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은행 갈 일 줄어든 요즘, 유독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점포들이 있다. 시중 은행들이 카페, 서점, 편집숍 등 이종(異種) 업계와 협업해 마련한 특화 점포들이다. 이에 CNB는 독특한 콘셉트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색 금융현장’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1편에서 커피숍·편의점과 결합한 곳(우리·농협은행)을 다뤘다면, 2편에서는 2030세대 입맛에 딱 맞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곳(하나·국민·신한은행)을 소개한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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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컬처뱅크, 이번엔 ‘편집숍’
공예·서점·가드닝…문화공간 탈바꿈
국민·신한은행, 청춘들 입맛에 맞춰
작년 한 해 국민들의 평일 평균 여가시간은 3.3시간(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조사), 영화 두 편 관람하기에도 빠듯하다. 전쟁 같은 일과 속, 잠시 책도 읽고 아기자기한 소품도 구경하면서 쉼표를 찍을 방법은 없을까? 있다! 한낮에 일을 핑계 삼아 은행에 가는 것이다. 요즘 은행에 가면 서점도 있고, 보는 눈이 즐거운 편집숍도 있다. 이름 하여 ‘특화 점포’. 선택지가 넓어 취향 따라 기분 따라 골라가는 재미가 있다.
“일보러 왔는데 힐링돼요”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에 위치한 KEB하나은행 강남역지점. 근처 스타트업 기업에 다니는 정씨는 “회사엔 공식적으로 일보러 온 것으로 돼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볼일 마친 정씨의 시선을 붙든 것은 하얀 선반 위에 놓인 액세서리들. 그녀는 “머그잔이나 문구류 같은 소소한 소품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독특하고 다양한 제품들을 보니 힐링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정씨처럼 바쁜 직장인에게 잠깐의 일탈을 허락한 이곳은 KEB하나은행 컬처뱅크 4호점. 지난해 10월 온라인에서 반응이 뜨거운 편집숍 ‘29cm’와 협업해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민 지점이다. ‘29cm’의 첫 오프라인 매장이라는 점에서도 화제가 됐다.
2~30대 직장인과 대학생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에 마련한 만큼, 젊은 눈높이에 맞춰 공간을 단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먼저 감각적인 인테리어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고풍스런 가죽소파와 개성 강한 원형과 네모진 테이블이 좌우로 펼쳐져 있다. 원목, 철제 등 다양한 소재와 모양의 의자가 착석과 관람 욕구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마치 고급 호텔의 로비 같은 인상이다. 그 오른쪽에 하나은행 객장이 있고, 왼쪽에 ‘29cm’와 커피 전문 브랜드 ‘앤트러사이트’가 자리하고 있다. 창구 순번을 기다리거나 주문한 커피를 마시는 이들 모두 ‘로비’를 이용할 수 있다.
‘컬처뱅크’ 시리즈 계속
KEB하나은행은 2017년부터 ‘컬처뱅크’란 이름으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있는 특화 점포를 개설하고 있다.
앞서 공예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방배서래 1호점, 독립 서점계서 이름 난 '북바이북'과 힐링 서점 콘셉트로 꾸린 광화문역 2호점, 도심속 자연을 주제로 기획 상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잠실레이크팰리스 3호점을 나란히 선보였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은 “금융서비스와 문화 콘텐츠가 만난 컬처뱅크는 지역주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이용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라며 “앞으로도 지역 특색을 살린 다채롭고 새로운 공간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화 성지’ 홍대에 상징으로 올라선 ‘KB락스타 청춘마루’
‘젊음의 열기가 있는 대중문화의 중심’. 홍대 일대를 이보다 잘 설명해주는 문장이 있을까? 청춘과 문화의 성지로 대표되는 홍대에 ‘유스(Youth) 고객을 위한 공간’을 표방하며 자신만만하게 도전장을 내민 곳은 KB국민은행이다.
하나은행처럼 이종 업계와 협업해 숍인숍 형태로 매장을 구성한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KB국민은행이 지난해 4월 홍대에 개관한 ‘KB락스타 청춘마루’는 원래 있던 은행 지점을 리모델링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업점으로 40여년을 일한 이곳이 이젠, 365자동화코너와 함께 각종 문화시설이 들어선 장소로 탈바꿈했다.
밖에서도 눈에 확 띄는 것은 ‘노랑계단’이다. 운동장의 스탠드처럼 건물 안에서 바깥을 비스듬히 바라볼 수 있는 구조로, 누구나 잠깐 앉아 쉬어갈 수 있다. 옥상에도 ‘노랑계단’이 있는데, 그 앞에선 버스킹(거리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총 4개층으로 이뤄진 건물의 담음새는 풍족하다. 대학생들이 소모임을 갖거나 세미나 개최에 용이한 시설을 갖췄고, 유명 작가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장도 있다. 지금은 고양이 그래피티로 유명한 프랑스 아티스트 토마 뷔유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용료나 관람료 없이 내부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니,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실제 ‘KB락스타 청춘마루’는 문 연지 한 달 만에 1만 명이 다녀갔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4월 홍익대학교 안에 지점을 열면서 한 쪽에 디지털갤러리를 만들었다. 재학생들의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일종의 ‘전시장’이다. 학생들에게 디지털 액자를 통해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열어주고자 마련했다.
은행들의 이색 점포 만들기 열풍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아이디어싸움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분야와 단순히 협업하는 것만으론 이제 식상하다는 분위기”라며 “매출 하락에 허덕이던 백화점들이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영업시간 종료 후에 문 닫고 와인바를 운영하는 것처럼 보다 파격적인 시도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