는다. 고층 빌딩에 갇힌 사람들은 이 유독가스를 피해 더 높은 곳으로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이내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 옥상 문이 잠겼다. 완력으로 뜯고 나갈 수도 없다. 더 이상 피할 데가 없다. 슈퍼히어로라면 리펄서 빔을 쏘거나 망치를 돌려 얻은 추진력으로 솟구치겠지만, 이들에겐 이런 초인적인 능력이나 슈트가 없다.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청년백수 용남은 가족을, 책임감 투철한 연회장 부점장 의주는 고객들을 구해내야 한다. 영화 엑시트에 나오는 두 주인공의 스펙은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비루하다. 초능력자는커녕 무능력자에 가깝다. 허나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 둘에겐 남다른 무기가 있었으니, 대학시절 산악 동아리에서 갈고 닦은 실력이다.
영화 내내 나오는 둘의 모습은 웬만한 히어로 저리가라다. 건물 외벽의 지형지물을 귀신처럼 이용해 기어오르고, 스파이더맨처럼 줄 한 가닥에 의지해 빌딩 사이를 타고 넘는다. 마침내 용남과 의주는 모두를 구하고 자신들도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 대업을 달성해 의기양양한 둘의 모습을 의미심장한 노래가 비춘다. “I'm a Super Hero” 이승환의 슈퍼히어로다.
청춘들의 헬조선 탈출기로 입소문 타며 흥행 중인 이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는 ‘안전은 학습된다’이다. 이 명제는 영화뿐 아니라 얼마 전 실제 사례로도 접했다. 지난 5월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발생한 유람선 사고 때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생존한 한 여성이 한국 집에 전화를 걸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빠가 수영 가르친 게 도움 됐어."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이 기억하는 수영 능력이 그녀를 구한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하나의 전환이 성립된다. 생존은 본능이 아니라 체득이다. 배워서 살 수 있다. 배움은 이를수록 좋다. 일찌감치 몸에 배게 하는 것이 좋다. 최근 성인은 물론이고 아동 대상 안전 교육 공간이 늘고 있는 배경이다.
특징이라면 상황 별로 세분화되어 있다는 것. 현대건설이 운영하는 안전문화체험관은 재해에서, 현대자동차가 개관한 울산 키즈오토파크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교통사고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준다. 다음 달에는 행정안전부, 산업통상자원부, 경기도가 AR‧VR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 ‘2019 안전체험마을’을 연다고 하니 기억해 둘만 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던 날, 극장 앞에서 부부로 보이는 남녀의 대화를 들었다. 여성이 말했다. “나라면 영화 시작 30분 만에 죽었을 거야.” 남편이 고백하듯 입을 열었다. “난 옥상에서 구조 됐을 거야. 문 따는 방법을 알거든.” 이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하나는 확실해졌다. 역시, 안전은 학습이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